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주는 당장의 기쁨이나 감동을 돈이 대신해 줄 수 있나요? 사람들의 칭찬도 받고 관심도 받고….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기쁨이에요.” 김동식 작가는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에 남들이 올리는 글을 읽고 응원 댓글을 달다가, 댓글로 이어쓰기를 하는 ‘릴레이소설’에도 몇 번 끼어보면서 ‘이야기 만들기’에 점차 관심이 생겼다. 지난 3월8일 김동식 작가가 2006년부터 10년 동안 일했던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공장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솝은 고대 그리스의 노예였다. 어디서 나고, 어쩌다 노예가 되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설이 구구하다. 이솝은 수백편의 우화를 남겼지만 그가 글을 쓸 줄 알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심한 말더듬이였다는 기록도 있다. 1세기께 쓰인 작자 미상의 <이솝로망스>에 따르면, 이솝은 난쟁이처럼 작은 키에 꼽추처럼 굽은 등, 사팔뜨기에 납작코를 한 외모로 어딜 가나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그의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목소리만으로도 웃음을 터뜨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솝이 남긴 이야기는,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매우 탁월한 레토릭의 교본으로 예시된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도 이솝우화에서 큰 영감을 받아 그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 걸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저작을 읽어본 이는 극히 드물지만, ‘토끼와 거북이’ ‘양치기 소년’ ‘개미와 베짱이’ 같은 이솝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솝은 위대한 학자나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우둔함에 대해 가장 평범하고 통속적인 언어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폭넓게 대중과 소통해온 이야기꾼이다. 종종 궁금했다. 귀족도 학자도 아닌 이솝의 빛나는 통찰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김동식의 <회색인간>을 보고 문득 이솝이 떠올랐다. 김동식의 소설은 짧고 표현은 단순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다’. 그의 이야기는 쉽게 술술 읽히지만 결코 녹록지 않다.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 대신, 공상과학적인 소재에 호러와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짧게 치고 길게 여운을 남기는’ 풍자가 이솝우화를 연상케 한다. 김동식(33)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노동자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복날은 간다’는 아이디로 2016년 5월 온라인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360여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그중에서 추려낸 66편으로 지난해 12월말에 3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출간과 동시에 그의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3월 현재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합해 총 4만4천부를 찍어냈다. 이달 말에 그의 소설 4권과 5권이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장안의 화제가 된 그를 향해 ‘천재작가’ ‘괴물작가’라는 언론의 조명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방끈도 짧은데 소설을 썼네’ ‘공장노동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다니’ 따위의 오만한 경탄이 행간에 담긴 것 같아 적잖이 불편했다. 김동식 출현의 의미를 개인의 천재성에서 찾거나 ‘혜성처럼 나타난’ 뜻밖의 돌발변수로 보는 건 타당한가? 김동식을 발굴하고 그의 책을 출판 기획한 김민섭(<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이미 가장 새로운 시대의 작가’이다. 작가 김동식의 탄생이 우리 시대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작가처럼 보이는 게 창피해요
지난 8일 서울 성수동에서 김동식을 만났다. 그가 일하던 공장은 영세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공단의 3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었다. 공장 쪽의 사전 허락을 받고 예정된 방문이었지만, 김동식은 ‘동료들 작업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며 오래 머물지 말 것을 내게 거듭 당부했다. 십여평 남짓한 공간, 대여섯명의 직원이 일하는 공장은 의외로 고즈넉했다. 전기톱이나 프레스 소리로 떠들썩한 바깥과는 딴판이었다. 금속 단추나 버클, 구두 장식물과 같은 금속 액세서리를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저 친구는 원체 말이 없고 얌전했어요. 술·담배도 안 하지, 친구도 없지. 차를 타면 멀미한다고 어디 여행도 안 다니지….” 그의 오랜 직장 동료였던 김정빈(48)씨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동료들이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러 공장 밖으로 나갈 때도 김동식은 혼자 작업대 앞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면서, 김동식이 작가가 된 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김동식이 일하던 작업대에는 새로 온 신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고무로 만들어진 ‘가다’(거푸집) 두 짝을 위아래로 수평을 맞춰 회전판에 걸고, 가운데 구멍으로 맷돌에 콩을 넣듯 뜨거운 아연용액을 국자로 퍼서 넣는다. 가다 안에 그려진 홈을 타고 아연이 들어가 식으면 바로 꺼내서 제품을 뜯어내고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김동식은 여기서 꼬박 10년을 일하고 2016년 11월 퇴사했다.
