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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포크가 그리울 땐 ‘안녕, 기억씨’

등록 2011-04-19 15:42수정 2011-04-19 16:30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착한 콘서트 두드림] 40회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고독한 기타맨. ‘뒤풀이스트 (뒷풀이를 사랑하는 뮤지션)’.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만 줄줄이 적어놓고, 이틀동안 한 문장도 쓸 수가 없었다.

아! 솔직히 얘기하면, 객관적이기가 무척 힘들다.

우리는 지난해 갑작스럽게 떠난 음악인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교집합 속에 함께 있었다. 기억씨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가을이다. 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곡 ‘축배’의 코러스 녹음이 있던 날이었다. 모두가 기적을 바랐지만, 두 번째 만남은 장례식장이었다. 세 번째 만남은 2010년 겨울, 고인을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준비하면서다.

그의 인터뷰를 서두르지 않았다. 그도 재촉하지 않았다. 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는 “사실은 몰래몰래 훔쳐보면서 나는 언제쯤, 언제쯤… 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웃었다.

겨울과 봄 그 사이, 국내 음악시장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던 포크음악은 ‘세시봉’ 열풍으로 중심에 섰다. 네오포크의 명맥을 잇고 있던 ‘하이미스터메모리’를 소개한다.

[%%HANITV1%%]


# 연극배우에서 포크 전도사로

‘하이미스터메모리’. 그의 이름은 박기혁이다. 사람들은 보통 ‘기억씨’라 부르고 이름을 표기할 때는 ‘ㄱ’이라 쓴다. 밴드 ‘로로스’의 일본인 멤버 제인이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을 때, 그를 보고 ‘하이(안녕), 미스터 메모리’라고 인사했다. 그게 재미있어서 박기혁은 ‘하이 미스터 메모리’가 됐다. 우연히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

“앞 만보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요. 천천히 걸으면서 뒤돌아보고, 썼던 일기를 보고 하는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제 노래도 그렇고요.”

얼굴이 길어서 닮은 꼴가수 “이문세 모창으로 학교를 주름잡았다”는 그는 2007년 첫 앨범 ‘안녕, 기억씨’로 신고식을 치른다. 그 전까지는 연극배우로 살았다.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는데, 극을 쓰고 연출한 사뮈엘 베케트가 공연 보기 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는 게 있어요. 세 시간이 넘는 연극인데 ‘보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신나게 웃어라. 그리고 집으로 가다가 뭔가 인생에 대해서 떠오르면 그때 생각하라’라고. 그 말이 참 좋아서 연극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뒤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무대에서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낸 뒤, 머리 아래로 떨어지는 커튼콜을 받았던 그였다.

“극단 ‘산울림’에 1년 정도 있었죠. 공연진행, 청소, 포스터 붙이기, 전화받기를 많이 했죠. 버티면 계속하는 거고, 못 버티면 도태되는 거였죠. 열정을 보는 것일 수도 있고, 그걸 이용하는 거 같기도 하고… (웃음). 글 공부도 하고, 음악도 하고, 연극도 하고, 조금씩 했거든요. 그것들이 하나로 뭉쳐 있는 게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놓고 대학을 그만뒀다. 오직, 음악을 위해서였다. 학교를 그만둔 다음, 본격적으로 ‘신촌점령’에 나섰다.

“신촌을 점령하자! (폭소) 99년인가. 그때만 해도 우리가 듣던 음악의 주 무대가 신촌이었죠. 옛날에는 시인과 촌장, 들국화 같은 선배들이 라이브카페에서 노래하다가 음반 냈다고 들었어요. 그런 선배들이 다 있을 줄 알고, 라이브카페에 기타 메고 쓱 들어갔는데. 글쎄, 아무도 없는 거에요. 다 어디로 갔지. (웃음)”

홍대 앞의 인디음악신이 뜨거운 태동을 시작하던 99년, 그는 건반 케이스를 개조해 좌판을 열었다.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을 시작했다. 문제가 있었다면 “장사가 너무 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사꾼의 주업무는 “포크음악의 ‘전도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낚는 것”이었다. 여기에 낚여 인생이 바뀐 사람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와’다. 시와는 “우연히 찾아간 공연장에서 그가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걸 보고 음악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 3년 8개월 만에 2집 ‘내가 여기 있어요’

그에게 낚인 사람은 또 있었다. 알고보니 한둘이 아니었다. 3년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두 번째 앨범 ‘내가 여기 있어요’를 플레이하면 곡마다 새로운 뮤지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비롯해 ‘옥상달빛’,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박종현, 김마스타, 시와, 정민아 등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서로 반하게 되는 사이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동네 친구들이죠. (웃음) 늘 고마운 마음이에요. 경제적으로 큰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그건 안되니까. (웃음) 이번 앨범 자체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동료들이 흔쾌히 참여해줬죠.”


