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회의 모습. 출처 진상규명위 누리집
[시론] 송기춘 |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국가보훈처가 오는 6월부터 국가보훈부로 승격된다. ‘보훈이 국격’이라지 않았던가.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감사와 존경 그리고 적절한 예우를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도리다.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다 사망한 군인에게도 그 죽음의 숭고함에 상응하는 예우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공정한 평가와 적절한 예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군인의 죽음이 너무 많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59년 해마다 2천명 이상 군인이 복무 중 사망했다. 그 뒤 1965년까지 군 복무 중 사망자 수는 1천명대로 줄었지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후 급증해 1968년에는 3천명 넘는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1970년대에도 해마다 1천명 이상이 군에서 사망하다 1980년대 들어서 1천명 아래로 떨어졌다. 민주화 이후 사망자는 크게 줄어들어 2021년에는 102명이 군 복무 중 숨졌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군에서 목숨을 잃었던 셈이다. 이 가운데 전사 또는 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인원은 4만명에 가까운데,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순직으로 처리됐어야 했다는 점이다.
지난 2월26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1956년에 사망한 군인 2986명(실제 사망자는 더 많다) 가운데 전사 또는 순직으로 분류되지 않은 1122명의 사망사고를 직권조사하기 위한 사전조사를 의결했다. 이 가운데 진정이 제기돼 조사가 완료되거나 이미 직권조사가 시작된 사건을 제외하면 1108명이 사전조사 대상이다. 매·화장보고서 등 군 기록에 나타난 이들의 사망 경위와 사인들 일부를 살펴보자. 폐결핵(31명), 결핵(26명), 뇌진탕 또는 뇌출혈(26명), 급성 간염·급성 간장농양·급성 뇌출혈·급성 대장염·급성 복막염·급성 폐렴 등 급성 질환(15명), 영양불급 또는 영양실조(10명)…. 이 기록만으로도 마땅히 순직으로 분류됐어야 했던 분들이다. 군에서 1996~97년 병·변사자 일괄 심사를 할 때 이미 순직으로 분류했던 사인이기 때문이다.
군 복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두개골 골절이나 두개강 내 출혈(20명), 복막염(14명), 차량사고(120명) 등도 사망 경위를 밝힐 조사가 필요하다. 위원회는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벌목작업에 동원돼 나무를 베다가 머리를 다쳐 사망한 사례도 확인했으나, 매·화장보고서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이른바 ‘후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돈벌이에 동원됐으니 벌목 현장에서 죽거나 다쳐도 사실대로 기재했을 리 없을 것이다. 사인이 미상 또는 불상으로 된 경우도 143명에 이르는데, 현재 군인사법 규정에 따르면 이들도 순직으로 분류된다.
이런 모습은 비단 1956년 사망자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것이다. 이해가 특별해서 위원회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여러 진정사건을 조사하면서 특히 1956년 사망자들의 매·화장보고서를 많이 확인하게 됐고, 위원회 활동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지만 억울한 죽음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뿐이다. 군에 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대한 분들, 3년 복무를 마치고도 제대 명령 떨어질 때까지 제대시켜달라는 말도 못 한 채 몇년을 더 기약 없이 장기 복무해야만 했던 분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프거나 병에 걸렸지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분들, 유족조차 없어서 죽은 뒤에도 억울함을 풀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 이런 죽음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1956년 군 사망자에 대한 조사는 그동안 방치됐던 이들 군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적절한 보훈의 시작이다.
주로 유족이나 동료가 진정한 군인들 사망사고를 조사해온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는 오는 9월13일 활동을 종료한다. 직권조사 권한이 있지만 새로운 사건 조사를 시작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지금도 조사를 요구하는 유족, 동료들의 요구는 계속된다. 며칠 전에도 학군사관(ROTC)중앙회에서 위원회에 학군장교 미순직 사망자 134명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으나, 쉽지 않겠다는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군인 사망사고 진상규명 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억울한 군인의 죽음을 묻어두면서 제대로 된 보훈을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