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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나영석 PD “정든 KBS 떠난 진짜 이유는…”

등록 2014-11-14 19:29수정 2015-12-22 15:07

나영석 피디
나영석 피디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나영석 피디
마음을 한번 툭 건드려주는 것, 그게 내 몫
▶ 이진순 언론학 박사. 희망제작소 부소장.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조교수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을 강의하다가 사직하고 귀국해 시민운동 현장에 합류했다. 경험과 논리에 갇히지 않고 즐겁게 소통하고 진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타박받을 얘기지만, 나는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웃자고 벌이는 추격전이나 벌칙 수행 같은 것에 도무지 웃음이 나지 않는다. 친한 척하면서 등 뒤로 숨어들어 이름표를 찢고는 승자가 되었다고 환호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칠 때도 있고, 사람을 일렬로 세워놓고 경매하듯이 짝짓기 승부를 벌이는 광경도 가볍게 웃어 넘겨지지가 않는다.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복불복”이라는 다분히 시니컬한 제목을 달고 게임을 벌이는 것도, 벌칙을 주는 것도 도무지 마뜩잖았다. 코앞에 산해진미를 차려서 홀려놓고는 “장난으로” 밥을 굶기고, 뜨끈뜨끈한 방 놔두고 한데서 잠을 자게 하는 게 도대체 어느 나라 풍습인가. 마초적인 가학취미거나 부잣집 철부지들의 거지 흉내 같아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까나리액젓같이 귀한 음식재료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저거 한 방울이면 음식이 얼마나 맛깔스러워지는데….

그렇게 못마땅했던 프로그램에 내가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게임의 비중이 줄어들고 오락에 사람 냄새가 덧입혀져 가면서부터다. 강화도의 구식 이발관에서 출연자들이 머리를 깎고, 경상도 산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노래방 대결을 하고, 시청자를 불러들여 같이 노는 큰 판도 기획하고…. 더 놀라운 건, 화면 바깥의 제작 스태프들이 단골 게스트가 되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그들 스스로 웃음의 코드가 되는 모습이었다. 밥차 아주머니가 일하던 복장 그대로 등장하고, 게임에 진 제작 스태프들이 비 오는 날 마당에서 노숙을 하고…. 한때 방송국 근처에서 얼쩡거려본 내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웬만큼 탄탄한 팀워크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이런 멤버십과 팀워크를 만든 감독의 리더십이란 어떤 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능청스런 말투와 기지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나영석(38) 감독. 2010년 방송노조 파업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의 사진을 보며 호기심은 더 커졌고, 지난해 케이블방송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선보인 <꽃보다 할배> 시리즈와 <삼시세끼>의 잔잔한 페이소스에 감동하며, 나영석이 바라보는 세상과 웃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지난달 27일 상암동의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덥수룩한 머리에 헐렁한 청바지, 후드티 차림의 그는 티브이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른 공경, 효도, 자연보호 등등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잊고 살다가
갑자기 얻어맞으면 마음 치면서
감동스럽게 다가오는 경우 있다
거창한 얘기 아닌 그런 게 내 몫

내 프로는 ‘리얼’ 가장한 판타지
시청자는 바보 아니라고 본다
뒤에 우렁각시와 실제 농부가
있음을 알지만 굳이 예능프로서
그걸 보고 싶지는 않은 거다

정든 KBS를 떠난 진짜 이유

-한국 위키피디아에도 “나영석”에 대한 정보가 있다. 누군가 굉장히 열심히들 조사해 올렸던데.(웃음) 1976년 청주 출생. 청주에서 초·중·고 다 마치고 94년 연세대 행정학과 입학. 케이비에스(KBS) <출발 드림팀> 조연출로 시작해서 <여걸식스> <1박2일> <인간의 조건> 등을 연출하고 2013년 씨제이이앤엠(CJ E&M)으로 이적, <꽃보다 할배> 시리즈와 <삼시세끼> 연출…. 다 맞는 정보인가?

“그런 것 같다.”

-그럼 케이비에스를 사직한 건 2012년 말?

“2013년 1월1일부터 씨제이 근무니까, 사표가 수리된 건 그 전해 12월일 것이다.”

