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한류 이끌어줄 힘 됐으면”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대사들 얘기가 모조리 한류더군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본 유럽 사람들 말도 한국에는 삼성·엘지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문화적으로도 막강하더라는 거였어요. 한류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끝날 것 같지 않고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 쪽으로도 이어져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한류 작품들에 더해 미학적 체계가 같이 갈 수 있도록 자극해 주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시인 김지하(64)씨가 우리 고유의 미학 체계를 모색한 이론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지난달 18~31일 국제도서전이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등을 둘러보고 온 그를 2일 낮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프랑크푸르트 등 5개국 순례
“유럽에서도 한류 확산 기대”
‘한과 흥 결합’ 고유미학 탐구 “‘흰 그늘’이란 저 자신이 겪은 몇 번의 정신신경계통 경험에서 우러난 일종의 묵시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부신 흰색 빛의 체험과 시커먼 그림자의 체험이 서로 별개로 있었고 그 한 결과가 전남 해남에 살 때 쓴 연작 구술시 <검은 산 하얀 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흰 그늘’이라는 묵시가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통해 분열되어 있던 것이 정신적으로 통합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나아가 모종의 미학적 개념의 출발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흰 그늘’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통해 그는 우리 전통 정서의 두 축인 한과 흥을 비롯해 대립되는 것들의 결합을 꾀한다. 한은 흥을 낳고 흥은 다시 한을 낳으며 계속 이어지는, 불교의 연기설과 주역의 태극사상과 같은 생각이 이 개념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6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은 명지대에서 행한 열 차례의 ‘생명시학론’ 강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한 네 차례의 강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취임 강연 등 강의를 녹취한 글들이 전체의 3분의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100쪽 남짓한 분량인 <흰 그늘의 미학(초)> 역시 중요한 문건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이 책이 체계적인 미학 이론서라기보다는 막연하고 개략적인 모색의 흔적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평가했다. 제목에 ‘찾아서’를 붙인 게 그런 뜻이라는 것이다. “제 직업이 둘입니다. 하나는 시인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이에요. 형님이 뭡니까? 아우들에게 훈수를 두는 자죠. 지금부터 미학, 철학, 과학을 할 젊은이들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미학 교수가 되려던 생각을 치우고 일종의 거리의 미학자로 살아오면서 내 식으로 혼자 공부는 해 왔지만 저는 아무래도 학자는 아니에요. 체계적인 이론을 마련하지는 못했다는 거죠. 앞으로도 후배들과 함께 우리 고유의 미학이 무엇일 수 있을지 계속 탐구해 보려 합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유럽에서도 한류 확산 기대”
‘한과 흥 결합’ 고유미학 탐구 “‘흰 그늘’이란 저 자신이 겪은 몇 번의 정신신경계통 경험에서 우러난 일종의 묵시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부신 흰색 빛의 체험과 시커먼 그림자의 체험이 서로 별개로 있었고 그 한 결과가 전남 해남에 살 때 쓴 연작 구술시 <검은 산 하얀 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흰 그늘’이라는 묵시가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통해 분열되어 있던 것이 정신적으로 통합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나아가 모종의 미학적 개념의 출발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흰 그늘’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통해 그는 우리 전통 정서의 두 축인 한과 흥을 비롯해 대립되는 것들의 결합을 꾀한다. 한은 흥을 낳고 흥은 다시 한을 낳으며 계속 이어지는, 불교의 연기설과 주역의 태극사상과 같은 생각이 이 개념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6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은 명지대에서 행한 열 차례의 ‘생명시학론’ 강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한 네 차례의 강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취임 강연 등 강의를 녹취한 글들이 전체의 3분의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100쪽 남짓한 분량인 <흰 그늘의 미학(초)> 역시 중요한 문건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이 책이 체계적인 미학 이론서라기보다는 막연하고 개략적인 모색의 흔적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평가했다. 제목에 ‘찾아서’를 붙인 게 그런 뜻이라는 것이다. “제 직업이 둘입니다. 하나는 시인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이에요. 형님이 뭡니까? 아우들에게 훈수를 두는 자죠. 지금부터 미학, 철학, 과학을 할 젊은이들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미학 교수가 되려던 생각을 치우고 일종의 거리의 미학자로 살아오면서 내 식으로 혼자 공부는 해 왔지만 저는 아무래도 학자는 아니에요. 체계적인 이론을 마련하지는 못했다는 거죠. 앞으로도 후배들과 함께 우리 고유의 미학이 무엇일 수 있을지 계속 탐구해 보려 합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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