김동식 작가는 스토리를 구상할 때도 그에게 익숙한 영화나 게임처럼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그걸 문자로 옮긴다. 그가 글을 쓰면서 얻는 가장 큰 대가는 다른 이들의 관심어린 댓글이다. 그게 문학이든 아니든, 그게 작가라 불릴 만한 일이든 아니든, 그에겐 대수롭지 않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0년 새 이 동네 엄청 바뀌었죠? 요즘 카페나 레스토랑이 엄청 많아져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어요.
“저는 뭐… 잘 몰라요.”
―여기서 10년 넘게 지냈는데 모르세요? 집은 어디세요?
“집도 이 부근이에요. 건너편 양꼬치 골목. 근데 집이랑 공장만 왔다 갔다 했지, 주변을 둘러본 적이 없어서요….”
그는 부근 카페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침 내 사무실이 가까워서 그리 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공장에서 차로 5분 남짓한 짧은 거리인데도, 그는 멀미가 나는지 불편한 기색이었다.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청년창업자들의 코워킹 스페이스로 쓰인다. 노트북 하나씩 앞에 두고 작업하는 젊은이들을 둘러보며, 그가 엉거주춤 긴 우산을 내려놓고 앉았다.
―집도 가까운데 글 쓸 때 여기 와서 작업하시는 건 어때요?
“저, 노트북 없어요.”
―아, 데스크톱으로 일하세요?
“그냥 집에서만 일하니까요.”
―노트북 들고 카페나 도서관 같은 데서 작업하는 건 싫으세요?
“제가 좀…. 글 잘 쓰는 작가도 아닌데, 글 쓴다고 유난떠는 걸로 보일까봐 좀 창피해요.”
―하하하, 작가만 노트북 쓰나요? 저기 보세요, 노트북으로 숙제를 하거나 이메일 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래요? 잘 몰랐어요.”
초면에 숫기가 없어서일까, 뻥 뚫린 카페 공간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일까, 그는 충분히 편안한 안색이 아니었다. 위층의 작은 회의실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별 장식 없는, 밀폐된 작은 공간이 그의 마음에 들길 바라면서.
‘오늘의 유머’ 공포게시판으로 등단한 작가
―요즘 작가 사인회나 저자 강연 많이 다니시죠?
“다니는데요, 나중에 사진 보면 계속 고개 숙이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랑 눈도 못 마주치고. 너무 어색해요.”
―청중들이 제일 많이 묻는 게 뭐예요?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냐고요….”
―저도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어디서 얻으세요?
“그냥 일상생활에서요. 가장 많이 얻는 창고는 인터넷이고요.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김동식은 사건 자체의 본말보다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한다고 했다. 뉴스는 주로 인터넷으로 접하지만, 일부러 뉴스를 찾아 들어가 읽지는 않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이슈들을 클릭해 본다. 사람들이 분개하거나 성원하던 이슈가 하루아침에 뒤바뀌기도, 사라지기도 하는 걸 보는 게 그는 흥미롭다. 그의 소설엔 요괴나 외계인, 저승사자 같은 기괴한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괴물이나 요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괴물보다 무서워요?
“아무렇지도 않게 남한테 상처 주는 사람,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 피해는 신경 안 쓰는 사람, 자신이 받은 엄청 작은 피해에도 격분하고 못 견디는 사람들이 무섭죠.”
―특별히 공포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오늘의 유머’(약칭하여 ‘오유’) 공포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니까요. 게시판 자체가 공포물만 올릴 수 있는 곳이었어요. 오유에 창작한 글을 올릴 수 있는 데는 ‘유머’하고 ‘공포’ 두 군데밖에 없을 거예요. 유머는 제가 잘 못하고 공포는 제가 즐겨 읽던 곳이라서.”
―근데 왜 오유만 고집하신 거예요? 글을 올릴 만한 다른 사이트들도 많잖아요.
“핸드폰 사면 처음부터 깔아주는 앱이 있잖아요. 그중에 ‘오늘의 유머’라는 아이콘이 뜨더라고요. 유머 사이트구나 해서 들어갔다가 공포게시판을 보게 되고, 남들이 올린 글들 읽다가 저도 쓰게 된 거죠.”
