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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우리 삶이 초라할수록 커지는 ‘신데렐라의 힘’

등록 2012-10-19 19:40수정 2012-10-19 21:34

드라마 <착한 남자>의 ‘남자 신데렐라’ 송중기(강마루)와 <내 딸 서영이>의 ‘신데렐라’ 이보영(이서영). <한국방송> 제공
드라마 <착한 남자>의 ‘남자 신데렐라’ 송중기(강마루)와 <내 딸 서영이>의 ‘신데렐라’ 이보영(이서영). <한국방송> 제공
허미경의 TV남녀
역시 영원한 건 신데렐라인가 보다. ‘이야기의 새로움’이란 측면에서 딱히 군계일학이 눈에 띄지 않는 가을 안방극장에 시청률의 두 강자가 있으니, 바로 <내 딸 서영이>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착한 남자)이다. 각기 지상파 수목극과 주말극 1위인데, 가진 것 없는 한 남자의 복수담과 아버지와 딸의 애증과 화해의 이야기란 점에서 결이 많이 다르지만 이 두 극의 공통된 시청률 코드, 시청자 교감 코드는 신데렐라다.

<착한 남자>가 첫사랑 여자한테 철저히 배신당한 남자 ‘강마루’(송중기)가 그 첫사랑이 권력을 쥐고 있는 재벌 집의 딸을 만나 새로이 사랑에 빠지고 복수를 한다는 얼개의 멜로물이라면, <내 딸 서영이>는 가난한 집안의 똑똑한 딸 ‘이서영’(이보영)이 우연히 준재벌급 기업주 집안의 과외교사를 하다가 그 집 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한다는 이야기이다. ‘꽃남’에서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송중기(27)가 <착한 남자>의 남자 신데렐라라면, 차분한 걸음으로 연기 폭을 넓혀온 이보영(33)은 <내 딸 서영이>의 여자 신데렐라이다.

신데렐라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쓴 민담집 <옛날 이야기>의 한 편인 <상드리용>이 영역본에서 <신데렐라>로 옮겨지면서 그 이름이 유명해졌는데, 알다시피 서양만의 것이 아니다. 신데렐라형 이야기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9세기 당나라의 <유양잡조>이다. 한반도 곳곳에서도 신데렐라와 꼭 닮은 ‘콩쥐팥쥐’ 설화가 약간씩 변이된 형태로 채록되는데, 조선 후기 고전소설 <콩쥐팥쥐>로도 형상화됐다. 신데렐라의 원조를 두고 최근 <유양잡조>의 이야기가 서양에 전해졌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기실 중요치 않다. 유럽과 아시아에 적어도 500개가 넘는 ‘이종’ 신데렐라형 설화가 구전돼 왔고, 동서를 통틀어 인류의 이야기 원형으로 구실해온 탓이다. 신데렐라는 서양판 콩쥐요, 콩쥐는 한국판 신데렐라인 셈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궂은 일을 도맡는 착한 여자가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떨어뜨린 신발을 빌미 삼아 수직 신분상승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신발은, 신화저술가 고 이윤기의 말을 따르면 그 인물이 살아온 이력을 상징한다. 하여간 신데렐라는 그 동네 왕자를, 콩쥐는 그 고을 원님을 만나 ‘해피 엔딩’한다.

그 원형이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신데렐라가 동서고금 신분사회에서 ‘없는 자’들의 계급 상승 욕망을 구현하는 판타지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성공담이 판타지인 이유는 현실에선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어쩐 일인지, 주인공의 계급상승에 사다리 노릇을 하는 원님(왕자)이 콩쥐(신데렐라)한테 한눈에 반한 것처럼, 현대판 남녀 신데렐라에게도 오늘날 부의 화신인 재벌 집 아들과 딸은 단숨에 빠져 버린다. <내 딸 서영이>의 재벌집 아들(이상윤)은 이보영에게 고백한다. “밥을 먹여주고 싶고, 웃는 얼굴을 보고 싶고, 우는 얼굴도 보고 싶다고요.” <착한 남자>의 재벌집 딸(문채원)은 대학중퇴에다 과실치사 이력까지 지닌 송중기에게 이렇게 외친다. “나 잘난 줄만 알던 내가, 싸가지없고 재수없던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 불가능의 마법이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텔레비전 앞 소파에 늘어져 있는,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무하는 판타지이다. 부가 편중되어 계급 격차가 심한 사회일수록, 시청자를 사로잡는 신데렐라의 원초적 마법은 더욱 힘이 세진다. 신데렐라 판타지의 현대성이 거기에 있다.

허미경 대중문화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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