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왼쪽) 신효범(오른쪽)
허미경의 TV남녀
가수 신효범 하면 떠오르는 말은 긴 기럭지와 폭발적인 가창력. 최근 <나는 가수다>를 통해 녹슬지 않은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이효리는 군설명이 필요 없는 가수 겸 방송프로 진행자. 요사이는 가요프로 <유앤아이>(에스비에스)를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두 사람은, 정부와 군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는 데 대해 트위터를 통해 우려를 표했다.
“구럼비 발파 소식에 여기저기 보호소에선 강아지들이 굶어 죽어나간단 얘기에 … 어디 웃을 만한 소식 없나요.”(이효리, 6일)
“강정마을은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 돈트 킬 강정 구럼비!”(신효범, 7일)
내 기억 속 구럼비는 구렁비다. 내 아버지의 말을 빌리면 “해풍에 잘 견뎌 바닷가에서도 잘 크는” 나무다. 제주에서도 지역에 따라 구럼비로도 불린다는 걸 강정마을을 통해 알았다. ‘구럼비 바위’란 지명은 가까이에 자생하는 이 나무에서 왔다고 한다.
어릴 적 동네에도 구렁비나무가 많았다. 작은외삼촌네 집으로 가는 고샅길, 어머니 심부름을 가다 까치발로 따먹던 구렁비 열매의 맛은 입안 가득 들큼한 향기로 아직도 내 혀끝에 어려 있다. 제주 섬의 북쪽에서 자란 나는 섬의 남쪽 서귀포에서 태어난 친구와 말싸움을 한 적도 있다. 고교 수학여행길에서다. 친구는 남쪽에서 쳐다보는 한라산이 훨씬 멋있다고 했고, 나는 북쪽 일주도로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자태가 최고라고 믿었다. 그 친구를 만난다면 구럼비가 맞다며 나를 타박할 것만 같다.
내게 외삼촌 셋 중 큰외삼촌은 외할머니의 넋두리 속 ‘수습되지 못한 주검’이다. 서북청년단의 죽창에 찔려 죽은 생때같던 큰아들로 기억된다. 외할머니는 깨복쟁이 어린 나에게, 큰아들의 주검을 찾아 헤매던 무더운 여름날의 시취, 총으로만 죽였어도 이리 억울하진 않았을 거라는, 쑤셔대는 죽창에 휘감겨 나왔다던 창자, 시신매장지의 비옥한 거름 위로 무성히 솟아났던 잡풀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4·3’을 겪으며 확 줄어든, 30가구가 채 안 되던 동네는 매년 어느 한날에 스무 집이 동시에 제사를 지냈다. 집단 제삿날이다. 외할머니의 넋두리가 심해졌던 날이다. 미군정에 이은 ‘육지부 정권’(이승만 정권)이 주도한 4·3의 살육은 그렇게 지금도 제주의 마을마다 상흔으로 남아 있다. 4·3의 비극을 평화 정신으로 승화하겠다며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정부가 그 섬에 군사기지를 세우려 한다. 강정마을의 폭 150m, 길이 1.2㎞의 천혜의 통짜 바위 구럼비는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화약폭탄에 의해 부서지고 있다. 바닷바람을 견뎌온 구럼비 나무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터다. 어쩌면 발파에 휩쓸려 같이 쓰러지고 있을 것만 같다.
신효범은 구럼비 발언으로 좌파니 뭐니 하는 비난을 받는 모양이다. 이효리의 발언은 유기견 보호운동에서 투표 독려, 구럼비 걱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1966년생과 79년생. 세대는 다르지만, 둘의 공통점은 트위터를 하며 팬들과 교감한다는 것.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이 느는 것은 ‘스스로의 매체’라 할 에스엔에스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덕분이다. 이 순간, 지면을 사유화해도 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마워요 효리, 효범. 힘내요, 제주!
허미경 방송미디어팀장 carme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 문재인 “박근혜 부산방문 고맙다”
■ “김재철 사장이 명품백 선물? 시계 기념품 받은 난 기분 나빠”
■ 붉은 고기 많이 먹으면 일찍 죽는다
■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투신…“어둔 터널속 외로운 운행”
■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 문재인 “박근혜 부산방문 고맙다”
■ “김재철 사장이 명품백 선물? 시계 기념품 받은 난 기분 나빠”
■ 붉은 고기 많이 먹으면 일찍 죽는다
■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투신…“어둔 터널속 외로운 운행”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