-2010년 노조 파업 집회에서 연설한 것과 케이비에스 사직에 어떤 연관이 있지 않나 추측하는 이들이 많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뭐, 오다가다 마주치면 불편한 얼굴로 날 쳐다는 봤지만 그래도 케이비에스가 좋은 회사인 것이 ‘너 때문에 피곤하게 됐지만 이해 못하진 않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회사를 옮긴 건 그야말로 개인적인 판단이다.”

-개인적인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작년 10월 케이비에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왜 유능한 피디들이 케이비에스를 떠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케이비에스 쪽은 나영석 피디 등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떠난 건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 대해서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당신은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굳이 반론을 제기해야 하는지 몰랐다.(웃음)”

-그럼 시인한단 뜻인가?

“여기 오면서 돈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할 말은 없다.”

그를 키워준 직장에 날을 세우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영석은 <1박2일>에서 손을 뗀 뒤 열흘간 혼자서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다. 당시의 심경을 담은 에세이에서 나영석은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고사했던 과정을 나지막이 고백한다. <1박2일>을 위해 5년간 한 식구처럼 동고동락해온 사람들을 버리고 혼자만 떠날 마음이 들지 않는단 이유였다.

아이고야, 저 큰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구나. 그놈의 사랑이 뭐길래, 정이 뭐길래. 게다가 지금은 옛날만큼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별수 있나, 사랑이란 게 다 그런 건데. 결국 다시 어둑한 지하다방에서 전화했던 사람들을 역순으로 불러내어 힘들게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못 갈 것 같습니다.”(<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323쪽)

-그렇게 미련이 많았는데 케이비에스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뭔가?

“그때…(피식 웃으며) 그때가 인생이 싫어질 때. 1박2일로 너무 지치고 힘든데, 그 무게에 버거워 뒤로 쓰러질 것 같았을 때다. 회사에 시즌제로 하자는 제안도 했었다. 작가나 연기자, 아무 데도 안 간다고, 지금 소재도 떨어졌으니 요 멤버들 고대로 최소 3개월이나 반년만이라도 좀 쉬었다 하자고…. 근데 그런 게 공중파(지상파)에선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거다. 경제논리니까. 방송 한번 죽으면 10억이 사라지고, 반년이면 240억인데… 공영방송이라고 해도 실상은 시청률 경쟁과 광고 수주 경쟁이 전부니까.”

살인적인 스케줄이 5년간 이어지면서 같이 일하던 조연출들은 줄줄이 디스크며 스트레스성 장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작가들은 아이디어 고갈로 나날이 피폐해져 갔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들을 독촉하고 쥐어짜야 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어느 날, 그는 사직을 결심했다. “더 이상 나나 다른 사람을 학대하며 살기가 싫고 민폐를 끼치기가 싫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사람 무시하면서 예술할 생각 없다

-그런데 당신 책을 보니, 원래는 사표를 낸 후에 따로 프로덕션을 차리려고 했다고?

“난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피디도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으쌰으쌰해서 한 작품을 하고,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그래도 너랑 해서 너무 다행이야, 그런 느낌으로 같이 일하는 것, 그게 내가 제일 원하는 거다.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돈도 많이 안 벌어도 좋고 그냥 일 년에 두 작품 정도만 하면서 살고 싶었다. 옛날에 대학 4년 내내 미쳐 살았던 연극반 시절처럼.”

-근데 왜 포기하고 취직했나?

“(진지하게) 겁이 나서. 우리끼리 계획하고 의견 모을 땐 너무 즐거웠는데, 임대료 계산하고 정수기 놓을까 말까 투자 지분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 누군가는 이것만 계산하고 있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어졌다.”

-당신 책에도 대학 시절 연극반의 추억이 자주 언급되던데, 연극반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원래 연기에 재능이 있었나?

“전혀. 난 낯가림이 심하고 누구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교우관계도 아주 한정적인 사람이다. 근데 난, 나한테 없는 재능을 되게 부러워하고 사모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못하니까 나와 다른 사람들이 멋져 보이고,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고… 미술 못하는 애가 미술학원 가듯이 간 거다.”

-그래서 연극반 가서 재능이 키워졌나? 기억에 남는 배역이 있다면?

