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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박정희 맞은 윤보선의 첫마디 ‘올 것이 왔구먼’ 검증했다”

등록 2018-09-15 09:00수정 2018-12-10 17:58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35회) ‘제2공화국-1989년의 쿠데타
1989년 7월 고석만 연출은 이상현 작가와 두번째 정치드라마 <제2공화국>을 제작했다. <제2공화국>은 첫회에서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날인 1961년 5월16일 ‘박정희 군사 쿠테타’를 사상 처음으로 재현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파일럿 점퍼와 검은 선그라스로 각인된 박정희 소장을 비롯 5·16쿠데타 세력들의 닮은 꼴 연기로 큰 인기를 모았다. 왼쪽부터 김형욱(박상조)·유원식(국정환)·김종필(예비역, 이정길)·박정희(이진수)·김재춘(김창봉) 등이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1989년 7월 고석만 연출은 이상현 작가와 두번째 정치드라마 <제2공화국>을 제작했다. <제2공화국>은 첫회에서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날인 1961년 5월16일 ‘박정희 군사 쿠테타’를 사상 처음으로 재현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파일럿 점퍼와 검은 선그라스로 각인된 박정희 소장을 비롯 5·16쿠데타 세력들의 닮은 꼴 연기로 큰 인기를 모았다. 왼쪽부터 김형욱(박상조)·유원식(국정환)·김종필(예비역, 이정길)·박정희(이진수)·김재춘(김창봉) 등이다. 사진 문화방송 제공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89년 7월부터 10개월에 걸쳐 방영된 문화방송 정치드라마 <제2공화국>의 첫회 첫 장면은 61년 5월16일 오전 3시 청와대를 깨우는 비상전화 벨소리에서 시작했다. 특히 ‘윤보선 대통령과 쿠데타군의 사전내통설’을 3각 증언으로 검증했다.
1989년 7월부터 10개월에 걸쳐 방영된 문화방송 정치드라마 <제2공화국>의 첫회 첫 장면은 61년 5월16일 오전 3시 청와대를 깨우는 비상전화 벨소리에서 시작했다. 특히 ‘윤보선 대통령과 쿠데타군의 사전내통설’을 3각 증언으로 검증했다.
6월 민주항쟁으로 비롯된 ‘87체제’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중첩돼 있다. 그 결과, 시민사회 내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의 대립과 투쟁의 정치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등 6·10항쟁의 희생은 3당 합당으로 묻혀버렸고, 88올림픽을 치르며 민주화 염원은 무색해졌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었다. ‘87체제’는 벌써 와해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때 박정희가 나타났다. 그 누구도 아닌 박정희의 등장은 놀랍다. ‘5·16’의 새벽, 쿠데타군은 안개 자욱한 6관구 길을 따라 노량진 쪽으로 진군하고 있다. 그 선도의 군용 지프에는 박정희가 파일럿 점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이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한강교를 넘을 땐 엄숙하기까지 했다. 지프의 엔진 소리와 탱크의 캐터필러 굉음만 들릴 뿐 천지는 고요하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새벽 3시다. 카메라는 조선총독부 터에 있는 중앙청부터, 조선조 500년의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의 중심까지 밀고 들어간다. 침실의 윤보선 대통령은 잠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이다. “각하!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자리를 피하셔야겠습니다.” “장면 총리는 피신을 했다? 고얀 사람들… 총리가 정부와 국민을 버리고 달아나다니… 내가 아무리 내각책임제 실권 없는 대통령이라지만….”

쿠데타군은 남산의 중앙방송국(KBS 전신)를 포위하고 스튜디오로 진격한다. 아침뉴스를 준비하고 있던 박종세 아나운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백척간두의… 우리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이른바 혁명공약이 전파로 날아갔다. 전 국민은 숨죽이며 듣고 있다. 이것은 쿠데타의 교본이 되어, 최근 기무사도 그대로 베꼈다.

1989년 7월 두번째 정치드라마 연출
최창봉 사장 ‘친구’ 김기팔 작가 ‘배제’

‘제2공화국’ 마지막 날부터 첫회 시작
61년 ‘5·16쿠데타’ 첫날 시간별 재현

새벽 3시 한강대교 건너는 탱크부대
장도영 육참총장 전화 “피신하십시오”
반도호텔 장면 총리 도피처 찾아 ‘방황’
새벽 5시 박종세 아나 ‘혁명공약’ 낭독

오전 10시 청와대 접견실 회의 상황
‘윤보선-혁명군 사전내통설’ 미스터리

윤 대통령·현석호 장관·유원식 대령
“쿠데타 승인 끝까지 거부” “추인했다”
세가지 다른 증언 차례로 ‘재현’ 구성

문화방송의 정통 정치드라마 <제2공화국> 제1화 ‘5·16 쿠테타’가 1989년 7월 첫 전파를 탔다. “혁명은 티브이로 중계되지 않는다.” 조 트리피가 말했지만, 5·16 쿠데타는 중계되고 있었다. 드라마는 제2공화국의 마지막 날이 되는 그 새벽부터 시작했다.

