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그들…세상’으로 4년만에 돌아온 송혜교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송혜교의 새 배역은 드라마 프로듀서(피디)다. 방송국 피디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한국방송(2TV)의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가 연기하는 피디 주준영은 “짜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누군가 보고 싶어도, 샘 날 정도로 일 잘하는 동료를 봐도, 작가한테 받아든 대본이 너무 좋아도 “짜증나”를 내뱉는다. 그러다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면, 돌아서서 ‘배시시’ 웃는다. ‘쿨’하게 살고 싶은 자기 표정을 들킬까봐서다. 20·30대 여성 시청자들이 “저게 내 모습”이라며 공감하는 건 바로 주준영이 지닌 이런 일상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 6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만난 송혜교는 극중 주준영과 달리 꼿꼿했다. 송혜교는 먼저 극 초반 자신의 연기력을 둘러싼 구구한 뒷말들과 뜻밖의 시청률 고전 등에 대해 쉼없이 내뱉었다. “대본이 너무 완벽했어요. 잘해야 할텐데…란 강박이 있었죠. 이제 조금 자유로워진 듯해요.”
연기력 논란 등 구구한 입말 당당하게 답변
“1·2회 나도 아쉬워…몸 풀리는 시간 필요
배종옥·윤여정·김자옥…최고의 공부 기회”
‘대본의 강박’이라니,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나이에 비해 꽤 많은 작품을 했지만, 비교가 안 될 만큼 대본이 완벽했어요. 읽으면서 ‘맞아, 나라도 이렇게 말했을 거야’란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제대로 해석하는지 조바심도 들었구요. 그래서 촬영이 힘들었나 봐요. 입에 잘 붙지도 않았구요.”
그 말이 연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더욱 와닿는데?
“대본이 완벽한 건 완벽한 거죠.(웃음) 처음엔 생활 속 대사가 많아 편하게 칠 수 있겠다고 봤는데 읽을수록 어렵더라구요. 슬픈 대사에서 슬픈 표정을, 미안하다는 말에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짓는, 공식 같은 연기가 몸에 뱄는데… 어느날 노희경 작가님이 ‘너, 정말 가까운 사람일수록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더냐’고 하시더라구요. 어렵죠. 미안하단 말을 감정 없는 얼굴에 아무 느낌 없이 치지만, 내심 진짜 미안해하는 분위기를 풍겨야하는…노력해야 할 부분이겠죠. 사실, 몸 풀릴 시간이 필요해요. 3회까지 긴장하며 봤는데…. 4회는 너무 재밌던데요.”
거의 그대로인 시청률에 대한 느낌은?
“(웃음) 솔직히 말해도 돼요? 벌써 ‘송혜교 약발 떨어졌네’ ‘망했네’ 등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어요. 예전 같으면 ‘기분 별론데…’ ‘촬영하기 싫어’ 이랬을걸요? 지난주 1% 오른 것 보고 현빈씨한테 10% 나오면 파티하자고 했어요. 솔직히 50%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다 얻었다고 생각하니까요.”
얻을 것을 다 얻었다니?
“배종옥 선배님과 처음 극에서 만나게 됐는데, 대사 한마디마다 한 번도 같은 느낌을 준 적이 없어요. 결이 다양하죠. 극 중에서 제가 피디로 드라마를 만들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봐도 너무 존경스럽죠. 나문희, 윤여정, 김자옥…. 언제 이런 선배님들 밑에서 배우겠어요. 배 선배님이 ‘나도 처음엔 입에 잘 안 붙었다’며 위로해주면 다른 얘긴 안 들려요. 그저 배우겠다는….”
<그들이…>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 한국 여자들의 대표적 심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딱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게 너무 좋았고, ‘내 얘기 같다’는 시청자들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랬어요.”
준영이란 인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나 또한 준영처럼 하나에 (느낌이) 꽂히면 주위에서 뭐라해도 달려가요. 좌충우돌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떤 결과든 맡은 것만큼은 끝까지 가는 모습이죠.”
촬영 도중 틈을 낸 인터뷰는 40분을 넘기지 못했다. 제작진은 “촬영 들어가야 한다”며 송혜교를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1·2회 방송 뒤 나온 ‘부정확한 발음’ 논란에 대해 물었다.
“흥분 상태에서 나온 대사들인데… 나라고 안 보이겠어요? 발음이 씹힌 걸 보고 ‘디테일하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받아들일 만한 지적도 일부 있어요. 방송을 보지 않고 썼거나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댓글을 인용한 언론 기사들이 있어 좀 불편했지만. 나아진 모습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데뷔 10년이 넘었지만 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있다”며 “여자 아닌 인간을 연기하는 법을 꼭 익히고 싶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요즘 인터넷 댓글 중에도 유익한 ‘선플’이 꽤 있더라”라고 웃으며 송혜교는 촬영장으로 훌쩍 뛰어 들어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퓨어컴·한국방송 제공
“1·2회 나도 아쉬워…몸 풀리는 시간 필요
배종옥·윤여정·김자옥…최고의 공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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