글쓰기를 취미로 삼은 적도 없었다. 어릴 땐 일기 쓰는 것도 싫어해서 마지못해 몰아서 쓴 일기 숙제를 제출하곤 했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다 합해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가나 소설도 없다. 문학에 대한 선망이나 경외심도 없는 김동식에게, 오유의 공포게시판은 그저 ‘재미있는 글’을 볼 수 있는 쉼터였다. 처음엔 공포게시판에 남들이 올리는 글을 읽고 응원 댓글을 달다가, 댓글로 이어쓰기를 하는 ‘릴레이소설’에도 몇 번 끼어보면서 ‘이야기 만들기’에 점차 관심이 생겼다. 무작정 쓴 첫 소설의 제목은 ‘이미지메이킹’이었는데 써놓고 보니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포털사이트에서 ‘글쓰는 법’을 검색해서 조금 고쳐서 올린 게 2016년 5월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2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366편 이상을 썼다. 이틀이나 사흘에 1편꼴로 쓴 셈이다.
우연히 접한 ‘오유’ 공포게시판
글 읽고 댓글 달다 글쓰기 시작
‘새로운 댓글’ 받고 싶은 마음에
2년 동안 단편소설 366편 써와
아이디어 얻는 창고는 인터넷
중1때 ‘가기 싫던’ 학교 그만둬
시급 1900원 알바…가난했지만
불행하거나 외롭다 느낀 적 없어
2016년 10년간 일한 공장 퇴사
쉬면서 하고 싶었던 건 “늦잠”
―공장에서 종일 일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다작을 할 수 있었죠?
“댓글 달아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요. 한번 해보고 나니까 새로운 댓글을 받고 싶은 마음에… 그것에 ‘중독’돼서 쓴 거죠. 게시판 특성상 다른 글들 올라오면 뒤로 밀리니까, 최소한 3일에 한번씩은 올리자 스스로 정해놓고 썼어요.”
―댓글 받는 게 그렇게 중요했어요? 댓글 많다고 ‘밥이 생기거나 떡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조회수 높다고 광고비를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댓글 받는 게 돈보다 중요한 것 같은데요. 댓글이 주는 당장의 기쁨이나 감동을 돈이 대신해 줄 수 있나요? 사람들의 칭찬도 받고 관심도 받고….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기쁨이에요. 오유에선 욕이나 반말을 못 쓰게 되어 있어서 대개 좋은 격려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해주는 댓글도 좋았고, ‘맞춤법이 틀렸다’고 알려주시는 댓글도 좋았어요. 지적받으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고쳤죠.”
그에겐 인터넷 이용자가 독자이자 집단 편집자이고 동료작가였다. 특별한 낙도 친구도 없는 그에게 온라인게시판의 댓글은 가장 중요한 세상과의 소통 창구이자 글쓰기 학교였다.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응모할 생각은 안 하셨나요?
“그 글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자유게시판에 ‘오늘 뭐 먹었고’ ‘무슨 일 있었고’ 하는 이야길 쓰지만 그걸 신춘문예에 내진 않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죠.”
소설가로 등단한 과정이나 소설작법에서 김동식은 이전의 문인과 판이하게 다르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두각을 드러내서 백일장에서 줄줄이 수상하고,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치우고, 틈틈이 습작했다 불태우고, 신춘문예나 평론가의 추천으로 등단하는 ‘예사로운’ 문학청년이 아니다. 김동식은 스토리를 구상할 때도 그에게 익숙한 영화나 게임처럼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그걸 문자로 옮긴다. 글이 안 풀릴 땐 원고지를 구기거나 머리를 쥐어뜯는 대신, 다른 스토리의 새로운 글을 쓴다. 막히면 다시 멈추고 원래 쓰던 글로 돌아온다. 그가 글을 쓰면서 얻는 가장 큰 대가는 다른 이들의 관심어린 댓글이다. 그게 문학이든 아니든, 그게 작가라 불릴 만한 일이든 아니든, 그에겐 대수롭지 않다.
김동식 작가는 ‘공장-집’ ‘집-공장’을 반복하다 보니 20대가 다 가버렸다고 했다. ‘못해 본 것도 해봐야지’란 생각으로 2016년 11월 10년간 다니던 공장을 그만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기계 같은 노동을 견디게 한 이어폰처럼
김동식의 소설은 게시판을 읽는 독자의 취향에 맞추어 원고지 30장 내외의 짧은 글들이지만 기발한 상상력과 반전으로 문학적 클리셰를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의 원형질’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소설 ‘사망공동체’의 줄거리는 이런 식이다.
