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마나 기다렸나. 지금 이 순간을 고대하면서. 낮엔 그리움이, 밤엔 외로움이 가슴 가득히 있었네.” 시트콤 <엘에이(LA)아리랑>(1995~2000)이 <에스비에스>(SBS)의 유튜브 채널 ‘빽능-스브스 옛날 예능’에 올라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댓글창에 모여 홀린 듯이 주제가를 따라 흥얼거렸다. <엘에이아리랑>은 한국 시트콤계의 마에스트로 김병욱 피디가 연출에 참여한 첫 시트콤이라는 상징성과, 미국 현지 한인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라는 희소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온라인에서 다시 찾아 볼 수 있는 길이 없어 팬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던 작품이, 종영 21년 만인 2021년 8월 초부터 유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유년을 보내 작품을 기억하고 있던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시트콤이 있었다고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던 사람도 옹기종기 모여 <엘에이아리랑>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정말 90년대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록 방영 당시에는 한인들이 실제로 겪는 인종차별이나 주류 사회 내에서의 좌절, 세대 간의 갈등 같은 이슈들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엘에이아리랑>에는 한국적인 인식이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기성세대가 겪는 문화충돌을 묘사한 순간들이 제법 있었다. 현지에서 한인 변호사로 살아가는 세윤(김세윤)은 미국 생활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처남 영범(이영범)을 자신의 사무실 직원인 경순(정경순)과 이어주려 하지만, 영범이 미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자 오히려 당황한다. 세윤의 장모 운계(고 여운계)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고사리를 캐다가 경찰에게 잡혀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데, 운계는 한국에선 다들 이렇게 하는데 미국은 왜 고사리도 못 캐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일은 멀고 자국의 문화는 가깝다.
게다가 이들은 무의식 중에 한인들끼리만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변호사 세윤은 현지 교민회 활동을 하고, 세윤의 아내 정수(박정수)는 한인방송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고, 정수의 동생 미리(견미리)와 제부 정섭(이정섭)은 교민들에게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하고, 정수의 동생 영범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 <엘에이아리랑> 속 김 변호사네 식구들의 삶은 온통 한국으로 가득하다. 당연한 일이다. 꿈을 찾아 만리타향으로 이민을 왔지만,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문화를 고수하는 이들 사이에서 “낮엔 그리움이, 밤엔 외로움이 가슴 가득히 있었”을 것이므로.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동포들과 어울리고 싶었으리라.
지금 다시 보면 <엘에이아리랑>은 동시대 미국의 시트콤을 한국적인 맥락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세트나 가족 구성, 주인공들의 경제상황은 어딘가 <코스비 가족 만세>(1984~1992)나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에어>(1990~1996) 같은 미국 흑인 가족 시트콤을 연상시켰는데, 백인 중심의 주류 사회 안에서 소수인종으로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서사라는 점에서 <엘에이아리랑>이 받은 영향은 선명해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엘에이아리랑>은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코리아 디아스포라’ 열풍의 맥락 위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티브이와 영화는 한국인의 디아스포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개발독재와 반독재투쟁의 대결로 어지러웠던 국내 정세가 민주화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그동안 쉽게 말할 수 없었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다루고자 했던 창작자들의 열망이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다.
문화방송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나라 잃은 이들의 힘겨운 삶을 그렸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고국 떠난 차별·설움 기억 되살려
우리도 난민에게 손길 내밀었으면
찢어지는 가난 속에 어린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던 ‘아동 수출국’으로서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본 장길수 감독의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부터, 조국을 잃은 청년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남의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용을 담은 <문화방송>(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1992),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연해주로 떠난 한국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정착하기까지의 고단한 삶을 다룬 문화방송 드라마 <까레이스키>(1994~1995),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지만 각종 인종차별과 문화 충돌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5세대 한인들을 다룬 문화방송 드라마 <1.5>(1996), 동양척식회사의 노예 무역의 희생자로 유카탄반도의 용설란 농장에서 일해야 했던 한인들의 삶을 다룬 영화 <애니깽>(1996)…. 광부와 간호사로 파독되고 전쟁고아로 입양되어 뿔뿔이 흩어진 한민족사를 다룬 가장 최근 작품인 <국제시장>(2014)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대중문화 작품을 통해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돌아보며 함께 가슴 아파했다.
피식민지배, 전쟁, 정치적 불안정과 가난 때문에, 한민족은 다양한 이름으로 고향을 떠나 만리타향에 자리를 잡았다. 망명자, 난민, 고아, 이민자, 이주노동자… 그리고 그 유구한 역사는 대중문화 작품으로 기록되어 후세의 기억으로도 전승되었다. 그 역사에 가슴 아파했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지금 자국을 떠나 숨을 돌릴 만한 공간으로 한국을 찾아온 이들을 보다 달가운 마음으로 맞이하면 좋지 않을까? 한민족은 온갖 이유로 한반도를 떠나 남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동포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들이 현지에서 받았던 차별과 설움이라는 맥락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엘에이아리랑>을, <여명의 눈동자>를, <국제시장>을 보면서 눈물을 훔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먼 나라에서 도움을 찾아 이 땅을 찾은 이들의 손을 더 살뜰하게 잡아줄 마음을 냈으면 좋겠다. 언어도 문화도 모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낮엔 그리움이, 밤엔 외로움이 가슴 가득히 있”을 그들의 손을.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