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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성소수자의 삶은 평범하다, 혐오세력 망상이 문란할 뿐

등록 2023-07-01 08:00수정 2023-07-01 17:29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게이 연애 리얼리티 <남의 연애>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lt;남의 연애&gt; 시즌1. 웨이브 제공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남의 연애> 시즌1. 웨이브 제공

6월 초에 잠시 대만을 여행하고 왔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답게 수도 여기저기에서 6색 무지개를 만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시먼딩 거리에는 길 위에 6색 무지개와 함께 영문으로 ‘타이베이’라는 지명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나 같았어도 자랑스러워 큼지막하게 도시의 이름을 새기고 싶었을 것이다. 성적 지향으로 결혼할 권리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걸 아시아 최초로 법제화한 나라라면, 좀 자랑스러워해도 될 테지.

물론 대만이라고 해서 혼인평권(동성혼 합법화) 운동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2017년 5월 대만 사법원(헌법재판소)은 동성혼을 금지하는 현재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고, 국민의 평등을 침해한다며 입법원(국회)에 2년 안에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이 판결에 반발하는 보수단체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2018년에는 보수단체의 청원으로 국민투표까지 진행됐다. 투표 결과는 결혼을 ‘남녀 사이의 일’로 제한하자는 반대 쪽의 승리였다.

기존 연애프로와 같은 포맷…참가자 전원 남성 ‘차이’

국민투표에서 패배했으니 입법은 좌절됐을까. 보수정당이 제시한 대로 ‘동성 간 시민결합’ 내지는 ‘동성 간 가족관계’ 정도로 타협하는 방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이잉원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국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사법원의 결정은 유효하다”는 것이 차이잉원 총통과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고, 결국 입법원은 ‘결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가장 진보적인 법안을 최종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대만 사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지 2년 만인 2019년 5월의 일이다.

국민 반대를 뚫고 동성혼이 합법화되었으니, 논란이 컸을까?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일부 보수단체들의 주장처럼 대만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몰락했을까? 글쎄, 그렇지 않았다. 열차와 버스는 멀쩡하게 정시 운행을 했고, 사람들은 모두 타지에서 온 관광객에게 넘치도록 친절했으며, 음식은 맛있었고 치안도 훌륭했다. 아니, 이럴 수가. 고매하신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의 주장이 다 틀렸단 말인가. 동성혼이 합법화됐는데도 사회가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가다니.

사람 사는 게 많이 다른 것 같아도 크게 보면 결국 거기서 거기다.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해서 대단히 다른 존재인 건 또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성애적 규범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몇몇 풍경은 좀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대만을 보라. 아니, 동성혼을 합법화한 34개국을 보라. 그중 동성혼으로 무너졌다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사회는 다 저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고, 사람들은 제 일상을 산다.

거기서 거기.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두번째 시즌을 선보인 <남의 연애>는 지극히 평범한 연애 리얼리티 쇼다. 참가자들이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는 설정이나, 하루에 한차례 전화 통화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규칙, 시즌 중간에 갑자기 새로운 참가자가 투입돼 참가자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뒤흔든다는 ‘메기’ 공식 같은 것들은 이제 익숙하다.

단순한 호의인지 호감인지 알 수 없는 상대의 오묘한 눈빛을 읽어내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는 참가자들의 속마음 인터뷰, 간질간질한 설렘이 가득한 데이트 코스 등의 구성도 여느 연애 리얼리티 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애 리얼리티 쇼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남의 연애>는 익숙하게 ‘아는 맛’으로 즐길 수 있는 편안한 프로그램이다. 굳이 <남의 연애>에서 다른 연애 리얼리티 쇼와 다른 점을 찾자면, 참가자 전원이 남성이라는 것 정도가 작은 차이다.

게이 연애 리얼리티 쇼인 <남의 연애>는 2022년 웨이브가 선보인 두편의 성 다양성 로맨스 예능 중 하나였다.(나머지 한 작품은 성소수자 커플들이 서로 사랑하며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다룬 관찰 예능 <메리 퀴어>였다.) <남의 연애>는 시즌1 공개 당시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위를 기록했으며,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조사한 텔레비전·동영상서비스 비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도 ‘비드라마 부문’ 종합 순위 3위(2022년 8월 4주차 기준)에 올랐다.

성소수자 커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관찰 예능 &lt;메리 퀴어&gt;. 웨이브 제공
성소수자 커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관찰 예능 <메리 퀴어>. 웨이브 제공

혐오세력 “일상적 로맨스 포장” 발목 잡기

일각에선 “실제 게이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있을 법한 남자들이 아니라 비엘(BL)물(게이들을 대상화한 하위 장르 로맨스물)에 나올 법한 미소년들이 출연한다. 타깃을 비엘물 소비자층으로 잡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이성애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연애 리얼리티 쇼의 문호를 활짝 열었다는 점에선 유의미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남의 연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비엘물 소비자층이나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아니라 보수 개신교계 혐오세력들이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관련 콘텐츠가 제작될 때마다 늘 그랬듯, 그들은 프로그램의 제작자들과 플랫폼 운영자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혐오세력이 <남의 연애>를 비판하는 포인트는 사뭇 의미심장한 곳에 찍혀 있었다. “우리와 이렇게 다르다!”가 아니라, “왜 일상적이고 평범한 척하느냐!”에.

