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비시 <오늘의 운세>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두 남녀의 소개팅 결과를 예측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늘의 운세>(제이티비시, 2019)란 프로그램이다. 명리학자, 관상학자, 점성학자, 심리학자가 ‘예측 전문가’ 패널로 출연했다. 소개팅 자리에 나온 두 남녀의 직업, 과거 이들의 경력, 두번째 만남이 이뤄질지 등을 놓고 맞히는 게임을 했다. 놀라운 점은 예측 전문가 패널들이 두 남녀의 직업을 상당히 잘 맞혔다는 점이다. 출연진의 과거 경력, 두번째 만남이 이뤄질지에선 연예인들로 구성된 일반인 패널들과 비슷하게 낮은 적중률을 보였지만, 출연진의 직업을 맞히는 코너에선 전문가 패널이 눈에 띄게 잘 맞혔다. 패널로 출연한 명리학자도 직업 적중률이 상당했다.
많은 이들이 진로 선택의 기로에서 사주 상담을 찾는 이유는 그만큼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사주 상담 시장이 몇조원에 이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자녀들의 진로 상담을 위해 종종 동네의 사주 상담가를 찾아가곤 했다. 상담가는 엄마에게 “자식들 다 잘되니 걱정 말라”는 뻔한 조언부터 “자식들을 다 문과 보내야 할 거 같네요” 같은 살짝 구체적인 조언도 했는데, 사주 상담 때문은 아니지만 엄마의 자식 넷은 모두 이과가 아닌 문과에 갔다.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정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지만 미신과 사이비로 치부되고 마는 사주명리학이 현대에서 대중에게 널리 이롭게 쓰이는 날이 올까. 요즘 심리학 성격검사도구 엠비티아이(MBTI)가 다시 인기다. 자가진단을 통해 개인의 성격과 적성을 알려주고 유형에 알맞은 직업도 조언해준다. 엠비티아이처럼 사주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진로를 추천받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농경사회에서 발달한 명리학을 현대사회의 정교한 직업 예측 도구로 발전시키려는 학계의 노력은 활발하다. 2000년대 이후 사주와 직업의 연관성에 관한 논문이 이미 수십편 나와 있다. 의사, 교사, 약사 등 특정 직업군의 사주팔자 표본을 확보해 공통점 통계를 낸 여러 연구들처럼 현대의 사회과학 연구 방법을 활용한 명리학 양적 연구들이 상당하다. 어떤 사주 유형이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분노조절력이 좋은 사주 유형은 무엇인지도 논문으로 나와 있다.
최신 논문들의 동향을 보면, 직업을 선택할 때 개인의 사주팔자 생김새에 따라 사업형인지, 직장형인지, 자유형(프리랜서)인지 나눌 수 있고 이에 따라 진로 조언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누구나 직장생활은 힘들고 고된 노동이지만 리더의 기질이 다분한 사업형 사주나 프리랜서 기질을 가진 자유형 사주는 직장생활을 하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자주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인 콜센터 직원 318명의 사주 구조를 통계 내 분석한 논문을 보자.(‘콜센터 상담사의 사주구조와 회복탄력성, 직무스트레스의 관계 연구’, 2018) 감정노동은 누구에게나 힘든 업무지만, 사업형 사주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활동하는 것을 선호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정해진 감정표현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 업무에서 직장 내 직무 스트레스를 더 크게 받고 있었다.
미래에는 생년월일시를 입력하고 직업을 추천받는 앱도 가능할 듯하다. 논문 ‘웹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명리학의 직업이론 연구’(2014)를 보면, 사주 이론상 군인과 경찰에 해당하는 사주팔자 요건 다섯가지를 추려 군인 63명, 경찰 68명(총 131명)을 대상으로 그중 한가지라도 해당하는지를 집계해봤는데 103명(78.63%)이 한가지 이상의 요건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인터넷에 생년월일시를 입력하면 직업을 추천해준다는 사이트가 있다. 직접 해보았다. 추천 직업군으로 나는 ‘건축건설업’과 ‘유통운송업’이 나왔다. 기자라는 현 직업과 전혀 맞지 않아 의아해하며 설명을 다시 읽어봤다. “당신은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건축·건설업 또는 움직임이 많은 일 유통·운송업 등에 종사하면 좋다.” 추천 직업군은 맞지 않았지만 ‘관찰력이 좋다’, ‘움직임이 많은 일에 종사’ 같은 설명에서 작은 희망을 걸어 볼까.
봄날원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