그 첫회에, 5·16에 대해 아직껏 그 진부를 가릴 길이 없는 스토리 하나가 담겼다. 민주당 정권 시절 대통령 윤보선과 ‘혁명 주체’를 자칭하고 있는 유원식 대령 사이의 이른바 ‘사전내통설’이다. 5·16 몇달 전에 유원식이 쿠데타 계획을 윤보선에게 제보해주면서 대통령직을 보장해줄 테니 거사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고, 윤보선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설’이다. 그 유명한 한마디, 윤보선의 “올 것이 왔구먼”에 대하여, 처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해석을 좇아, 드라마는 첫회부터 파격적인 구성을 시도했다. 똑같은 ‘청와대 접견실’ 장면을 윤보선(이순재), 유원식(국정환), 현석호(변희봉)의 관점으로 순차 구성하며 5·16 당일의 행적을 입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절묘한 구성이었다. 증언에 따른 대사, 감정, 심지어 세트를 전환하며 인물 위치와 카메라 각도를 바꿔가며 연출되었다. 역사를 미시적으로 관찰하여 큰 맥락을 놓칠까 두려운 마음을 안고 크게 눈 뜨고 다가갔다.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 윤보선(이순재)은 1961년 5월16일 청와대 집견실로 들어온 박정희와 유원식을 보며 “올 것이 왔구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쿠데타 추인’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회고록 등에서 주장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 윤보선(이순재)은 1961년 5월16일 청와대 집견실로 들어온 박정희와 유원식을 보며 “올 것이 왔구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쿠데타 추인’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회고록 등에서 주장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 윤보선의 증언

윤보선은 접견실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소리를 듣게 된다. “반란이 아닙니다. 역사와 국민을 위한 거사입니다.” 이때 윤보선이 들어서며 처음 본 것은 탁자에 놓인 박정희(이진수)의 선글라스와 지휘봉과 별 두개의 군모다. 장도영(김동현) 참모총장과 김신, 김성은 3군사령관, 그리고 현석호 국방장관이 일어선다.

윤보선은 박정희 일행을 보며, “올 것이 왔구먼.”

박정희: “각하! 제가 박정희입니다. 근심 끼쳐 죄송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 충정에서 목숨 건 혁명을 감행했습니다.”

윤보선: “애국 충정이라 했소? 애국의 방향은 절대로 동족 간에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거요. 민주당에도 보복은 금지하오.”

박정희: “오늘 전국적으로 선포된 계엄령을 추인해주십시오. 각하께서 추인하셔야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윤보선: “추인할 수 없소.”

박정희: “…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물러가겠습니다.”

박정희와 유원식 나간다. 참모총장들도 빠져나간다. 곧이어 박정희와 유원식 다시 들어온다.

박정희: “각하에게만은 과거에도 지금도 충성심 변함없습니다. 이번 거사는 인조반정이라 생각하시고, 혁명 지지 성명을 내주십시오.”

윤보선: “그럴 순 없소. 첫째, 후세 사가들이 어찌 평가하겠소. 둘째,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셋째, 둘 중의 하나, 내통 아니면 혁명군의 협박에… 피차간에 이롭지 못할 것이오.”

박정희: “계속 모시겠습니다. 저희들을 지도해주십시오.”

윤보선은 끝내 추인을 거부했다고 증언하고, 5·16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지속적으로 증언한다. 그런데 유원식 대령의 뜻밖의 증언이 나온다.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혁명주체’를 자처하는 유원식 대령은 1961년 5월16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윤보선 대통령에게 ‘계엄령 추인을 받았다’며 사전내통설을 주장한다.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혁명주체’를 자처하는 유원식 대령은 1961년 5월16일 청와대 접견실에서 윤보선 대통령에게 ‘계엄령 추인을 받았다’며 사전내통설을 주장한다. 문화방송 제공
■ 유원식의 증언

5월16일 새벽, 유원식 대령은 박정희의 지프 뒷자리에 앉아 그날의 행보를 밀착 수행하고 있었다. 한강 도강, 중앙방송국 접수, 혁명공약 발표, 육본에 있는 장도영을 찾아 나선 박정희. 하우스먼 고문의 강력 발언. “매그루더 사령관의 지시요. 쿠데타군이 4000명이라면 그 10배를 동원하여 격퇴시켜야 하오. 무조건 진압시키시오!” 박정희와 하우스먼의 일촉즉발. 박정희는 장도영과 함께 청와대로 향한다.