개신교 계열 온라인 신문 <데일리 굿뉴스>는 <남의 연애>가 문제적이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바른 성적 가치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 가운데서도 11화까지 동성애를 이성애처럼 묘사, 일상적이고 평범한 로맨스로 소개해 나갔다. 출연자들은 여느 커플들처럼 썸(?)을 타고 데이트를 했다.”(‘남의 연애’ 논란 속 종영… “동성애 미화 컨텐츠 재생산 우려”. 2022년 8월30일. 박건도 기자)

이 주장을 해석하자면 그런 것이다. “너희 문란한 삶 끝에 비참해진다는 걸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왜 멀쩡한 척하냐? 왜 좋은 면만 보여주냐?” 그러니까 성소수자들은 혐오세력 자신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문란하고 비참한 동성애자’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남의 연애>든 <메리 퀴어>든 평범하고 담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실망이라도 한 건가? 글쎄, 도대체 평소에 성소수자들의 삶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실제 성소수자들의 삶보다는 믿음이 독실하시다는 혐오세력들의 망상이 훨씬 더 문란하다는 건 알겠다.

이들이 주장하는 ‘문란한 삶’이라는 게 대체 뭔가. 클럽에서 하룻밤 상대를 찾으며 매번 파트너를 갈아 치우는 원나잇? 그거, 이성애자들도 열심히 하고 산다. 당장 스마트폰에 틴더(대표적인 데이팅 앱)만 깔아보시라. 하룻밤 정을 나눌 상대를 찾을 생각으로 혈안이 돼 있는 이성애자들을 떼거리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이성애자들이라고 연애 리얼리티 쇼에서 그런 모습 보여주고 사는 거 아니지 않은가. 서로 설레고 끌리는 ‘썸’의 기운을 엔터테인먼트의 동력으로 삼는 건 이성애자 연애 리얼리티나 <남의 연애>나 피차일반인데, 대체 왜 성소수자들만 문제 삼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누구라도 악마화해서 미워하지 않으면 교세가 유지되지 못할 만큼 교회가 위태로운가?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lt;남의 연애&gt; 시즌2. 웨이브 제공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남의 연애> 시즌2. 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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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아는 ‘무논리의 싸움’…퀴어 퍼레이드 순항

억지투성이 비방과 음해를 보다가 <남의 연애> 시즌2에 출연하는 청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결 쾌적해진다. 첫 데이트에서 “자연스레 스킨십도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른 코스라는 게 고작 롤러스케이트장이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스킨십을 하면 뭐 얼마나 한다고. 다른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도 귀엽기 짝이 없다. 어떤 커플은 커플 머그잔을 만들겠다며 머그잔 공방에 들렀다가 디저트 카페를 방문하고, 또 다른 커플은 제빵 원데이 클래스를 방문해 함께 쿠키를 만든다. 벌써부터 혐오세력들이 애달파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너희 문란한 거 우리가 뻔히 아는데 왜 그런 모습은 안 보여주냐!”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들의 데이트 코스는 말랑말랑하기 짝이 없다.

혐오세력은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콘텐츠가 많이 공개될수록,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청소년들이 그 영향을 받아 성소수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웃기는 소리다. 게이는 게이로 태어나고 레즈비언은 레즈비언으로 태어난다는 건 과학계가 이미 오래전에 도달한 합의점이다. 게다가 콘텐츠 때문에 성 정체성이 바뀐다면, 이성애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은 왜 아직도 성소수자란 말인가? 진작에 비성소수자가 돼야 했던 거 아닌가? 혐오세력도 자신들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진평연’(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에서 활동하는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부터 자백했다. “이 싸움은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헌신의 싸움이다.” 자신들의 논리가 틀렸다는 걸 알고 있단 얘기다.

혐오세력이 발목을 잡아도 시대는 순리대로 흘러간다. 웨이브는 혐오세력의 시위와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남의 연애> 시즌2를 공개했다. 대구시는 시장이 시청 공무원들을 거느리고 직접 나서서 퀴어퍼레이드를 막으려고 했으나, 퍼레이드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대구 경찰과의 충돌 끝에 물러나야 했다. 서울시는 뜬금없이 개신교 단체의 ‘청소년 회복 콘서트’에 우선권을 주겠다며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 시청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하지만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행사 장소를 을지로로 바꿔서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마침 오늘은 7월1일, 서울 시내가 무지갯빛으로 물들 서울퀴어퍼레이드의 날이다. <남의 연애> 속 청년들도 거리를 함께 걸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 수줍은 손을 서로 꼭 잡고.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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