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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편견으로 서로를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거기가 어딘데??

등록 2018-06-30 13:45수정 2018-06-30 14:19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KBS <거기가 어딘데??>가 전하는 메시지
<거기가 어딘데??>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거기가 어딘데??>의 한 장면.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 ‘1박 2일’을 연출했던 유호진 피디의 새 탐사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첫 여행지는 오만의 사막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한국 방송에서 중동국가를 다룰 때 종종 무신경한 무례함이 비춰졌던 사례가 없는 게 아니니까. 이슬람 문화를 신비롭고 낯선 볼거리로 소비하기, 돼지고기와 술을 멀리하고 할랄(이슬람 율법이 허용한 것)과 하람(이슬람 율법이 금지한 것)을 엄격하게 지키는 태도를 놀리기, 테러리즘을 연상하며 일단 멀리하기, 서구 중심 문명의 대립항으로 기능하는 반문명으로 치부하기 등등. 유호진 피디가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혹시 이 프로그램도 다른 프로그램들이 저지른 실수들을 반복하는 건 아닐까 염려가 있었다.

출연자들이 중동 정세를 이야기하며 아이에스(IS·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를 먼저 언급하는 장면에서 나는 탄식했다. 물론 아이에스야 겁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도 외국 사람들이 한국 여행을 앞두고 “북한이 코앞인데 전쟁 위험은 없겠냐”는 말을 먼저 꺼내면 서운하지 않나. 그런데 실망감이 밀려올 찰나, 조세호가 조심스레 덧붙인다. “우리가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런데….” 자신들의 염려가 기우일 것을 알긴 안다는 듯한 그의 조심스러운 말투가 마음을 희한하게 누그러뜨렸다. 유호진 피디가 오만의 사막에는 정말 아무도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출연자들을 안심시킨 이후부터, <거기가 어딘데??>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완전히 낯선 나라일 거라 생각했던 오만 무스카트 국제공항에는 출연자들을 반기는 현지 여성팬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함께 사막을 걸을 베두인 가이드들은 출연자들에게 친근하게 농을 건넸다.

거리를 두고 조용히 바라보기

혹시 모든 걸 신기한 볼거리로 소비하진 않을까 싶었던 프로그램의 시선 또한 굉장히 정중하다. 카메라는 베두인들이 자신들의 신에게 기도를 바치는 장면들을 이국적인 구경거리처럼 착 달라붙어 찍는 대신, 먼발치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힐끔 보여주고는 그냥 무심하게 넘어간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게 얼마나 내밀하고 엄숙한 시간인지 알 것이다. <거기가 어딘데??>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겠다며 무리하게 다가가거나, 이해할 수 없다며 촌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같이 사막을 걸어갈 동료들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긋이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넘어간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공존하며 베두인들이 살아온 환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게, <거기가 어딘데??> 제작진이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기다렸다는 듯 일사병이 닥쳐오는 사막의 엄혹함과, 그런 가운데에서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조용히 낙타를 끌고 발걸음을 옮기며 기도를 올리는 베두인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기가 어딘데??>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을지를 조심스레 짐작한다. 여러 가지 복잡한 설명을 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는 예능치고는 제법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기가 어딘데??> 팀이 오만의 사막에서 세운 목표는 단순하다. 40킬로미터의 사막을 걸어서 종단하는 것. 양국의 문화를 충돌시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거나 문명에 대한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전에 해본 적 없는 새로운 도전을 하려는 일군의 연예인들이 하염없이 사막을 걸을 뿐이고, 그 목표를 위해 그 사막에 터를 잡고 살아온 베두인들의 지혜와 노하우를 빌릴 뿐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은 눈앞의 목표를 위해 서로 기대고 우호적으로 교류하는 팀의 여정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조세호는 그들이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나누는지 배우고, 아침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여정이 끝난 밤이면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넨다. 딱 거기까지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동안 서로 다른 채로 공존한다.

종종 무신경하고 무례했던
한국 방송의 이슬람문화 소비
오만의 사막 종단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는 조금 달라

무리한 접근, 복잡한 설명 아닌
조용히 바라보며 느끼기
제주 난민 문제 생각할 때
한번쯤 곱씹어볼만한 태도

한 사회의 현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현상의 맥락을 이해하는 게 이처럼 중요하다. 위에서 북한을 이유로 한국 여행을 꺼리는 서구인들의 예를 들기도 했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제1세계 문명권의 시각 또한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우리가 이슬람 문명을 소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들을 죄다 개를 잡아먹는 미개한 사람들 취급 하는 시선, 식민통치와 내전, 군부독재에 시달려온 신생 독립국가를 바라보는 시혜의 시선, 심지어 한국에 하청을 주는 애니메이션에는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사무실에 갇힌 채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예노동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 무례한 편견 중 상당수는 단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이 어쩌다가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그 맥락을 지우자 가장 흉하고 자극적인 모습들만 남았더랬다. 한국 또한 많은 시간을 이와 같은 편견들을 지우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예멘 난민을 둘러싼 편견들

최근 제주 무사증 입국 제도를 이용해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들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전세계 난민 수용의 역사가 늘 그랬듯, 인도주의적인 원칙에 입각해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보다는 그들을 수용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입장이 더 많다. 이 이슈에 있어서만큼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도 모호하다. 리얼미터가 전국 19살 이상 성인 500여명에게 응답을 받은 지난 6월20일치 조사에 따르면, 난민 수용에 대한 보수층의 반대 여론이 52%인 가운데, 진보층 또한 찬성 44.7% 대 반대 44.1%로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문제는 냉정하게 사안을 따져 보는 대신 이슬람포비아를 전파하는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이 모든 건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한 이슬람의 음모”라는 일부 기독교인들부터, 이슬람 문명권은 여성혐오가 심각하니 난민 중에서도 남성들은 가려 받아야 한다는 일부 배제적 페미니스트들, 난민들이 범죄를 일으키고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거라며 국경을 통해 하루 2만명씩 시리아 난민을 받았던 독일을 예로 드는 사람들, 5인 가구 기준 생계지원금 138만원을 졸지에 난민신청자 1인당 생계지원금으로 둔갑시켜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까지. 온 인터넷이 이슬람포비아로 가득하다.

김원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기자가 지난 6월22일치 기사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우려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4가지’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난민신청자 수를 효과적으로 통제해온 나라다.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래 지금까지의 난민인정률은 4.1%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지금 들어와 있는 500여명 중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수십 수백만이 한꺼번에 들어와 사회적인 혼란을 초래하는 미래 같은 건 한국의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지금 제주에 들어와 있는 500여명은 아직 이렇다 할 문제나 범죄를 일으킨 바가 없다. 6월 한달 동안 예멘 난민들이 길이나 버스에서 습득한 분실물을 찾아주려 지구대에 방문한 사례가 4차례나 있었지만, 우리는 일어난 미담 대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춰 그들을 경계한다.

우리 일이 아니라 믿었던 난민 문제가 갑자기 우리 영토에서 일어나니 당혹스러울 수 있다. 낯선 나라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니 경계부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예멘이 처한 환경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그들이 겪었을 위협과 그들이 지금 제주에서 영위하고 있는 삶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았다. 그 모든 일들에 앞서 일단 먼저 가지고 있던 선입견들을 근거로 그들을 배척하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한국방송 <거기가 어딘데??>가 보여준 태도를 우리 모두가 한번쯤 곱씹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일단 상대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먼저 지긋이 바라보고, 굳이 같아지려고 노력하거나 상대를 평가하려 드는 대신 서로가 다른 채로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 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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