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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도시, 최선입니까’ 건축영화의 질문

등록 2018-10-25 05:00수정 2018-10-26 16:45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오늘 개막]
25~29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

‘재개발이 더 나은 삶 가져온다’
잘못된 신화에 맞선 사회운동가
주거복지 모범 ‘로빈후드 가든’
‘철거냐 복원이냐’ 논란 비추며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물어본다
‘시민 제인, 도시를 위해 싸우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시민 제인, 도시를 위해 싸우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처럼 사라졌으나 기억하려는 자의 의지로 기록된 공간들이 있다. 또는 공간과 기억을 통째로 삭제하는 데 맞선 창의적인 ‘도시혁명가’도 있다. ‘건축을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25~29일 열리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아트하우스 모모)에선 도시와 건축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작품들이 여럿 나왔다.

개막작인 <시민 제인, 도시를 위해 싸우다>(팻 타노어·2016년)는 20세기 도시계획사에 혁명을 일으킨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제인 제이콥스의 활동과 사상을 소개한다. 지금이야 도시의 복원과 재생이 중요한 화두이지만, 제이콥스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961)이라는 책을 펴냈을 때만 해도 ‘전지전능한 도시설계’ 신화에 의심을 품는 이는 별가 없었다. 도시개발업자 출신으로 뉴욕시 공원위원회 위원 등을 맡았던 정계 인사 로버트 모지스는 전후 개발붐을 타고 뉴욕을 주물렀다. 그는 암 종양을 칼로 도려내듯 도시문제도 집단이주, 철거, 대규모 주택과 도로 건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거리를 쏘다니길 즐기고 사람들의 행동을 치밀히 관찰하는 뉴요커 제이콥스의 생각은 달랐다. 맨홀 뚜껑의 패턴과 글씨로 하수시설의 원리를 추적하는 글을 쓸 정도로 호기심과 관찰력이 남달랐던 제이콥스는 뉴욕 이스트할렘을 샅샅이 돌아보면서 겉으로는 더럽고 혼란스러운 듯 보이는 도시에도 그 나름의 질서와 균형이 있음을 간파한다. 좋은 도시란 정부, 도시계획가들의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가게 점원, 술집 주인, 보행자 등 수천명의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서로를 지지·보완할 때 즉 상향식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죽은 도시는 어떤 면에선 아름답다. 예측할 수 있고 사람들도 많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도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죽은 도시라는 의미다. 살아있는 도시는 혼잡하고 짜증을 유발하지만 사람들이 꿈이 이뤄지는 곳이다.” 제이콥스는 뉴욕 워싱턴스퀘어의 고속도로 관통계획에 반대운동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자동차 중심의 도시개발을 저지하려는 시민운동에 동참하며 영감과 활기를 불어넣었다.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전하영 프로그래머는 “제이콥스는 재개발과 재건축이 더 나은 삶을 가져온다는 잘못된 신화의 뼈아픈 진실을 밝혀낸 투사적인 인물이다. 투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한국적 현실에서 간과하고 있는 도시 생태계의 가치를 상기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작품을 개막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라진 로빈 후드’.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사라진 로빈 후드’.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둔촌주공아파트와 비슷한 운명을 겪으면서도 대비되는 영국의 사례도 있다. 1972년 부부 건축가 앨리슨·피터 스미슨이 설계한 런던 빈민가 포플라의 ‘로빈 후드 가든’이다. 커다란 정원을 마주보고 들어선 기다란 아파트 두 채로 구성된 로빈 후드 가든은 과감한 대규모 녹지 배치, 주민들간의 소통을 고려한 디자인 등으로 주거복지 투자의 모범사례로 꼽혀온 곳이지만 재개발 목록에 올라 찬반이 일었던 곳이다. <사라진 로빈 후드>(클레아르요스 에두아르도 파파니콜라우·2018)는 철거를 앞둔 건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런던의 떠들썩한 거리를 연상시킬 만큼 넓은 아파트 복도에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끼니를 준비하는 노인, 발코니에 빨래를 너는 여성, 몇호에 살고 있는지 서로 알아보는 동네 이웃들…. 런던 토박이 70세 주민이 연주하는 전자 오르간 음향이 오후 햇살처럼 퍼지며 카메라는 거주민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다양하게 꾸민 공간을 담담하게 비춘다. 보존론과 철거론이 맞서다 결국 지난해말 철거공사에 들어갔지만, 영국 빅토리아앤알버트(V&A) 뮤지엄은 모두 헐린 둔촌주공아파트와 달리 철거될 건물에서 3개 세대 공간을 잘라내 수장고에 보관했다. 이 보존된 잔해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로빈 후드 가든:반전의 폐허’(Robin Hood Gardens: A Ruin in Reverse)라는 이름으로 동영상과 함께 전시돼 관심을 모았다.

‘골목의 이야기’.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골목의 이야기’.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제공
서대문형무소와 맞붙어 있어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불렸던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골목의 재개발 과정을 담은 다큐도 상영된다. <골목의 이야기>(권순현·2016)는 여관, 새, 차벽, 포크레인 등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의 ‘당사자’들의 시선을 빌어 전면철거 재개발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사라진 인물들과 사라지지 않은 세계 혹은 그 반대>(차미혜·2017)는 폐업한 종로 예지동의 바다극장 등 서울 도심의 쇠락한 장소들을 천천히 훑어내려간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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