청와대 접견실, 윤보선은 박정희와 유원식을 마주하며 “올 것이 왔구먼….” 유원식은 “대통령 각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윤보선은 간신히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유원식 대령 아니십니까?” 유원식은 이어서 “그럼 그전에 말씀하신 그대로 하십시오. 이 자리에는 민주당 국방부 장관도 참석해 있습니다만, 우리가 선포한 계엄령의 추인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러니 이 순간부터 민주당 정권과 민주당 장관은 염두에 두지 마시고 그전에 말씀하신 대로 행동하십시오.” 그러자 윤 대통령은 “민주당 정권의 실정에 대해서는 본인도 책임이 있으니 이 자리를 물러날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계엄령 선포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저희들 목적은 계엄령 선포의 추인을 받으러 온 것인데, 각하께서 이를 추인하셨으니 이제 저희들 용무는 끝났습니다.”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다른 사람들도 일어섰다. 윤 대통령은 현석호 장관, 장도영 장군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유원식에게 “단둘이 조용히 만날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고 나간다.

윤보선과 유원식은 상반된 주장을 한다. 사전 내통이다, 추인이다, 아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의 주장이 있다.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1961년 5월16일 국방장관 현석호(변희봉)는 청와대 접견실에 들이닥친 박정희(맨오른쪽)와 유원식(가운데)의 ‘계엄령 승인 압박’을 대통령 윤보선이 받아들이는 순간 “거룩한 4·19 정신이 무너지다니…” 한탄하며 밖으로 나간다.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1961년 5월16일 국방장관 현석호(변희봉)는 청와대 접견실에 들이닥친 박정희(맨오른쪽)와 유원식(가운데)의 ‘계엄령 승인 압박’을 대통령 윤보선이 받아들이는 순간 “거룩한 4·19 정신이 무너지다니…” 한탄하며 밖으로 나간다. 문화방송 제공
■ 현석호의 증언

5·16 당일 새벽 2시30분에 장도영의 전화를 받고, 3시에 시청 당도, 3시30분 반도호텔 총리 집무실 도착, 장면(김무생) 총리는 안절부절 장도영 총장을 기다리고, 그때 이태희(신충식) 검찰총장의 내방, 이어 장도영 총장 전화. “한강을 넘었다고 합니다. 일단 피하시는 게….” “내가 왜 피하나? 뭘 잘못했기에 피하나….” 전화는 끊기고, 이태희 검찰총장에게 끌려 나설 때, 현석호 국방장관과 마주친다. 장면이 계단을 내려설 때 안경이 벗겨지고, 안경은 밟히고, 이후 반도호텔 앞 미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나 닫혀 있고, 중학동 미군 숙소도 닫혔고, 이화동 갈멜(카르멜) 수녀원에 찾아 들어간다.

청와대 접견실에서 박정희를 처음 보는 현석호 국방장관. “당신이 반란군 주모자요?” “반란이 아니고 혁명입니다. 역사와 국민을 위해 나섰습니다.” 이때 윤보선 들어서며 “올 것이 왔구먼.” 현석호는 놀란다.

윤보선: “그래, 무슨 일로 왔소?” 현석호 국방장관과 장도영 육참총장에게 묻는다.

장도영: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각하의 지시를 받으러… 수습책을 강구하러….”

박정희: “각하! 저희 애국 충정을… 각하를 절대 존경하며, 앞으로 충성을 다해….”

윤보선: “민주당 정권이 무능하여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애국 충정을 이해하오.”

박정희: “감사합니다. 거사를 인정해주시고, 비상계엄을 추인해주시어….”

현석호: “거사를 추인하다니? 국방장관도 모르는 계엄령을… 각하! 민주당 정부는 거룩한 4·19,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국민들의 성원으로 이뤄진… 군부에 의해서 타도될 만큼 과실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윤보선: “데모, 데모, 김일성까지 부르는 데모,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해서 내가 정권을 양도해야 할 지경에….”

현석호: “데모가 많은 것은 장기독재의 반사작용으로 봐야 하고, 지금 각성하고 있고… 내각책임제의 특성상, 말은 많은 것이고… 불법적인 군부반란은 인정할 수 없고….”

