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반말’, 시청자 예의와 품위유지 위배돼 행정지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정치 풍자 아니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정치 풍자 아니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로 발언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의 행정지도를 받아 입길에 오르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개그맨 정태호가 박 당선인을 대상으로 “잘 들어”, “절대 하지 마라” 등 반말로 발언한 내용에 대해 16일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어 심의한 결과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1항의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행정지도 조처를 내렸다고 29일 밝혔다. 방통심의위가 개그콘서트 쪽에 내린 ‘의견제시’ 조처는 심의 규정 중 비교적 경미한 사안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내려지는 행정지도이다.
앞서 지난해 12월23일 방송에서 정태호는 박 당선인을 지목해 “드디어 18대 대통령이 당선이 됐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박근혜, 님 잘 들어. 당신이 얘기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그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한가지는 절대 하지마라.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어. 왜 이렇게 웃겨. 국민들 웃기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나랏일에만 신경쓰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이 방송에 대해 “발언내용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면서도 “‘정치 풍자’라 함은 ‘정치권의 부조리나 과오 등을 빗대어 폭로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대상으로 ‘훈계’ 조로 발언한 것을 두고 바람직한 ‘정치 풍자’라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이렇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judy****는 “개그를 다큐로 받다니!”라고 비판했고 @junnie****는 “지금은 조선시대? 과거로 뒷걸음질…뒤로 가도 너무 한참 갔네”라고 탄식했다. 또다른 누리꾼 @oby****는 “정승집 개,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고…방통위는 벌써 머슴 자임..?”이라고 비꼬았다.
‘공안검사 출신이 이끄는 방통심의위의 수준’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아이디 @nati***은 “방통심의위 그리고 박만 위원장 잘 들어. 코미디 하지마. 박근혜가 연장자고 막 당선되어서 개콘 소재로 반말하고 웃기면 안된다고? 풍자의 개념도 모르면서 문화관련 장 자리에 앉아있지 마”라고 일갈했다. 박만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지낸 공안검사 출신이다.
“유권자가 당선자에게 개그했다고 납세자를 무시하는 방통위. 세금 아깝다”(@bookpart****), “현실이 코메디보다 더 웃겨도 되나?”(@digir****) 등의 의견도 이어졌다.
시민단체도 “당선인 심기 맞추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방통심의위가 개그프로그램의 특성이나 표현의 취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추후 제작에 유의하라고 한 것은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국민의 눈높이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심기만을 의식해 짜맞춘 억지심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번 문제가 된 당선인에 대한 표현은 ‘용감한 녀석들’다운 어법으로 서민들을 위한 정책, 학생, 기업을 위한 정책들을 잘 지키길 바란다는 당부를 담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방통심의위는 2008년 출범 이후 PD수첩 광우병편에 대해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정부의 축산정책과 경제정책 등을 비판한 내용에 공정성 위반이라고 행정제재하는 등 그동안 정부정책을 비판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며 행정지도 철회를 촉구했다.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대통령 당선자 편은 지난달 방송 직후부터 온라인에서 새누리당쪽 누리꾼들의 ‘보복’ 대상으로 지목돼 온 사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새누리당을 위해 ‘불법 댓글 알바팀’(이른바 십알단)을 운영한 혐의로 지난 24일 구속된 윤정훈(39) 목사가 대표적 인물이다. 윤 목사는 ‘용감한 녀석들’의 방송 내용을 문제삼으며서 개그맨 정태호씨와 프로그램 제작자인 KBS 서수민 피디 퇴출을 선동하기도 했다.
이에 서수민 피디는 지난달 24일 트위터를 통해 “‘용감한 녀석들’ 발언에 의견이 많으시네요. 참고로 이 녹화분은 대선 당일날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에게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특정 당선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니 오해 말아주시길 바랍니다”고 이례적으로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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