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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특종보도된 ‘이근안 드라마’ 불발에 사표 내고 망월동으로”

등록 2018-11-10 10:00수정 2018-11-10 15:04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43회) ‘6·25 특집극-현악 6중주’
1995년 3월 고석만 연출은 김상열 작가와 손잡고 6·25 특집극 <현악 6중주>를 기획했으나 치안본부 등 안팎의 방해작전으로 제작이 무산됐다. ‘전직 대공수사관의 숨겨진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는 <한겨레>에 ‘수배 중인 고문기술자 이근안 소재 드라마’로 단독 보도됐다.
1995년 3월 고석만 연출은 김상열 작가와 손잡고 6·25 특집극 <현악 6중주>를 기획했으나 치안본부 등 안팎의 방해작전으로 제작이 무산됐다. ‘전직 대공수사관의 숨겨진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는 <한겨레>에 ‘수배 중인 고문기술자 이근안 소재 드라마’로 단독 보도됐다.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95년 3월15일, <한겨레> 방송연예면에는 머리기사로 ‘고문기술자 드라마 만든다’(김도형 기자) 제목 아래 이근안과 고석만의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수배 중인 전직 대공수사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마치 현재 7년째 도피 중인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을 설정한 것처럼 비쳐지는 이 드라마는 문화방송에서 6·25 특집극으로 기획 중이다. … <제3공화국>과 <땅>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을 만든 고석만 프로듀서가 제작중인 6·25 특집 60분짜리 2부작 <현악 6중주>(극본 김상열)는 수배 중인 전직 대공수사관 유철주라는 인물의 궤적에 초점을 맞춘다. 현실에서 이근안 경감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이 묘연하지만 드라마 속의 유철주는 천형의 땅 르완다에 있다. 르완다와 자이르의 접경지대인 키붐바 난민촌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콜레라에 걸려 탈수 증세를 보이는 58살의 한국인. 한때 사명감에 불타 빨갱이를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정권안보 지상주의자가 이제는 쫓기는 몸이 되어 아프리카의 르완다라는 지구의 끝으로 흘러들어 왔다.’

기사는 이어진다. ‘마지막 남은 생을 정리하기 위해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르완다로 몸을 피해 온 그는 한국인 의료봉사대원 준식과 르완다의 현장을 취재 중인 파리특파원 노 기자의 눈에 띈다. 여권을 불태우는 등 신분을 철저히 감추지만 결국 정체가 탄로난 그는 마침내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여기에 그의 행적을 쫓는 두 사람의 여자가 등장한다. 어둠의 시대에 운동권 아들을 잃은 민가협 어머니 박 여사와 유철주의 딸 미란이다. 서울~파리~르완다를 잇는 이들의 만남과 고통·회한·속죄 속에 전직 대공수사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한다.’(캐스팅을 한다면, 전직 대공수사관에는 최불암, 미란 역에 황신혜를 떠올렸다. 최불암과 황신혜.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조합이다.) ‘고 프로듀서는 “좌와 우의 대립 등 대결구조를 극복하고 조화의 시대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면서 “민족분쟁 현장인 르완다를 통해 6·25 전쟁의 의미를 반추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 말미에는 기대와 우려도 덧붙였다. ‘이 드라마는 이근안을 연상시키는 전직 대공수사관이라는 파격적인 인물 설정뿐 아니라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최초의 아프리카 현지촬영, 대사가 한마디도 없는 주인공 등 풍성한 화젯거리도 제공할 예정이다. 거기다 고석만이라는 이름값도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수배중인 전직 대공수사관과 르완다라는 드라마의 두 기둥이 서로 성기지 않고 어울려 소화될지 주목된다. 또 6·25 특집극이라는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념의 허망함을 드라마 속에서 충분히 표현해낼 수 있도록 방송사 안팎의 여건이 보장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드라마 <현악6중주>의 소재로 삼았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도피 10년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28일 자수해 7년형을 살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드라마 <현악6중주>의 소재로 삼았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도피 10년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28일 자수해 7년형을 살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5년 무산된 드라마 <현악 6중주>에서 고석만 연출은 애초 ‘대사 한마디 없이 침묵하는 전직 대공수사관’으로 최불암을 설정했다. 사진은 95년 문화방송 드라마 <여>에 출연한 모습이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1995년 무산된 드라마 <현악 6중주>에서 고석만 연출은 애초 ‘대사 한마디 없이 침묵하는 전직 대공수사관’으로 최불암을 설정했다. 사진은 95년 문화방송 드라마 <여>에 출연한 모습이다. ‘엠비시 가이드’ 제공