하이 미스터 메모리 2집 ‘내가 여기 있어요’
하이 미스터 메모리 2집 ‘내가 여기 있어요’
이 앨범엔 ‘그 얘기 진짜 맞아’라고 갸우뚱하게 하는 기적(?) 같은 사연이 담겨 있는 곡이 많다.

“열다섯 살 꽃순이가 꽃방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할머니가 되었다”는 판타스틱한 이야기를 담은 ‘꽃순이 이야기’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사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내가 위안부 피해자다’라고 선언한 정서운 할머니라고 계세요.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5개 도시를 투어하는 추모공연이 열렸죠. 곡을 써야 되는데, 생각나는 건 타령에, 피리 나오고. (웃음) 결국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투어에 올랐어요. 부산에서 첫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게 됐죠. 이용수 할머니는 정말 밝은 분이셨어요. 예능인 같았죠. 그분을 뵙고, 덩실덩실 춤추게 되는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진심이 담긴 노래를 만든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만든 곡 ‘엄마를 부탁해’에도 기막힌 에피소드가 숨겨져 있었다.

“4년 전에 어머니가 환갑이었는데, 전 그때도 가난한 뮤지션이었죠. 홍대 앞 놀이터에서 버스킹을 해서 그 돈으로 케이크를 사고, 카페에서 조촐하게 잔치를 했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는데 이빨이 없는 거예요. 마음이 아팠죠. 환갑잔칫날인데. 그때 외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엄마라고 하시데요. (웃음) 이 이야기를 노래로 써서 얼른 돈 벌어서 어머니 이를 해드려야겠다고 결심했죠.”

작은 인연이 기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소망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실현됐다.

“공연 때 치과 의사분이 오셨던 거에요. 개인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었는데, 이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셨죠. 어머니가 공짜로 치료를 받으셨어요. 평생 대출을 받은 것 같아요. 앞으로 제 공연을 평생 무료 이용하시라고 했죠. 여자친구도 소개해주고. (웃음) 전 이 노래로 본전 뽑았어요.”

그렇게 그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하이미스터메모리’가 음악을 해야 할 이유를 자꾸 만들어준다.

# ‘진심’이 통할 때까지…

그는 4년 전부터 하자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보컬을 가르치고 있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활약이다. 아이들이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한다. 노래가 아니라 ‘마음’이 말이다.

“저도 검정고시를 봤거든요. 말이 통하는 거죠. (웃음) 대안학교다 보니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 친구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오면 자신감이 없어요.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걸 힘들어 하는 친구들도 있죠. 음악은 어떻게 감정을 표출하느냐의 문제잖아요. 시원하게 감정을 터뜨리고 나서 조금씩 성격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웃음)”

그의 꿈은 김광석처럼 음악을 하는 것이다. 여건이 만들어지면 “장기적인 소극장 공연을 하겠다”고 말한다.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포크계의 ‘최강 동안’ 하이미스터메모리
“주거니 받거니 사는 얘기하고. (웃음) 김광석씨처럼 천 회 이상 공연하는데 관객들이 꽉 차 있고, 그걸로 생활해나가는 그런 삶을 꿈꿨죠. 삶의 태도나 소통하는 방식이 너무 부러웠어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장기 소극장 공연을 할 것 같아요. 대신, 찰리 채플린처럼 재밌게 말이죠.”

그는 선홍색 잇몸이 훤히 들어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을 노래할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사진 하이미스터메모리 제공, 장소 협조 카페 ‘커먼’.

■ 이럴 땐, 이런 음악!

‘하이미스터메모리’에겐 10년간 쓴 일기를 음악으로 모은 1집 앨범 ‘안녕, 기억씨’가 있다. 그의 게으름은 이유가 있었다. 3년 8개월 만에 들고 나온 2집 ‘내가 여기 있어요’엔 사람이야기를 담았다. 창 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은 엄마, 할머니 이야기, 흐릿해진 낙서를 바라본다. 스스로 “조금 더 따뜻해졌다”고 말하는 하이미스터메모리.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그의 음악을 들어보자.

♪ 꽃순이 이야기

“열다섯 살 꽃순이가 어느 날 꽃방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할머니가 되었더라는 전설이 있다.” 하이미스터메모리는 공연에서 ‘꽃순이 이야기’를 부르기 전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에 숨겨진 얘기는 따로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한 곡이다. 이 곡은 2007년 8월 15일, 수요집회에 나온 할머니들에게 처음 들려드렸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 엄마를 부탁해

“가장 옆에 있는 사람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그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엄마를 부탁해’를 들으신 분들이 엄마에게 ‘밥은 드셨어요’라고 안부 전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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