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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니, 저 사람은? “작은 배우는 없다”는 39년차 베테랑

등록 2021-05-25 18:33수정 2021-05-26 02:33

조연이 주연이다
‘나의 아저씨’ 아이유 할아버지 이영석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대사를 선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대사를 선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앗! 저분은….’

지난 20일 폐막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에서 주군 ‘영공’ 등장 때 눈이 커진 관객들이 많다.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다 속으로 외치게 된다. ‘아이유의 할아버지!’ 맞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에서 생판 모르는 이지안(이지은)을 어릴 때부터 도와준 청소부 할아버지 ‘춘대’다. 늘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던 춘대는 <조씨고아…>에서 왕으로 나와 근엄한 목소리로 무대를 압도한다.

드라마와 영화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이들을 들여다보면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많다. 배우 이영석(62)도 그중 하나다.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인상적인 점은 배역에 따라 기운의 세기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하나뿐인 내편>(2019)의 노숙인처럼 몸과 마음이 나약해진 소시민 역을 주로 맡았지만, 무대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씨고아…>에선 풍부한 성량과 묵직한 에너지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사진 촬영을 위해 왕의 옷을 걸치자 온화하던 얼굴에 이내 냉철함이 스며든다.

<나의 아저씨>에선 조용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드라마 <번외수사>(2020)에선 평범한 할아버지와 살인마를 오갔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에선 조선 후기 문신 심환지 역을 맡았다. 연륜이 쌓인 얼굴에 조금만 힘을 줘도 무서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힘을 풀면 마음씨 좋은 사람이 튀어나온다. 그는 “<나의 아저씨> 때는 ‘연기하지 말자. 보릿자루처럼 가만있자’고 생각했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연기를 하려 했다”고 말했다.

크게 내지르지 않고도 선 굵은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특징이다. 보통 연극을 할 때는 강하게 끊어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소리치지 않고 읊조려도 뒷자리 관객에게까지 들릴 수 있게 할 수 있다. 호흡이 중요한데, 그래서 노력을 많이 한다”고 했다. 조곤조곤 말하는 것 같아도 뚜렷하게 들리는 발성은 폭넓은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인물,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 하는 역할을 그는 잘 소화해낸다”고 한 드라마 관계자는 말했다.

120편 넘는 연극서 닦은 기본기
평범한 소시민부터 살인마까지
분장 없어도 금세 분위기 뒤집어
연륜 있는 표정·선 굵은 목소리 매력

연극 &lt;조씨고아, 복수의 씨앗&gt;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배우 이영석이 지난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연극판에서 오랫동안 쌓은 탄탄한 내공이 뒷받침됐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지요다예술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1982년 한국 ‘실험극장’을 시작으로 39년간 여러 극단을 오가며 120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발성, 표정, 동작 등 기본기를 무대에서 닦았다. 그는 “1년에 보통 5~6편은 했다. 요즘도 무조건 2편은 하려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영화 촬영 현장을 보고, 고등학교 때 성경 이야기를 담은 성극을 했던 경험이 영향을 끼쳐, 연극배우를 꿈꿨다. “네가 연극을 하면 극장을 지어주겠다”고 큰소리치던 친구들이 실제로 220석 규모의 ‘은행나무 극단’을 지어줬다. 연극계의 어려움으로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꿈을 향해 뛰어갈 수 있었다.

그도 다른 연극인들처럼 “먹고살아야 해서” 대중매체 문을 두드렸다. “연극 하면 돈을 못 버니까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했죠.” 2003년 <선생 김봉두>를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출연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2009)는 “기회가 됐지만 아쉬움도 남은 작품”으로 두고두고 생각난다고 했다. “감독님이 북한 사투리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못 쓴다고 했죠. 할 수 있다고 하고 열심히 연습했다면 더 임팩트 있는 캐릭터로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커요.”

요즘은 대본을 받으면 두세가지 버전으로 준비해 간다. “움직임, 호흡 등 일상적인 언어를 어떻게 무대화시킬지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런 철두철미함이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지금의 행복을 안겨준 것인지도 모른다.

50대 초반이 넘어서야 조금은 먹고살 걱정을 덜게 됐다고 한다. “<나의 아저씨>에서 임팩트 있는 조력자로 나온 이후 섭외 요청 오는 캐릭터가 더 다양해졌어요.” <하나뿐인 내편>으로는 여느 배우들이 겪는 경험도 했단다. “식당 가면 반찬 많이 주시는… 껄껄껄.” 특히 7년 전 초연부터 참여해 ‘살면서 꼭 한번은 봐야 하는 연극’으로 우뚝 선 <조씨고아…>는 빼놓을 수 없는 인생작이다. 그는 “요즘은 관객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한다”며 웃었다.

“배우 되고서 정식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그는 지난 39년간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며 한국 문화판을 지켜왔다. 오늘날 케이(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것은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자부심으로 땀 흘려온 수많은 ‘이영석’이 있기에 가능했다. “쉬지 않고 하면, 떠나지 않고 한길을 파면 좋은 성과가 있다는 걸 느껴요. 바라는 게 있다면 <조씨고아…>가 계속되는 것. 이 좋은 연극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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