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석침총 이어 황남리 남총…파고보자식 발굴은 계속됐다

등록 2016-03-22 18:51수정 2016-03-23 08:25

야쓰이가 1909년 석침총과 함께 조사한 경주 황남리 남총의 당시 발굴 모습. 봉분 남쪽 측면에 큰 발굴갱을 뚫어 무덤 안쪽까지 파헤쳐 놓았다. 야쓰이가 찍어 <조선고적도보>에 실은 사진이다.
야쓰이가 1909년 석침총과 함께 조사한 경주 황남리 남총의 당시 발굴 모습. 봉분 남쪽 측면에 큰 발굴갱을 뚫어 무덤 안쪽까지 파헤쳐 놓았다. 야쓰이가 찍어 <조선고적도보>에 실은 사진이다.
‘야쓰이 비망록’으로 본 조선 발굴비사
③ 경주 고분 조사 <2>
1909년 12월 경주벌에서 29살 청년학자 야쓰이가 벌인 석침총 조사는 역사적 의미가 적지않았다. 그와 세키노가 경주에 오기 직전 평양 일대에서 벌인 낙랑고분 발굴과 더불어 근대기 이땅에서 관 주도로 벌인 최초의 고분 학술조사로 꼽히는 까닭이다.

앞서 1900년 야기 쇼자부로가 신라 권역의 고분과 토기류를 답사했고, 1902년 세키노 다다시도 경주 고분, 출토품들을 살펴보고 보고서를 냈으나 발굴은 하지 않았다. 그뒤 1905년 도쿄미술학교 학생인 오다 후쿠조가 평남 강서의 고구려 벽화고분을 발굴, 스케치하고, 1906년에는 야쓰이의 도쿄대 동문인 이마니시 류가 대학원생 신분으로 경주 소금강산 기슭과 황남리의 고분을 발굴한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발굴은 사적인 차원의 아마추어 조사에 머물렀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일 학계는 야쓰이의 발굴을 신라 고고학사의 선구로 재조명하는 흐름이 일고 있기도 하다.

야쓰이는 정벌설 입증 바랐지만
일본계 유물은 나오지 않아
석침총 발굴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며칠뒤 이번엔 경주 황남리로
남총은 전형적 신라고분 양식
다시 도굴같은 발굴이 시작됐다

하지만 흙속 돌더미가 와르르
그는 관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한 채
5일만에 작업을 단념해야 했다

야쓰이가 1909년 석침총과 함께 조사한 경주 황남리 남총의 당시 발굴 모습. 봉분 남쪽 측면에 큰 발굴갱을 뚫어 무덤 안쪽까지 파헤쳐 놓았다. 야쓰이가 찍어 <조선고적도보>에 실은 사진이다.
야쓰이가 1909년 석침총과 함께 조사한 경주 황남리 남총의 당시 발굴 모습. 봉분 남쪽 측면에 큰 발굴갱을 뚫어 무덤 안쪽까지 파헤쳐 놓았다. 야쓰이가 찍어 <조선고적도보>에 실은 사진이다.
정작 석침총 발굴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석침총은 관을 놓은 묘곽 사방에 거대한 돌더미를 두르고 흙으로 덮어 봉분을 쌓은 신라고분의 전형적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 아니었다. 6세기 적석목곽분에 뒤이은 귀족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의 단면을 발견한데 지나지 않았다.

고분 구조를 모르고 무덤 상부에 갱을 뚫었던 야쓰이는 진구왕후 정벌설을 입증하는 일본계 유물들을 고대했다. 일본 열도의 고분에서 종종 나오는 휘어진 곡옥이나 곡선형 칼장식 같은 명품 등을 바랬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석실에서 발견한 돌베개(석침) 한 점과 단추모양 꼭지가 달린 토기뚜껑과 목짧은 항아리(단경호)토기 몇점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야쓰이는 이듬해 일본 고고학회 잡지 <고고계>에 실은 석침총 약식 보고문을 통해 발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석침총이 주변의 작은 조선묘들과 비교해 규모가 크고 ‘고려총’으로 주민들 사이에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적었다. 주검을 석실 시상대 위에 놓고 돌베개를 쓰는 것은 고려 때 사용되지 않았던 사실이고 토기의 문양, 형상, 수법 등에서 무덤의 시기가 통일신라의 비교적 이른시대, 즉 일본의 나라시대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쓰이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의 1909년 조사 일지 ‘계림 기행’을 보면, 야쓰이가 12월14일 오후 경주 시내 황남리 벌판 고분군으로 가서 따로 발굴중이던 황남리 남총 현장을 촬영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사 여건은 좋지 않았다. 발굴작업이 한창인 15일 세키노 단장과 다른 일행은 모두 일본으로 떠났고, 야쓰이는 지병인 류마티스가 도져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야쓰이는 홀로 남은 채로 석침총과 황남리 남총을 골라 첫 학술발굴을 잇따라 시도하는 강행군을 펼쳤던 것이다. 석침총과 달리 황남리 남총은 관이 있는 묘실 둘레 사방에 돌무더기를 두르고 흙을 덮은 적석목곽무덤이다. 따라서 발굴 과정은 더욱 험난했다.

