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미워할 수 없는 ‘속물’ 신하균

등록 2012-01-09 20:25수정 2012-03-14 16:22

허미경의 TV남녀
8일 오전 서울의 한 종합병원 복도. 하얀 가운을 입은 한 무리의 의사들이 휘적휘적 지나간다. 왠지 병정들의 사열행진 같다. 맨앞, 반보 앞서 걷는 이가 대장 같다. 득의양양한 얼굴로 입을 뗀다. “외과의는 수술이 생명이야~!”

의학드라마 <브레인>(한국방송) 촬영현장이다. 대장놀이를 즐기는 듯 보이는 그 의사는 천하대병원의 신경외과의 이강훈이다.

“와, 신하균이다.” 촬영장을 애써 찾아온 듯한 10~30대 남녀들이 멀찍이 떼를 지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요즘 드라마 팬 사이에선 ‘신하균 앓이’가 대세다. 신하균 때문에 아프단다. 20부 중 16회가 방영된 현재 <브레인> 게시판엔 1만8500건의 시청자 글이 올라 있다. <뿌리깊은 나무>(7500여건), <천일의 약속>(3700여건)을 압도한다. 디시인사이드 ‘브레인 갤러리’에는 7만5000여건! 아마도 영화 <지구를 지켜라>,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를 통해 자기만의 연기영역을 구축한 뛰어난 배우라는 상찬을 들었을 때도 이처럼 대중적인 ‘앓이’의 주인공은 아니었지 싶다.

병원내 정치를 다룬다는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방사수한 건 아니었다. 주말 재방을 몰아 보다가 신하균이 연기하는 이강훈의 ‘묘한 캐릭터’에 놀랐다. 욕망덩어리! 저런 속물이 있나! 처음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인 줄 알았다. 속물, 권력, 욕망. 이 세 낱말이 몸속 깊이 박힌 인물이다. 물론 그는 실력도 최고다. 권력 중심에 서려고 제 능력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 남의 업적을 제 것이라고 사기 치진 않지만, 이른바 ‘정도’가 아닌 편법도 때로 택한다. 극중 천하대병원 조교수에 임용되려고 신경외과 과장의 논문을 써주는가 하면 그 과장 앞에 굴신한다. 내 기억에 극의 갈등 제조기인 악역이나 조연이 아니라면, 이렇게 드러내놓고 출세에 몸을 던지는 속물 드라마 주인공은 드물었다. 대개 주인공의 욕망은 보편적 시청자들이 보기에 수긍할 만한 ‘옳은 방법’의 틀 안에서 구현된다. 그래서 악역의 음모에 맞서는 주인공의 행동은 간난신고 끝에 ‘꿈’을 이루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이강훈은 과거 <하얀 거탑>의 권력지향형 외과의 장준혁(김명민)을 연상시키지만, 출세 방법론에서 더 노골적이다. 주목할 것은 이강훈이 가난한 집안의 자식, 곧 개천에서 난 용이란 점이다. 반면 그 상대역 서준석(조동혁)은 아버지가 같은 병원 의사다. ‘대물림 의사’로서 태생이 ‘귀족’인 그는 실력이 이강훈보다 못한데도 병원 권력구도 속에서 먼저 조교수를 꿰찼다.

허미경 방송미디어팀장
허미경 방송미디어팀장
이 권력게임에서 밀려났던 이강훈이 한 기업총수의 뇌를 수술해주고 천하대병원에 복귀하자,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유현기 피디의 말을 전하면, 시청자 게시판엔 “영웅의 귀환”이라는 둥 환영 글이 넘쳤다. 계층상승 통로가 점점 좁아지는 오늘 한국사회를 사는 수많은 ‘개천 용’들에게, 이강훈은 성공의 판타지를 작성하고 있다. 그의 성공을 기뻐하는 내게, 그래도 물음은 남는다. ‘개천 용’은 편법을 써도 되나? 유 피디가 에둘러 답한다. “실력 있어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잖아요. 많은 직장인들이 이강훈을 연민하고 공감하더라고요. 가진 거 없는 사람이 저리 큰소리치며 돌아다니니까.”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문재인 “박근혜 부산방문 고맙다”
“김재철 사장이 명품백 선물? 시계 기념품 받은 난 기분 나빠”
붉은 고기 많이 먹으면 일찍 죽는다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투신…“어둔 터널속 외로운 운행”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