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이 주연이다
‘나의 아저씨’ 아이유 할아버지 이영석
‘나의 아저씨’ 아이유 할아버지 이영석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대사를 선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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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분은….’ 지난 20일 폐막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에서 주군 ‘영공’ 등장 때 눈이 커진 관객들이 많다.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속으로 외치게 된다. ‘아이유의 할아버지!’ 맞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 생판 모르는 이지안(이지은)을 어릴 때부터 도와준 청소부 할아버지 ‘춘대’다. 늘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던 춘대는 <조씨고아…>에서 왕으로 나와 근엄한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한다. 드라마와 영화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이들을 들여다보면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많다. 배우 이영석(62)도 그중 하나다.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인상적인 점은 배역에 따라 기운의 세기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하나뿐인 내편>(2019)의 노숙인처럼 몸과 마음이 나약해진 소시민 역을 주로 맡았지만, 무대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씨고아…>에선 풍부한 성량과 묵직한 에너지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왕의 옷을 걸치자 온화하던 얼굴에 이내 냉철함이 스며든다. <나의 아저씨>에선 조용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드라마 <번외수사>(2020)에선 평범한 할아버지와 살인마를 오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에선 조선 후기 문신 심환지 역을 맡았다. 연륜이 쌓인 얼굴에 조금만 힘을 줘도 무서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힘을 풀면 마음씨 좋은 사람이 튀어나온다. 그는 “<나의 아저씨> 때는 ‘연기하지 말자. 보릿자루처럼 가만있자’고 생각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연기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크게 내지르지 않고도 선 굵은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특징이다. 보통 연극을 할 때는 강하게 끊어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소리치지 않고 읊조려도 뒷자리 관객에게까지 들릴 수 있게 할 수 있다. 호흡이 중요한데, 그래서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아도 뚜렷하게 들리는 발성은 폭넓은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인물,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 하는 역할을 그는 잘 소화해낸다”고 한 드라마 관계자는 말했다. 120편 넘는 연극서 닦은 기본기
평범한 소시민부터 살인마까지
분장 없어도 금세 분위기 뒤집어
연륜 있는 표정·선 굵은 목소리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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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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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조연이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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