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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십의 성소수자…두근두근 ‘열다섯의 나’를 기다리네

등록 2021-05-01 11:13수정 2021-05-01 18:06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30. 오십이 십오에게

성소수자 어른 세대인 나로서는
10대에게 줄 정답·해답 없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그리고 우린 같이 걸을 것이다

원하는 삶 무엇이든 얻을 거야
낙관적인 판타지만 말하진 못해
그냥 평범하고 즐겁게 살아도 돼
넘어지면서 살아, 살아남으라고
그때 그 사진 속 인물보다 훨씬 더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를 마주할 수는 있지 않을까. 유리문 너머에서 그런 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한 건지도. 사진 류 제공
그때 그 사진 속 인물보다 훨씬 더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를 마주할 수는 있지 않을까. 유리문 너머에서 그런 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한 건지도. 사진 류 제공

올해에는 부산의 한 책방에 상주하며 몇몇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역에서 책의 영토를 지키려 분투하는 서점 대표님들이 주민들과 함께 문학의 자장을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셨고, 나에게 프로그램을 함께 하자고 청해오셨다.

성소수자는 언제나 주민의 일부로 존재하면서도 지워진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같이 해보자는 그분들의 제안이 고마웠다.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또 기회가 있을까, 할 수 있는 한 애써보아야 한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책무가 다시 나를 끌어올린다. 버거울지도 모르는 일에 용기를 내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타인의 용기에 기대어서였다.

그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퀴어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소 ‘가가가가’(‘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이란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라는 뜻의 경상도 방언)였는데, 함께 논의한 프로그램들 가운데 가장 기대가 되기도 하고 또 걱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상담’이라는 것이 그 어떤 분야보다 전문성이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일단 해보자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그 목마름을 알기 때문이었다. 퀴어에 관한 말이나 영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시대이긴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를 대면하여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모두의 것이어야 마땅한 사랑인데

나에게 정답이나 해답을 제시할 능력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일일까, 떠밀린 자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근원 너머의 질문에 희미한 힌트라도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였다. ‘좋아졌다’고는 말하지만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니 어떻게라도 미래 세대에 실낱같은 희망을 직접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겨우 한 사람이겠지만, 그럼에도 주민들 사이에 섞여 존재하는 한 사람이기에,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웃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고 나 역시 그를 만나면서 우리는 겨우 둘뿐이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고 목소리를 남겨둠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의 꽉 막힌 숨통을 조금은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아주 미약하고 흐릿한 희망에 불과하지만, 용기를 내기에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했다.

어쩌면 문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토록 질식할 것 같은 인간의 시간 속에 숨을 불어넣는 것, 미처 가닿지 못한 곳에 가닿을 수 있는 목소리 같은 것. 아무리 희미하고 흐릿하더라도 움츠렸던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반가움 같은 것, 길을 잃고 헤매던 자신의 이름이 마침내 불리는 일 같은 것.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으로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를 매주 토요일 예약제로 운영하는 부산의 인문학 서점 ‘책방밭개’. 김비 제공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프로그램으로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를 매주 토요일 예약제로 운영하는 부산의 인문학 서점 ‘책방밭개’. 김비 제공

지금 시대와 빗대어 말하기엔 너무 멀지만, 삼십육년 전의 열넷이나 열다섯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의 경우엔 사랑을 느끼는 대상의 다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몸에 관한 문제였으니 다를 수 있겠지만, 숨어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짓눌릴 수밖에 없던 압박감은 다르지 않았으리라.

