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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우회, 김기덕 ‘3억 역고소’에 “명예 훼손한 건 김기덕 자신”

등록 2019-03-07 14:13수정 2019-03-07 14:31

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 7일 긴급 기자회견
“수많은 피해 증언에 단 한마디 사과·반성없이
역고소로 대응하는 김기덕 행보에 분노한다”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영화감독 김기덕이 2018년 6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영화감독 김기덕이 2018년 6월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계 ‘미투 운동’(#ME TOO·나는 폭로한다)의 대표적 가해자로 지목됐던 김기덕 감독이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피해 증언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나 성찰도 없이 역고소로 대응하는 행보에 분노한다”며 김 감독에게 “미투운동에 대한 백래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공대위는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엔젤라홀에서 ‘영화감독 김기덕 3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강혜란 민우회 공동대표는 지난달 12일 김 감독이 서울 서부지법에 낸 소장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김 감독은 민우회가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자신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막작 초청을 취소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자신을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고 해당 영화의 국외 판매와 개봉이 어려워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소장에서 주장했다. 김 감독은 2017년 여배우 ㄱ씨가 자신을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지만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폭행 혐의에 대해서만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점을 들어 민우회의 활동을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7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엔젤라홀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유진 기자
7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엔젤라홀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유진 기자
공대위는 즉각 반박했다. “증거불충분은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성폭력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자회견에 나온 박건식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피디는 “취재 과정에서 여배우 ㄱ씨뿐만 아니라 (김 감독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조용히 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다”며 “영화계가 워낙 좁아 피해자 본인이 감내하고 있을 뿐이지 피해 사례가 없다고 말하기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피디수첩은 지난해 2차례에 걸쳐 영화촬영 현장 등에서 김 감독으로부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는 여배우들의 폭로를 내보낸 바 있다. 이후 김 감독은 여배우 ㄱ씨와 피디수첩 제작진을 각각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말 모두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여배우가 허위로 고소했다고 보기 어렵고 방송사 제작진은 김 감독을 비방할 목적이 없으며 증언 내용도 허위라고 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날 박 피디는 김 감독을 향해 “시민단체에 억대 소송을 걸 게 아니라 본인의 과거를 차분하게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했다.

민우회는 입장문을 내고 “역고소는 전형적이고도 익숙한 가해자들의 모습”이라고 꼬집은 뒤 “피해자와 정의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민우회는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김 감독을 두고 “영화현장을 인권침해의 현장으로 만든 것은 김기덕 자신이며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것도 김기덕 감독 자신”이라며 “피해자와 진실을 규명하려는 언론과 단체를 고소하는 행위가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김 감독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명예라도 지키고 싶다면 여기서 멈추라”고 요구했다. 공대위는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의 도발을 경험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 가해자의 편이 아니었다”며 “이번 소송의 결과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최근 최영미 시인에 대한 고은 시인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보여주듯, 소송의 청구와 기각은 반성하지 못하는 가해자 자신의 추한 모습과 회생 불가능을 드러낼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김 감독은 미투 폭로 뒤 한때 잠적했지만 최근에는 국외에서 영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날 개막하는 유바리영화제는 민우회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상영한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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