어느 날 저승 대표가 인류를 찾아왔다. 인류의 저출산 고령화로 저승 인구가 부족해져서 저승의 운영이 어려워졌으니 불가피하게 ‘사망자 두 배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한 명이 죽으면 지구 어딘가에 있는 영혼의 짝 한 명도 동시에 죽게 될 거라고. 공포가 현실이 되면서 인류사회에 큰 혼돈이 왔다. 사형집행이 중지되었고 전쟁이 중단되었다. 누군가 죽으면 자기가 따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청년자살, 학교폭력, 노인복지 해결에 재원이 투입되고 제3세계 지원에 엄청난 투자가 행해졌다.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은 나의 죽음이니까. 사망률이 더 낮아지면서 저승 대표는 ‘사망자 세 배 정책’을 실시했지만 인류는 노화방지약까지 개발해 함께 나눠 먹으며 안간힘을 썼다. 세 번째 다시 찾아온 저승 대표는 밝은 목소리로 선언한다. 노화방지제 덕분에 저승에서도 노화하지 않은 노동인구가 많아졌으니 그간의 정책을 폐기하고 이제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첫 소설을 쓴 지 6개월 만인 2016년 11월에 오랫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뒀어요.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선가요?
“아녜요. 공장-집, 집-공장을 반복하기를 10년 동안 하고 나니 20대가 다 가버렸어요.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좀 지치더라고요. 1년만 좀 쉬면서 못해 본 것도 해봐야지, 작정하고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었어요.”
―쉬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게 뭔데요?
“늦잠 자는 거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의 대답에 난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에겐 절실한 소망이었다.
―이젠 작가 인세로 살 만하게 된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3800만원이 들어왔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거의 2년은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책을 기획한 김민섭 평론가가 ‘올해 소망이 김동식 작가가 2층 전세로 이사 가는 걸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데, 그 소망은 이뤄졌나요?
“아뇨. 아직…. 지금 반지하방에서 6~7년째 살고 있는데, 특별히 불편하지 않아요.”
그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했으나 그는 특별히 자신이 불행하거나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열여섯이 될 때까지 성장했다. 야단맞을 일밖에 없는 학교가 싫어 학교 가는 시간에 옥상에 숨어 한나절을 보내거나 피시방에서 노닥거리다가 결국 중1 때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지만 특별히 후회도 없었다. 시급 1900원짜리 피시방 알바로 천원에 세 봉지 하는 건빵으로 사흘씩 견디며 생활할 때도 인생이 절망스럽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사고를 친 적은 없다. 서울로 상경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은 이후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어렵지 않게 통과했지만, 학벌을 보완해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더 큰 것을 성취해 보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저 뭔가 삶을 견디게 하는 소박한 위안거리가 필요했을 뿐.
“공장서 하루 만개 물건 뽑아도
누가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어
왜 하는지 모른 채 월급 받는 일
글 쓰면 사람들에게 영향 미쳐
그 모습 보여, 너무 새롭고 좋다”
다양한 글 쓰려고 노력하지만
잔인하거나 성적 묘사엔 거부감
“이야깃거리 떨어질 때 되면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가야죠
어떻게 하든 굶어죽진 않더라”
―소설 ‘회색인간’이나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를 보면, 인간이 ‘노래하는 존재’ ‘예술 하는 존재’로서의 자기 발견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이건 자기 경험에서 나온 얘기겠지요?
“모르겠어요. 어쨌든, 가장 큰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는 아닌 것 같아요. 물질적인 가치가 없는데 사람들은 왜 음악을 즐길까요? 아까 공장에서 다들 이어폰 꽂고 있는 것 보셨지요? 하루에 국자질만 600~700번을 반복하는데, 그 지루한 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이어폰 꽂고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듣는 거였거든요. 작품에 나오는 기계 같은 삶을 견디게 해주는 힘은 음악이고 문학이고 그런 거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이제 전업작가가 되신 것 아녜요? 글 쓰는 게 왜 좋으세요?
“뭔가 제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점 때문일까요? 그게 단순 재미든 뭐든 말이에요. 공장에서 제가 하루에 만개, 이만개씩 물건을 뽑아도 그걸 내가 왜 뽑고 있는지, 이게 어디로 누구한테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월급 받자고 하는 일이지, 왜 하느냐, 왜 사느냐 하는 게 없죠. 근데 글은, 제가 쓰면 그게 어떤 사람들한테 가서 재밌어하고 즐거워한다, 그게 보여요. 그 과정이 너무 새롭고 좋은 거예요.”
―앞으론 직업작가로 사실 건가요?