아무도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는데, 나는 스물네시간 보이지 않는 입이 내 얼굴을 꽉 감싸쥔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고, 입 밖에 내면 당장에 따돌림이나 조롱받을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지금도 여기 이 사회는 차별금지법은 모른 체하면서 자신들은 단 한번도 성소수자를 비난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사랑이 존재하는 것처럼 온통 남녀의 결합을 위해서만 수백년 수천년 동안 몽롱하게 끌어올린 사랑 담론은 이미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을 하고 사는 존재들을 배제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번 적지만, 생물학적 이성애가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당신들의 사랑이 너무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누군가 다른 몸, 다른 정체성을 지닌, 당신과 다른 사람의 사랑 역시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두의 것이어야 마땅한 그 사랑을, 특정 조건의 누군가에게만 존재하는 것처럼 일종의 모의를 진행한 이 역사가 이미 폭력이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당신도 남자가 아닐 수 있다거나 여자가 아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운 좋게도 하나의 성별로 지정될 수 있는 염색체와 호르몬과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무수히도 많은 ‘다수’인 당신의 존재처럼, 그렇지 않은 누군가의 존재 역시 ‘당연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한 존재를 마치 곁에 같이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기괴한 괴물처럼 묘사하며 사회 밖으로 떠밀었던(혹은 떠밀고 있는) 이 사회의 태도는 진정 폭력이 아닌가, 왜 반성이 없는가, 이만큼 성숙해진 한국 사회가 왜 고치려 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의 누군가 찾아온다면, 일단 떡볶이를 사러 같이 갈 것이다. 김비 제공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의 누군가 찾아온다면, 일단 떡볶이를 사러 같이 갈 것이다. 김비 제공

열다섯의 내 앞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런 현실에 관해 말해야 하는 입장에서, 성소수자인 어른 세대인 나로서 그들과 마주하는 일은 솔직히 곤혹스럽기도 하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학교 밖을 나가면 차별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아도 네가 원하는 성별로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일은, 상담이 아니라 어쩌면 가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상담이라고 그들을 도와준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두려움을 안기고 겁박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나로 그들 앞에 서고 싶지 않은데, 고통스럽지 않게 고통을 말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다시 막다른 길에 서고 만다.

‘선생님, 왜 우리 사회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죠?’라는 물음에 어른으로서 해줄 말이 없다. 들으나 마나 한 아주 얄팍한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나인가, 천장만 올려보고 눈만 껌뻑거릴 거면 뭐 하러 상담을 한다고 마주 앉았나,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달콤한 이야기들만 해줄 수는 없는 일. 네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어디에든 도움 받을 곳이 있고,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도 무수히 많다고 낙관적인 판타지만을 말할 수는 없다. 네가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기만 하다면 성소수자인 네 삶은 어디에서든 충분히 존중받고 그 대가를 얻을 것이란 거짓말은, 이 사회가 스스로의 부조리와 폭력을 은폐하려 내밀었던 ‘무턱대고 긍정주의’가 아닌가? 이렇게 호르몬 치료를 받고, 이렇게 수술을 하고, 이렇게 외모를 꾸미면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일은, 그동안 이 사회가 여성이나 남성에게 주입해왔던 욕망을 그대로 답습하는 또 다른 동어반복이 아닌가? 이는 또한 지금 이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일단 대학만 들어가면 성공의 길에 가닿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거짓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 프로그램을 위한 김비 작가의 친필 편지. 김비 제공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 프로그램을 위한 김비 작가의 친필 편지. 김비 제공

기껏해야 이 거대한 사회 속 부품 하나가 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책무이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비겁한 짓을, 나는 다시 또 그럴듯한 해결책이라고 궁지에 몰린 그들에게 내밀게 되는 건 아닌지. 나 역시 다시 또 부끄러운 어른으로 그들을 마주해야 하는 건 아닌지.