“나무1? 나무2?”

-(웃음) 그래도 연극반을 탈퇴하지 않고 꾸준히 했나 보다.

“재밌으니까. 걔들이랑 노는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고 빛나는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같잖은 짓거리일지 몰라도 그땐 정말 진지했다. 술 마시면서 넌 뭐가 틀렸어 이 자식아, 하면서 싸우고, 그런 순간순간들이 ‘아, 내가 이 사람들과 동료구나, 뭔가 같이 만들고 있구나’ 실감하게 했고. 그렇게 한편 끝내면 ‘아, 드디어 하나가 끝났구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그런 감정의 사이클과 기승전결이 사람을 정신없이 미치게 했다. 4년 내내.”

나영석을 “미치게 하는” 것, 대학 연극반과 1박2일 시절, 잠시 꿈꿨던 프로덕션까지, 나영석을 집요하게 잡아끈 힘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진하고 끈끈한 동료의식과 연대감이었다. 그의 책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에서 나영석은 이런 자신의 삶을 단호한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94학번이면 학생운동 퇴조기인데, 당시 연극반 분위기는 어땠나?

“어떤 때는 회의도 들었다. 이렇게 두세 달 연습해서 결국은 ‘통일을 이루자’ 이런 거창한 주제를 얘기하는 건데, 보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고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차라리 학생회관 앞에 가서 매일 두 시간씩 ‘통일을 앞당기자’ 이렇게 외치는 게 전달이 빠르겠다, 그런 말을 하면 친구들이 예술을 모르는 소리라고 난리를 쳤지만, 나란 사람은 촌스러워서 뭔가 미디어를 통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코미디의 효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코미디를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니까.”

-미학적 접근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에 관심이 있었단 얘긴가?

“그렇다. 예술가로선 아주 하질이다.(웃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 어떤 메시지를 널리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1박2일 때도 그런 욕 많이 먹었다. ‘억지감동’ ‘감동강박’… 촌스러운 감성인데, 내 머릿속에 늘 들고 다녔던 기준은 ‘우리 아버지가 봐서 이해할 수 있는 예능이라야 한다’는 거였다. 할아버지가 어떤 예능을 보고 웃을 수 있겠나. 그러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해줘야 한다. 회의를 하거나 편집을 할 때 기막히고 정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디어가 나와도 복잡하면 폐기한다. 공영방송 케이비에스에서 만드는 예능은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tvN·티브이엔) 와서는 젊은 사람 대상으로 하는 채널이니 그런 부분 많이 버리려고 하지만 여전히 족쇄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 대상으로 생각해낸 프로가 <꽃보다 할배>?(웃음)

“<꽃보다 할배>, 그리고 진짜 세련되고 트렌디한 거 해보자 하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삼시세끼>.(웃음) ‘나영석표 예능이란 이런 거예요. 누추해서 죄송합니다’ 할밖에….(웃음)”

나영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인터넷으로 항공편과 호텔 예약을 할 줄 몰라 며칠을 끙끙대고, 핸드폰도 통화와 문자메시지 외엔 거의 쓰지 않는다. 입사 초기 남들은 일주일이면 배우는 편집기를 1년 동안 배우느라 끙끙댄 “기계치”에다가, 운전도 서툰 “길치”다. 연예인 울렁증이 심해서 톱스타 진행자에게 “스탠바이” 하라는 말을 못 건네고 우물쭈물하다 생방송 시상식에서 방송 사고를 낸 일도 있다. 이런 어수룩하고 빈 구석이 그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겸손하고 카리스마 없는 그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따르는 이들이 늘 그의 주변에 넘쳐난다.

-출연자는 물론이고 말단 스태프까지 자발적인 헌신성을 끌어내는 재주가 남다른 것 같다. 비결이 뭔가?

“그냥, 정당한 인간적 대우를 해주면 된다. 70~80명의 스태프가 거기 있는 이유는 각자 하나하나 소중한 역할이 있어서다. 예를 들어 배차 담당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일이 사실 도드라지진 않지만 잘 안되면 욕은 욕대로 무지하게 먹는 자리다. 그럼 그 친구한테 권한을 주고 ‘네가 책임을 지고 해줘’ 맡기고 ‘고맙다, 수고했다, 너니까 했다’ 이런 얘길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다다. 그렇게만 해도 ‘아, 피디님한테 칭찬받았어’가 아니라 ‘나도 1박2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어’가 되는 거다. 그런 주인의식을 갖는 게 진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사소한 차이가 100%를 채운다고 믿는다.”