“더 이상 댓글이 달리지 않을 때가 되면,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가 되면 원래 일하던 공장으로 돌아가야죠.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든가, 어떻게 하든 사람이 굶어죽진 않더라고요.(웃음)”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작가님 소설을 보면서 전 이솝우화가 떠올랐어요. 짧은 글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죠.
“우화 같단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일부러 그렇게 어떤 메시지나 주제를 주자는 생각으로 쓰진 않았고요. ‘이런 상황을 보면 뭐가 맞는지 아시겠죠? 뭐가 잘못됐는지 아시겠죠?’ 뭐 이런 느낌으로 쓴 건 사실이에요. 다 아시는 것들이니까. 요즘 상식이 없어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다 알면서 나쁜 일을 하는 거지.”
―그러게요. 요즘 미투운동을 통해서 문화예술계의 소위 거장으로 불리던 분들의 치부가 드러나서 큰 충격을 주고 있어요. 예술이란 게,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부조리한 권력에서 인간을 구원해 주는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런 예술을 담당하는 창작자들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모르겠어요. (난감한 표정으로 침묵) 왜 그런 문제가 벌어지는 거죠? (씁쓸한 웃음) 좋은 글 쓰시는 분들이 뭐가 나쁜 건지 당연히 아시잖아요. 근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써놓고 왜 그걸 안 지킬까요? 원래 인간이 다 그럴 수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고, 뭐 작가도 사람인가보다 싶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댓글과 반응이 글 쓰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직업적인 문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 같은 데서 익명의 대중들이 하는 얘기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전문가, 평론가들의 평가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저는 뭐 굳이 나누자면 숫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온라인 평가가 절대다수잖아요. 한 명의 평가보다는 10명의 평가가 좋고 100명, 1000명, 1만명이 더 좋죠. 사실 뭐가 옳은 평가냐를 판정할 순 없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준다면 그쪽이 낫지 않을까요? 소수의 인정보다는 다수가 그냥 좋아하는 것, 제겐 그게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선 기성문단이나 평론가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많이 접해보질 못했어요. 그나마 접해 본 건, 제 책을 낸 출판사와 관련된 분들인데,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단점들, 문장이나 구성, 개연성에 한계가 많다는 걸 지적해 주시지만 대체로 ‘신박하다’(참신하고 신선하다는 인터넷 조어), ‘새롭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죠. 근데 그런 좋은 평가도 사실 제 배경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글을 안 써본 사람이고 그러니까…. 제 배경을 감안해서 좋게 얘기하는 거지, 절 진지하게 작가로 생각해주는 평가나 그런 건 아직 받아보지 못했어요.”
―다수의 독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갈 때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대중 취향으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스스로 설정한 최소한의 원칙이나 경계가 있나요?
“경계는 없고요. 최대한 다양하게 써보려고 노력해요. 가급적 피하는 건 있는데요.”
―뭔데요?
“잔인한 묘사. 누가 죽었다고 말로 표현하는 거랑, 어디가 잘리고 피가 튀고 그런 잔인한 묘사를 하는 건 좀 다르잖아요. 그런 건 제가 안 좋아하는 거라 피하고요. 너무 성적인 묘사에도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요.”
―호러물에서 잔인한 장면이나 성적인 묘사가 생생할수록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 아니에요?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글쎄요. 일단 제가 재밌지 않으니까요. 꼭 자극적이어야 재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여운이 남는다든지, 본 적 없는 신박한 얘기에서 오는 재미를 전 더 좋아하거든요.”
―어떤 문인들은 문학이 자신의 운명이고 소명이라고 해요. 작가님한테 문학이란 뭔가요?
“그분들은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 재밌게 사실 것 같아요. (웃음) 전 좀 재미없게 살았고요. 저한테 문학은 삶의 즐거움이나 재미를 줄 수 있는 거예요. 문학이 특별해지는 것보다는 대중적으로 가는 게 전 맞다고 보는데, 제가 문학에 대해서 뭘 논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 바람은 그저 누군가 제 글을 봐주시는 것뿐이지, 작가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에요. 요즘은 에스엔에스(SNS) 같은 데서 다들 자기 글을 쓰니까. 저야 뭐 거기서 조금 더 발전한 수준이죠.”
2002년 주류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노사모의 돌풍 속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한 일간지는 충격 속에서 이렇게 제목을 뽑았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2018년 봄, 문단과 언론은 지금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김동식을 ‘배출’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선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가와 익명의 독자들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녹취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