1980년대 중반, 나 같은 사람의 모습을 처음 본 건 한 유명 성인 잡지의 해외 토픽 난에서였다. 남자 중학교에 다녔으니 몇몇 아이들은 활자나 사진으로 찍힌 그런 성인물을 던지고 빼앗고 돌려 보는 것이 그 시절 남학교 교실 풍경이었는데, 우연히 책상 위로 날아든 잡지 속에 한 외국인이 상체를 드러낸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파마를 한 머리는 길었고 화장을 했지만, 상체는 남성의 것이었다. 그때에는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조차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였으니, 간단히 ‘여장 남자’로 소개하고 있었다. 킥킥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혀버린 잠시 잠깐의 사진 한장이었지만, 그때 그 사진은 오십이 넘은 지금도 꽤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 내가 그 사진 속 인물과 나를 동일시할 수 있었는가 아닌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단순히 추억의 사진 한장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서, 나는 사진 속 그 사람 생각을 했을까? 이상하게도 지워지지 않는 사진 한장 때문에 잠을 설쳤을까? 누군가 나의 혼란스러움 앞에 마주 서주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모두들 너무 바빴다. 먹고사느라 바빴고, 각자의 폭력을 견디며 싸우느라 바빴고, 자기들만 행복해지느라 바빴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여자 만들고 남자 만드느라 바빴다. 그 사람이 사진 속에서가 아니라, 성인 잡지 속에서가 아니라, 해외 토픽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앞 유리문 건너편에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면, 열다섯의 나는 훨씬 덜 고통스러웠을까, 위로가 되었을까?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었던, 사진 속 그 희미한 웃음의 의미를 나는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상체를 드러내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때 그 사진 속 인물보다 훨씬 더 환하게 웃으며 누군가를 마주할 수는 있지 않을까? 유리문 너머에서 그런 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충분한 건지도. ‘어른’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은 혼란’을 보여주면 되는 일인지도.

일단 떡볶이를 사러 같이 간다

상담 날짜는 매주 토요일 오후, 하지만 벌써 3주째 아무도 신청을 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두번째 토요일부터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편지로 적기로 했다. 여기 이곳에 찾아오지는 못하더라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에, 사람을 마주할 수조차 없는 무기력 속에 있을 누군가에게, 여기 너를 닮은 사람이, 너와 비슷했던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기록하기로.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의 누군가 찾아온다면, 일단 떡볶이를 사러 같이 갈 것이다. 서점 근처에 맛있는 떡볶이집도 알아두었다. 떡볶이집까지 걸어가는 길가에 기차가 드나드는 굴다리가 있는데, 기찻길 옆에 주민들이 자그만 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고 기르고 있는데, 철망 너머로 귀엽게 키를 키운 모종들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같이 볼 것이다.

부산의 인문학 서점 ‘책방밭개’에서 운영하는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의 문패. 김비 제공
부산의 인문학 서점 ‘책방밭개’에서 운영하는 상담이 필요한 퀴어의 시간 ‘가가가가’의 문패. 김비 제공

‘저 채소가 뭔 줄 아니?’ 물어볼 것이고, 아마 그 아이는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고, 나 역시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오십이 넘어도 모르는 건 모르더라, 야!’ 그렇게 머쓱하게 대답하고는 혼자 큰 소리로 웃을 것이다.

떡볶이를 사러 갔지만, 오징어튀김을 더 많이 집어 먹을 것이다. 떡볶이는 포장해 손에 들고, 오징어튀김을 집어 먹다가, 다시 또 오징어튀김을 더 포장해달라고 말할 것이다.

우린 특별하지 않고, 특이하지도 않으며, 아주 평범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나의 마음을 읽어줄까? 떡볶이를 먹으러 왔다가 오징어튀김을 더 많이 먹었던 것처럼, 기찻길 옆에 텃밭을 키우는 주민의 마음처럼, 이해할 수 없고 위태로운 길 위에 키운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아줄까? 뜨끈해진 검은 비닐봉지를 품어 안고 오다가, 갑자기 그냥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너를 나는 그냥 보내줄 것이다. ‘잘 가!’ 손을 크게 흔들고, 마음속으로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되뇔 것이다. 주눅 들지 말고, 겁내지 말고, 들이받으면서 살아! 넘어지면서 살아, 살아남아! 그렇게.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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