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째 천경자 화백의 진위작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여년째 고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인지를 놓고 논란을 거듭해온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목록에 1977년작 표기)에 대해 검찰이 ‘진품’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천 화백의 작은 딸 김정희씨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 등 전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6명을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수사결과를 19일 공개하면서 “소장 이력과 전문기관, 전문가들의 과학감정·안목 감정, 관계자 증언 등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방식을 토대로 조사내용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작가 특유의 제작 방식이 구현된 진품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미술관 전 학예실장 ㅈ씨만 사자명예훼손죄로 불구속 기소하고, 다른 피고소인 5명은 혐의가 없어 불기소처분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올해 5월부터 <미인도>를 진품 13점 등과 비교분석한 결과 희귀한 석채(돌가루 안료)를 쓰고 두터운 덧칠 작업과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 외곽선을 그린 자국) 등이 다른 진품들과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근거를 설명했다. 또 1976년 고인이 작은 딸 김씨를 모델로 그린 <차녀 스케치>와 세부 표현방식이 고도로 유사해 이 작품을 바탕으로 <미인도>와 81년작 <장미와 여인>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특히 <미인도>의 그림 밑층에서 다른 형태·위치의 풀잎선, 입술모양, 생머리 밑층의 파마머리, 꽃이미지 등 애초 그린 숨은 밑그림이 발견돼 거듭된 수정과 덧칠을 통해 밑그림을 변형하면서 현재의 <미인도>로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검찰 쪽은 “수정과 덧칠로 그림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작가 고유의 특징으로, 위작할 경우 원작을 베끼거나 약간 변형한 스케치 위에 단시간 채색하므로 다른 밑그림이 발견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진품 가능성이 0.000002%라는 결론을 냈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의 분석의견에 대해서는 정작 감정보고서에 심층적인 단층 분석방법이 제시되지 않아, ‘위조여부’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 논란이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반면, 교수·화가·평론가 등 감정위원 9명한테서 받은 비공개 개별감정 작업에서는 석채 사용, 두터운 덧칠, 붓터치, 선 묘사, 밑그림 수정 흔적 등에서 진품들과 동일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이유로 진작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미인도>를 미술관이 입수해 소장한 경위도 1980년 2월 당시 계엄사령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헌납 형식으로 가져와 재무부, 문화공보부를 거쳐 미술관에 최종 이관한 사실을 관계자 증언과 문서로 확인했다고 검찰 쪽은 덧붙였다.
유족인 김정희씨와 변호인단 쪽은 “너무 황당하다”고 반발했다. 미국에 사는 김정희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조사결과를 보면, 미술관이 지난달 프랑스 감정단 분석 결과를 반박할 때 제시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됐으며 감정단의 과학적 접근법은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의 배금자 변호사도 “정부와 관련 인사들을 상대로 항고와 재정신청, 민사소송을 하겠다”며 추가로 법적대응할 뜻임을 밝혔다.
노형석 최현준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