 국내 최초의 경주 고분 학술조사 내용을 적은 야쓰이의 조사일지 ‘계림기행’의 일부분.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 ‘경주군 고분 발굴…’ ‘석침’ 등의 글귀가 보인다.
국내 최초의 경주 고분 학술조사 내용을 적은 야쓰이의 조사일지 ‘계림기행’의 일부분.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 ‘경주군 고분 발굴…’ ‘석침’ 등의 글귀가 보인다.
당시까지 신라고분 기본 얼개에 대한 사전 정보는 거의 없던 실정이었다. 야쓰이는 석침총처럼 봉분 한쪽에 갱을 뚫고 파내려가며 내부 구조를 어렴풋이 더듬는 단순한 굴착 수법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당장 문제가 생겼다. 흙을 제거하자 무덤의 매장시설을 감싸던 육중한 돌더미가 나타났다. 파도파도 돌덩이들이 계속 시야를 가로막았다. 인부를 동원한 작업은 19일 낮까지 지속됐지만, 발굴갱에서 드러난 돌더미가 붕괴되자 중단됐다. 관이 있는 매장주체부를 찾지 못한 채 야쓰이는 작업을 단념해야 했다. 이와관련해 야쓰이 문서 컬렉션에는 그가 당시 2원이란 적지않은 돈을 주고 인부를 사들였던 품삯 영수증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가 노후까지 이 발굴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있었음을 짐작케한다. 앞서 야쓰이는 경주로 가기 전 경성에서 탁지부 직원들에게 벌인 ‘상세(上世)에서 일한의 관계’라는 강연(강연 내용은 ‘한홍엽’이란 문서로 남아있다)을 통해 “일한 관계는 입술과 이빨의 관계”라며 열변을 토했다. “<일본서기>를 보면 상세부터 일한은 일역(한 공간)이었다. 소잔오존(일본신화의 건국영웅)이 한토(한반도땅)를 왕복한 이래 한남의 임라 지역을 진공하고, 진구왕후 정벌로 신라의 항복과 백제의 조공을 받아 일본의 땅이었는데, 신라가 당의 세력을 빌어 반도를 통일하면서 천이백여년간 떨어져나갔다. 메이지 천황 성세에 일한은 다시 한 영역이 되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

고토 회복의 근거를 찾겠다는 야쓰이의 왜곡된 열정 아래 발굴된 석침총과 황남리 남총은 1916년 <조선고적도보>에 발굴 사진과 약식 실측도가 실렸고, 오늘날도 현장에 자취를 전하고 있다. 석침총은 2005년 고고학자 차순철씨의 현장조사 보고로 고분 윗부분이 함몰된 채 서악리 장산고분군 안에 온존해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주 오릉 가는 길 남쪽에 자리한 황남리 남분도 일부 남은 봉분 흔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야쓰이의 구체적인 조사 경위는 정식 보고서를 내지 않은 탓에 실상을 알 수 없다. 출토 유물들도 야쓰이가 조사 뒤 일본에 바로 가져가 도쿄대 등에 기증한 상태다. 지금이라도 학계가 국내 고고발굴사의 첫머리가 된 두 고분의 재조사를 벌여야하는 이유다. 야쓰이는 1909년 12월20일 경주를 떠나 엿새 뒤 부산에서 귀국선을 탔다. 신라 고분과의 첫 만남에서 진구왕후의 증거를 찾는데는 실패했다지만, 귀국길은 쓸쓸하지 않았다. 고대 한반도문명의 또다른 중심에서 캐낸 쏠쏠한 성과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로 가기 전 조사했던 평양 부근의 낙랑고분 유적과 유물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인성 영남대 교수,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