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10년 전이다. 취업 준비를 한다며 3년째 백수로 도서관에 앉아 있자 엄마가 사주를 보고 오셨다. “아무래도 니 아빠가 이름을 잘못 지어서 취직이 안 되는 거 같다”며 엄마는 개명을 권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이름 바꿀 최적의 시기였다. 본격적인 사회생활 전이었으니. 하지만 난 그때 “무슨, 이름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느냐”며 이만큼 살았는데(그래봤자 20대) 그냥 살겠다고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개명 생각에 꽂힌 것은 내가 사주명리학 ‘덕질’을 시작하면서다. 명리학적으로 내 사주는 ‘수 기운’이 부족하고 수 기운을 용신(내게 필요한 에너지)으로 쓰는데, 내 이름은 ‘토 기운’이 수 기운을 억제해 토극수(土克水)하고 있는 형태였다. 가뜩이나 부족한 기운을 이름으로 내쫓고 있었다.
그리하여 3년 전 첫번째로 찾아간 철학관에서 무려 50만원이나 주고 새 이름을 지었다.(작명 시세는 보통 20만원 안팎이다.) 선생은 나를 보더니 대뜸 “왜 이렇게 안 좋은 이름을 달고 사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이름만 바꿔 불러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며 주변에서 이름 왜 바꿨냐 물어오면 당신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딱 한마디면 된다고 했다. “너무 촌스러워서요.”
그렇게 혼쭐이 나고 며칠 뒤 새 이름을 받았을 때,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새 이름을 머리맡에 붙여놓고 본격적으로 법적 절차를 준비했다. 하지만 새 이름을 인터넷에 쳐보니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 게 아닌가. 그리 흔한 이름도 아니었는데. 그 이름으로 먹고사는 동종업계 직업인을 발견하고 결국 마음을 접었다.
두번째로 찾아간 작명소에서 다시 이름을 지었다. 이 작명소는 내 이름 한 글자만 바꿔도 수 기운을 극하는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며 한 글자만 바꾼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게 그거니까 그냥 살아라.”
그 뒤로도 좋은 이름을 지어준다는 작명가를 찾아가 몇 개의 이름을 더 지었지만, 정말 ‘딱 내 이름이다’ 싶은 이름을 못 만났다. 아무리 좋은 이름을 지어 와도 며칠 뒤면 안 예뻐 보이고 더 좋은 이름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결국 내 이름은 내 손으로 짓겠다고 성명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한글 이름 사전>도 봤다. 기자에게 어울리는 순한글 이름 ‘김마감’ 이런 것도 고려해봤다. 매사 일처리가 깔끔한 사람이란 뜻이란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좋은 이름이란 매일 부르고 듣는 한글 발음의 오행 에너지가 내 사주의 과한 기운을 눌러주고 부족한 기운을 보강해주는지에 달렸다. 수 기운이 부족한 나는 이름에 ㅇ과 ㅎ(모양부터 물방울처럼 생겼다)이 들어가면 좋다는 것이다. 옛날엔 한자의 획수를 따져 길한 획수로 이름을 짓는 게 중요하다고 봤지만, 일상에서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 지금은 여러 작명 원리 중 후순위가 되고 있다. 업계에선 좋은 작명의 여러 조건 중 뭐가 더 중요한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 중이라 작명가마다 선호하는 작명법이 다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만들어진 과거의 작명법에 얽매이기보다 상식적으로 부르기 쉽고 세련된 이름, 고유하고 의미 깊은 이름이 당사자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게 내 공부의 결론이다.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법원도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 대부분의 개명 신청을 받아주고 있다. 새 이름을 짓기만 하고 바꿀 용기가 없는 내게 지인 한 명이 조언을 해주었다. 10년 전 개명한 지인은 “더 좋은 이름 찾기로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새 이름으로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는지, 그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던 때, 아는 스님이 새 인생을 살라며 지금의 이름을 지어줬고 새 삶을 살고픈 간절한 마음에 스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타고난 사주와 운명이 정해져 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는 영국의 유명한 시구절이 답이 될 듯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운을 적극 개선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용기가 없어 주저한다. 확실한 것은 운명의 주인이 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인생은 다를 것이란 사실이다.
봄날원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