박정희: “각하! 현 장관의 훈계나 받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현석호: “무슨 근거로 추인한단 말이오!”

박정희: “지금 혁명 중이란 걸 모르시오?”

현석호: “4·19의 거룩한 희생이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께서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오!”

윤보선: “계엄령에 대해서는 이미 선포를 했다니… 국무회의를 열어 합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고… 나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겠소.”

현석호 국방장관은 ‘인조반정’ 운운하는 박정희와 윤보선의 소리를 뒤로하고 접견실을 빠져나와 청와대 현관을 나선다. 그때 두대의 군용 지프가 현석호를 압송한다. 현석호는 되뇐다. “거룩한 4·19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거룩한 4·19가….”

<제2공화국>은 4·19의 희생으로 세워졌다. 12년의 독재정치, 3·15 부정선거, 4·19 의거, 이승만의 하야, 허정의 과도정부, 7·29 선거, 민주당의 압승으로 새롭게 내각책임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신·구파 대립의 연속이었다. 그즈음 군부에서 ‘16인 하극상 사건’이 터진다. 육사 8기가 중심이 되어 당시 군부의 최고 자리에 있는 최영희 중장을 비롯한 기존 장군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정군운동’, 그 핵심은 인사 적체. 이 사건에는 박정희도 연루된다. 하우스먼 고문이 김형일 장군에게 박정희의 전역을 종용하면서 박정희는 위기를 느낀다. 이때 정군파 김종필은 예편당한다.

‘16인 하극상 사건’은 외관상 일단락된 듯했지만 암적인 정치장교들의 불만 요인은 더욱 강렬하게 내연하고 있었다. 육사 8기생 9명은 혁명적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하기로 결의한다. 이것이 ‘충무장 결의’로 5·16 군사쿠데타의 첫 결의였다. 김종필, 김형욱, 오치성, 김동환, 길재호, 옥창호, 신윤창. 이들은 두달 뒤인 11월6일 신당동 박정희 소장의 집에서 2차 회합을 한다. 그리고 쿠데타 모의가 계속된다. 다 그렸다. <제2공화국>은 장면 정권의 실정과 정군파의 모의가 정교하게 교차되는 드라마다.

드라마 <제2공화국>은 1960년 4·19혁명의 염원을 안고 탄생한 민주당 정권이 신·구파의 대립 속에 정쟁에 몰두하는 상황을 그렸다. 내각책임제의 수반 장면 국무총리(김무생)는 61년 5·16 쿠데타 보고에 주한 미대사관 등을 전전하다 갈멜수녀원으로 피신한다.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 <제2공화국>은 1960년 4·19혁명의 염원을 안고 탄생한 민주당 정권이 신·구파의 대립 속에 정쟁에 몰두하는 상황을 그렸다. 내각책임제의 수반 장면 국무총리(김무생)는 61년 5·16 쿠데타 보고에 주한 미대사관 등을 전전하다 갈멜수녀원으로 피신한다.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 <제1공화국>이 끝난 지 8년 된 1989년, 정치드라마의 대가 김기팔이 <제2공화국> 기획에서 제외되었다. 최창봉 사장이 <문화방송>에 진입한 후, 최상의 선택지로 모두들 김 작가를 예상했었다. 두 사람의 긴 인연이 말해준다. 그런데 지금 공유하지 않는 이유가 무언가? 외압인가? 보신인가? 내부 토호의 조직적 봉쇄인가?

제2공화국>은 주요 배역들의 열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1979년 기독교 신앙에 심취해 은퇴했던 고은아가 10년 만에 복귀해 육영수 역을 맡았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제2공화국>은 주요 배역들의 열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1979년 기독교 신앙에 심취해 은퇴했던 고은아가 10년 만에 복귀해 육영수 역을 맡았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제2공화국>은 이상현 작가의 대중성이 빛난 작품이다. 이 작가는 쿠데타 하듯 정교하게 시기를 포착하였고, 탁월한 균형감으로 드라마를 이끌었다. 이진수, 고은아, 이순재, 김무생의 연기는 눈부셨다. 기흥성의 미니어처로 시작한 이 땅의 정치요새는 백일하에 드러났고, 패기 넘치게 드라마가 진행되었다.

균형이라는 미명하에 절대악의 변명이 여과 없이 표출되었고, 시청자들은 비사의 폭로에 아무런 비판 없이 호응하였다. 그날의 시청 욕구, 시청 감각은 이러한 대중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특정 사학자의 역사 독점에서 역사 공유로, 학계에서 시민사회로 ‘역사 소비’ ‘역사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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