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어이고!”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고 있다. 티브이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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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테마로 방송된 4월27일 방영분 티브이엔(tvN)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에필로그는 일기의 형식을 빌려 제작진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폭풍 같았던 지난 몇주를 보내고도 아무 일 아닌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쳇바퀴에 그저 몸을 맡겨야만 하는 나의 제작일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출연한 방영분이 방송된 건 1주 전이었던 4월20일, 녹화를 하고 간 것은 4월13일이었으니, ‘폭풍 같았던 지난 몇주’는 단순히 윤 당선자 출연분이 방영된 뒤 밀려온 후폭풍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리라. 제작진이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경위를 알 방법은 없다. 그저 출연을 기획하고 조율하는 과정 또한 폭풍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일해야만 했겠거니 하고 행간을 짐작할 수밖에.
윤 당선자가 출연한 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원치 않았을 논쟁에 휩싸였다. 그럴 법도 했다. 그날의 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색한 공기를 걷어내지 못했다. 녹화 당일에야 당선자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는 진행자 유재석과 조세호는 어색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당선자는 앞서 후보 시절 출연했던 에스비에스(SBS) <집사부일체>나 한국방송(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도 들려준 바 있는 에피소드 말고는 딱히 들려줄 게 없었다. 사법시험을 9수 하게 된 사연처럼 대선 기간 내내 여러차례 들어본 이야기가 맥락 없이 반복됐다. 아마도 권위를 걷어내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꺼낸 에피소드였겠지만, 앉으라는 권유를 받기도 전에 먼저 자리에 앉으며 “영광이죠?”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에게서 권위가 가실 리 있나.
방영 직후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출연을 타진했으나 제작진으로부터 “진행자가 정치인 출연을 조심스러워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둘러싼 상황은 더더욱 험악해졌다. 티브이엔이 개운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티브이엔의 모기업 씨제이이엔엠(CJ ENM) 강호성 대표가 윤 당선자와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며 과거 검사 시절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함께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짚기 시작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작진은 ‘나의 제작일지’를 통해 “우리의 꽃밭을 짓밟거나 함부로 꺾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지만, 꽃밭을 밟는 사람이 누군지 명시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호소는 항의하는 이들의 화를 더 돋우었다.
결과적으로 윤 당선자 출연분은 그 누구도 즐겁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냐는 이중잣대 논란을 걷어내고 봐도 그렇다. 윤 당선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진행자 유재석의 표정이 안 좋다며 ‘진행자가 정치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고,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같은 이유를 들어서 ‘원만한 방식으로 출연이 성사된 거라면 유재석의 표정이 저럴 리 있느냐’고 비판했다. 지지자들이 보기에도 어딘가 어색하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불편한 방송이었다는 이야기다. 정치색을 떠나 프로그램의 팬 입장에선 볼만한 방송이었을까? 그도 아니다. 출연 계기를 물어보니 참모들이 나가보라고 해서 나왔다고 하고, 퀴즈는 맞히려는 노력도 없이 대번에 “모르겠다”고 말하고, 임기 시작 전이니 대통령직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이나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는 이미 다 들어본 이야기이고…. 이럴 거면 대체 왜 나온 걸까?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건 정치가 정치의 언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은 지지자부터 비판자까지 모두의 말을 경청하며 앞으로 5년의 청사진을 그려야 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인수위는 <미디어오늘>이나 <뉴스타파>와 같은 매체들의 출입을 몇주째 거부하고 있으며 그 명확한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서라도 집무실 이전은 필수라고 말했지만, 새 집무실과 관저, 연회장을 결정하는 과정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으며, 청사와 관저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국방부와 외교부를 정치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제 의견을 제대로 설명하고, 이견을 좁히기 위해 정치적으로 설득해야 할 시간에, 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예능에 나와 과거 에피소드를 들려준다고 그걸 매력이라 느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예능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예능은 오랫동안 체중이나 외모, 지적 장애, 피부색, 성별, 성적 정체성 등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개인의 특성을 농담의 소재로 삼으면서, 이를 지적하면 “웃음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 웃음의 소재를 제약하면 어떻게 웃기라는 건가?”라고 반문해왔다. 그러나 정작 자본이나 정치권력을 농담의 소재로 삼는 일에는, 모두가 극도로 조심스럽거나 매우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있었다. 광고나 협찬 집행 여부를 가를 수 있는 자본권력, 블랙리스트 등으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정치권력 앞에서는 알아서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예능은 힘을 지닌 자가 불편할 만한 질문도 웃음을 입혀 당의정으로 가공하는 ‘광대의 특권’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만만한 상대를 대상으로 농담을 던지는 관습을 이어왔다. 그러니 권력자가 프로그램 출연을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활용할 때에도 그 페이스에 끌려가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던 거겠지.
정치는 정치의 언어를 포기했고, 예능은 예능의 언어를 잃었다. 덕분에 꽃밭은 엉망이 됐고, 유재석과 조세호는 데뷔 이래 가장 큰 비판을 받고 있으며,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제작진은 행간만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모두가 불행한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정치가 정치의 언어를, 예능이 예능의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예능을 이미지 메이킹의 장으로 활용해도 잃을 게 크게 없어 보이는 정치가 그 일을 시작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국민 엠시’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비난을 당하고 있는 예능부터 먼저 예능의 언어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예능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으려면, 행간만 채우는 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