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기업. 젊은 사람들이 모여 벤처회사를 차리고 몇년 뒤 수십 조로 규모를 키운다. 자신만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우리 삶을 변화한다. 학벌, 자본, 지역 관계없이 인터넷만 연결된 어느 곳에서도 새로운 재벌이 탄생할 수 있다. 그래서 평범한 청춘이 단번에 재벌이 되는 벤처기업 이야기는 ‘현대판 신데렐라’로 지금 할리우드에서 많이 제작하는 흥미로운 소재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스티브 잡스의 능력만으로 지금의 애플이 탄생했을까? 페이스북에 천재는 주커버그 한명이었을까? 그래서 넷플릭스 스웨덴 드라마 <플레이리스트>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유니콘 기업을 분석한다.
전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를 만든 사람은 스웨덴 작은 도시에 사는 22살 다니엘 에크다. 컴퓨터 실력은 뛰어났지만 제대로 된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구글 입사가 좌절된다. 직접 광고 툴을 개발해 큰돈을 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음악. 당시는 공유(P2P) 서비스에서 불법 내려받기로 음반사 수입이 줄어들던 때로, 음반사들은 예술가들의 노력을 도둑질한다며 공유 사이트들을 고발하고 소송전을 벌인다. 단속과 고발만으로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되돌릴 수 있을까? 다니엘은 공유 사이트의 문제점에 주목한다. 같은 이름의 파일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 누구도 검증하지 않고, 내려받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파일 분류도 직접 해야 하고. 그래서 다니엘은 세계 최초 무료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구상한다.
음악산업의 수익 분배는 사회적 합의로 정해졌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합의를 붕괴시킨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스포티파이의 성장을 6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담은 6개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6명은 각각의 세력을 대표한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개발자, 도박 같은 벤처기업에 베팅한 투기 자본, 어떻게든 기존 제도와 타협해야 하는 변호사, 가진 것을 지켜야 하는 음반사, 예술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일도 중요한 아티스트.
이들 중 소니 스웨덴 대표 페르 순딘의 행보는 놀랍다. 그는 누구보다 무료 사이트에 적대적이지만 이미 알고 있다. 시디(CD)를 고집한다고 수익이 오르지 않을거라는 것을. 하지만 음반사는 쉽게 기득권을 놓지 않을 것이다. 소니 본사 대표는 말한다. “예전에 <엠티브이>(MTV)가 등장했을 때도 똑같았다”고. 순딘은 외친다. “제발 20년 전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자, 이제 당신은 회사의 방침을 따를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에 인생을 베팅할 것인가.
벤처기업을 다룬 드라마인 만큼 촬영과 편집도 현란하다. 기득권을 놓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는 항상 뒤에서 따라가고 결심의 순간부터는 정면에서 보여준다. 매회 마지막에는 다음 회차의 주인공이 등장해 시청자한테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기대하라고 말하며 끝낸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음반사, 거대 로펌, 저작권협회 등의 복도가 모두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득권들의 공간과 벤처기업의 공간은 극적으로 대비되지만, 이 복도를 통해 적절한 타협과 협상이 이뤄진다.
국내 벤처기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장했을 터. 6명의 대립 과정은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우리나라는 우버 서비스가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고, 플랫폼은 대부분 내수용이다. 상상력의 한계가 아니라 제도의 한계에 혁신은 막혀 있고 기득권 누구도 무너지지 않았다. 음악이 아니라 방송에 빗대어 본다면, 방송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누티비를 고발하고 유튜브 저작권 위반 콘텐츠를 고발하고 있지만 방송 광고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오티티 벤처기업인 왓챠 박태훈 대표 이야기도 다니엘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재 왓챠는 경영위기에 빠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는 지금,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의 나라에는 티브이가 없는 집도 많다. 과연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찾을 수 있을까? 혁신과 도전으로 새로운 판을 짤 것인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기보다는 우선 이 드라마부터 봐보자.
씨제이이엔엠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