-이우정 작가가 어느 대담에서 당신을 두고 ‘만인의, 만인을 위한, 만인에 의한 편집을 하는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한 걸 읽었다. 편집 같은 경우엔 메인피디의 주관과 일관성이 크게 좌우하는 분야 아닌가?

“뭐 얼마나 대단한 예술작품을 한다고, 사람 무시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나. 내가 반 고흐도 아닌데.(웃음) 우리 조연출 4명이 15분씩 편집해서 60분짜릴 만드는데, 누구 부분은 재미있고 누구는 재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재미없는 부분을 자르는데, 둘째 주에 방송이 적게 나간 조연출이 또 재미없는 부분을 맡게 됐다 치자. 그래서 내가 그걸 또 잘라낸다면, 그 친구는 ‘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저 사람은 날 인정해주지 않는구나’ 생각할 거다. 나사 하나가 살짝 헐거워지는 건데 그렇게 생긴 작은 균열이 프로그램 전체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마음을 한번 툭 건드려주는 게 내 일

-재미없어도 그 친구 걸 내보내는 게 맞나?

“재미없어도 다 내보낸다. 그게 궁극적으로 방송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사회주의자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웃음) 그런 리더십은 어디서 배웠나?

“리얼리티 쇼를 하다 보니 생긴 버릇 같다. 어떤 장르보다도 결국 사람이 중심인 ‘사람장사’니까.”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예능의 종착점은 “인간극장”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던데, 당신이 추구하는 재미와 감동의 포인트는 뭔가?

“모든 인간은 하나의 드라마다. 사실 내가 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아주 재미없는 이야기다. 어른을 공경하자, 부모님께 효도해라, 자연을 보호해라.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잊고 살다가 갑자기 얻어맞으면 마음을 치면서 감동스럽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정치를 바꾸자, 사회를 바꾸자, 이런 거창한 얘기는 내 몫이 아니고, 그렇게 마음을 한번 툭 건드려주는 것, 그게 내 일이라고 본다. 내가 만든 프로 중에서 외국인 노동자 특집을 할 때 피디로서 가장 보람 있고 뿌듯했다. 그걸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뀐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면 까먹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그런데 <패밀리가 떴다>부터 <아빠 어디 가>, <1박2일> 그리고 <삼시세끼>까지,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예능프로를 보면 정작 농가의 주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삼시세끼>를 봐도 외지에서 온 두 연예인이 주인이고, 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우렁각시처럼 텃밭을 가꾸고 짐승을 돌보고 가마솥을 반질반질 윤나게 해놓는 실제 농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작위적 설정을 최소화한다면서 이건 또다른 “작위적” 배제 아닌가?

“이게 되게 애매한 지점인데, 사람들이 ‘진짜의 진짜’는 원하지 않는다. 내가 만든 프로는 ‘리얼’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판타지 공간인 경우가 많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촬영하는 뒤에는 우렁각시가 있고 실제 농부가 있다는 것도 다 안다. 실제 농촌의 현실이 저렇게 낭만적이지만도 않고 빡빡하다는 것도 알고. 굳이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그걸 보고 싶진 않은 거다.”

이진순 언론학 박사·희망제작소 부소장
이진순 언론학 박사·희망제작소 부소장
트루먼 쇼의 가상세계에서 펼쳐지는 진짜 같은 가짜.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재현된 일상에 동질감을 느끼고 가상의 휴식을 취한다. 현실은 나영석이 보여주는 판타지처럼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게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따뜻한 마음의 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 허점을 들춰내는 게 옳을까, 적당히 눈감고 속아주는 게 옳을까. 나영석표 예능이 ‘리얼’이 되라고 하기보다, 우리의 ‘리얼’이 그의 삼시세끼 같은 세상이 되기를…. 이건 나의 옹색한 판타지다.

녹취 김연지(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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