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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사주 공부한다, 왜 말을 못 해?

등록 2021-02-20 11:38수정 2021-02-20 23:06

[토요판] 발랄한 명리학
10. ​명리학 공부 ‘커밍아웃’ 하기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무토(戊土), 소리질러!”

“우와, 여기 무토들 모임이네 신난당.”

전국의 ‘토’(土) 일간들이 한자리에 모인 순간이었다. 유튜브에 명리학 강의를 올리는 한 유튜버가 ‘신축년 운세―무기(戊己)편’ 강의를 실시간 온라인 생중계로 방송하자, 전국의 토 일간들이 화면 앞으로 모여들었다. “남편이 무진일주라 들어와봤어요.” 채팅창엔 무토, 기토, 그리고 토 일간을 주변에 둔 사람들이 몰려와 환호성을 질러댔다. 사주 여덟 글자 중에 자기 자신을 뜻하는 자리를 일간이라고 하는데, 목화토금수 중 일간에 토를 가진 이들을 한자리에서 이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무토와 기토의 ‘대환장 파티’였다.

실시간 접속자 수가 400명을 넘겼는데도 유튜버는 “500명까지 모이면 시작할게요”라며 뜸을 들였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총 10개의 일간을 위한 새해 운세 강좌 여러편이 생중계되는 몇주에 걸쳐, 하루는 전국의 갑목(甲木)과 을목(乙木)들이, 또 하루는 병화(丙火)와 정화(丁火)들이 댓글창에서 폭풍 수다를 떨며 신축년을 함께 맞이했다.

옛날에는 사주로 신년 운세를 봤다는 이야기를 숨어서 하고, 명리학을 배우려면 음지의 술사를 찾아가 은밀하게 전수받아야 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만세력 앱을 통해 생년월일시만 입력하면 한 사람의 사주 여덟 글자를 금방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내 일간이 10개 천간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 금방 알고 운세도 아주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인터넷에선 머리가 희끗한 선생의 정통 명리학 강좌부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용 힐링 영상까지, 저마다 개성 있는 사주 채널을 열고 경쟁한다.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명리학을 배울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나는 명리학 공부를 시작한 뒤 몇년간 주변에 내가 이 공부를 한다고 밝히질 못했다. 그 이유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주를 공부한다고 하면, 뭔가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과학적인 믿음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이라는 시선이 여전히 있다. ‘미신 신봉하는 사람 아냐?’ 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까 봐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1~2년 전부터 난 달라졌다. 한 모임에서 친구들이 당당하게 사주에 대한 지식을 피력하는 광경을 목격한 뒤부터다. 그 모임에서 친구 한명이 “사주로 보면 나는 큰 나무래, 갑목(甲木) 일간이지” 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트자, 다른 한쪽에선 “너 갑목이야? 나 을목(乙木)인데. 우리 둘 다 목(木)이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친구 둘은 자기 일간이 10개 천간 중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올해 대략 자신들의 운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술술 읊어댔다. 어머, 다들 명리학 공부하고 있었던 거니?

하루는 집에 갔는데 남동생이 자기 휴대폰에 만세력 앱을 깔았다며, 자신이 사주를 봐줄 테니 누나의 생년월일시를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다들 이렇게 사주를 열공하고 있었던 건지, 웃음이 나왔다.

일상에서 이런 경험들을 만난 뒤 내 취미에 대한 왠지 모를 뻘쭘함에서 조금 벗어나게 됐다. 다들 사주에 관심이 있으면서 겉으로만 안 그런 척한다는 걸 알게 됐달까. 이젠 내 취미는 명리학 공부라고 당당히 밝히기 시작했다. 사주명리학을 비밀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공부가 즐거워졌고 내 취미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명리학 공부를 존중하고 같이 공부하자며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중에서도 내 취미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이는 바로 엄마다. “느이 아버지 사주 한번 봐라, 사주에도 그렇게(?) 나오니?”, “○○이(조카) 사주 한번 봐라. 공부는 잘하겠니?” 등 무척 관심이 많으셨다. 엄마, 사주팔자가 그렇게 만능은 아니라고요. 요즘은 하도 여러가지 주문을 하셔서 적당히 거리를 두긴 하지만, 엄마를 고객으로 사주를 봐주는 재미는 생각보다 쏠쏠한 것이었다.

봄날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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