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제 멋’ 잃어가는 007과 미션 임파서블

등록 2006-05-10 18:18수정 2006-05-10 18:20

팝콘&콜라
〈다이 하드〉 3편은 1편에 못 미치는 듯했지만, 무척이나 멋있었던 장면 하나를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겨놓고 있다. 악역을 맡은 제러미 아이언스가 검정 재킷과 선글라스를 끼고 처음 모습을 나타낼 때였다. 지적이고 우아한 악당. 오락 액션 영화가 어차피 좋은 편과 나쁜 편의 대결인 만큼, 악당이 더 악당스러울 때 관객의 감정이입이 더 잘 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제러미 아이언스의 우아한 모습은 영화의 품격을 높임과 아울러 악한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물안개처럼 피어오르게 했다. 그럴 때 영화의 흥미가 입체화되고 풍부해진다.

다 같은 선악대결이라도, 그 입체감은 영화마다 천양지차다. 악당 캐릭터가 입체적일 수도 있고, 주인공 캐릭터가 그럴 수도 있고, 선한 쪽과 악한 쪽이 서로 얽혀드는 구조가 복잡다기할 수도 있다. 여하튼 영화는 저마다 어느 한쪽 이상에 방점을 둔다. 이소룡 영화나 성룡 영화처럼 액션의 몸동작 자체일 수도 있고, 007 시리즈처럼 최신 무기와 미녀들도 그 방점의 하나가 된다. 그 방점을 트레이드마크로 활용하는 게 〈다이 하드〉나 〈007〉 같은 시리즈 영화, 또는 프랜차이즈 영화다.

〈다이 하드〉는 제목 처럼 죽도록 고생하면서도 좀처럼 죽지 않고 끝내 악당을 물리치는 한 형사의 고생담이다. 그의 비기는 오래도록 강력계 형사 생활을 해온 이만이 갖출 수 있는 노련함과 직관이며, 이게 이 시리즈의 방점이기도 하다. 흑인 형사와 백인 형사의 버디(짝패) 영화인 〈리셀 웨폰〉은 결혼해 자녀를 둔 흑인 형사의 공동체 지향적 캐릭터와 혈혈단신인 백인 형사의 냉소적·자폐적 캐릭터, 그에 따른 사건 해결방식의 차이 및 이로 인한 둘 사이의 갈등과 해소를 중요시한다.

이런 시리즈물은 자기 방점을 유지한 채, 그 외의 요소들을 변용하면서 속편을 이어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007을 필두로 자기 시리즈의 방점까지 변용하는 일이 나오고 있다. 007 시리즈의 악당 두목은 직접 총이나 주먹을 쓰지 않고 총잡이, 주먹잡이를 수하에 거느린다. 제임스 본드의 육탄전은 대체로 이 총잡이, 주먹잡이와의 싸움으로 그쳤는데, 얼마 전부터 악당 두목과의 육탄전을 정점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또 007 시리즈는 폭력적인 결투보다 이국적인 풍광과 최신 무기 같은 볼 거리들에 방점을 둬 왔고, 이건 다른 액션 영화들이 잔인해지던 70년대에 007 시리즈를 찾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007도 결투 장면이 잔인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일 한국에서 개봉해 폭발적인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미션 임파서블 3〉은, 긴박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놀랄 만큼 잘 찍은 고난도 액션 장면 등 흥행 요소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007 처럼 시리즈물로서의 자기 방점이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70년대 동명의 텔레비전 시리즈물이 그랬듯 ‘미션 임파서블’의 방점은 도청과 변장 등을 통해 적을 감쪽같이 속이는 치밀한 작전에 있었고 그래서 〈스팅〉이나 〈오션즈 일레븐〉 처럼 상큼한 뒷맛을 남겼다. 〈미션 임파서블 3〉에도 그런 작전이 나오지만, 악당과의 처절한 육탄전을 정점에 배치함은 물론이고, 시작부터 그걸 예고한다. 어느 게 더 좋고 나쁘고의 차원을 떠나 단선적이고 직접적인 선악 대결을 좇으면서 여러 시리즈들이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썩 좋을 수만은 없다.

임범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