1995년 무산된 드라마 <현악6중주>에서 주인공인 ‘전직 대공수사관’의 딸로는 탤런트 황신혜가 캐스팅 후보였다. 사진은 95년 서울방송 드라마 <해빙>으로 복귀할 무렵. <한겨레> 자료사진
1995년 무산된 드라마 <현악6중주>에서 주인공인 ‘전직 대공수사관’의 딸로는 탤런트 황신혜가 캐스팅 후보였다. 사진은 95년 서울방송 드라마 <해빙>으로 복귀할 무렵.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의 특종기사는 바람을 타고 도하 신문에 넓고 강하게 퍼져갔다. <한국일보>(이대현 기자), <문화일보>(신민형 기자), <중앙일보>(이후남 기자), <동아일보>(신연수 기자), <서울신문>(박양수 기자), <일간스포츠>(이미연 기자) 등등 거의 모든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했다. 그에 발맞추듯 관련 기관의 관심은 문화방송 수뇌부를 괴롭혔다.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곳은 물론 이근안의 출신 부서인 치안본부다. 제작본부장실에서 <현악 6중주>의 기획안을 복사해 갔다. 이 기획안은 곧장 치안본부장실에 팩스로 송부되었고, 이 사실이 문화방송 노조에 의해 발각되었다. 제작본부장과 치안본부장의 학연과 친분관계가 알려졌다. ‘불편하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제작본부장에 대한 노조의 항의는 엄중했고, 이로써 이 ‘사건’은 시한폭탄처럼 내던져진 채 잠수했다. <한겨레>의 우려는 ‘비밀공작’처럼 수면 아래서 진행될 것이다.

실내악 ‘현악 6중주’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 2대씩 모두 6대의 악기로 구성된다. 김상열 작가가 <현악 6중주>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실제로 6개의 시추에이션으로 구성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앙상블’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을 것이다. ‘현악 6중주’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이 널리 알려져 있다. 브람스 실내악의 본령이라 할 것이다. 제1악장은 교향곡풍이다. 1865년 꽃다운 나이의 두 여인을 위한 사랑의 곡이다. 민요풍이며 감성적인 ‘길고 센티멘털한’ 작품이다. 두 여인을 주제로 쓰고 싶었다고 전해지는 ‘4악장’은 드라마틱한 론도와 행진곡풍으로 경쾌하다. 하이든을 떠올리게 한다. 제1악장은 종반으로 치달으며 현란하고 절정 감동을 일으킨다. “아! 이런 브람스라니?” 감탄하게 한다. 훗날 사람들이 ‘브람스의 눈물’이라고 별칭을 지어준 부분, 12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4악장도 압권이다. 그중에 마지막 3분을 드라마의 주제로 정했다. 이 향기가 드라마로 전해진다면 좋으련만….

<한겨레>는 1988년 12월21일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 경기도경 공안실장 이근안씨’를 처음 밝혀내 사진과 함께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는 1988년 12월21일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 경기도경 공안실장 이근안씨’를 처음 밝혀내 사진과 함께 단독 보도했다.

고문경찰 이근안 현상수배 전단. 1989년 2월18일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해 전국에 뿌렸다.
고문경찰 이근안 현상수배 전단. 1989년 2월18일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해 전국에 뿌렸다.
<현악 6중주>의 작품 분석에 들어갔다. ‘지금, 여기서, 왜? 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다음이 균형추 구실을 충실히 했는가 냉정하게 분석한다. ‘천형의 땅, 르완다’의 설정이 가장 중요했다. 우리와 가장 흡사한 동족상잔, 이념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르완다 난민의 신산한 삶 속엔 이념 갈등의 피비린내가 묻어난다. 르완다를 설정한 것이 단순 호기심 차원인가. 아니면 소재주의인가. 즉 ‘신뢰 콘텐츠’의 요건을 갖추었는가 냉철하게 들여다보았다. 6·25 특집으로서 주제의 문제는 합격점을 크게 웃돌았다. 다음은 시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제공해야 할 정보나 궁금증의 해결이다. 그 으뜸은 ‘85년 김근태’와 ‘87년 박종철’ ‘90년 유숙렬’ 등 그때의 희생양들과 ‘고문기술자’의 관련성이다. 이제 그때의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디테일까지 폭로되어야 한다. ‘고문기술자’는 시대를 응축하고 있다. <현악 6중주>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에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나아가 속죄·용서·화해에 이르는 미래제시형이다. 탄탄한 드라마투르기(연출작법)를 갖추고 있다.

1995년 3월 15일 ‘한겨레’ 단독 보도
“수배중 대공수사관 이근안 소재 기획”
김상열 작가 ‘동족분쟁 르완다 배경’

‘현악6중주 기획안’ 치안본부 전송
제작본부장-치안본부장 친분관계
문화방송노동조합 “엄중 항의” 불구
군사작전하듯 ‘물밑 봉쇄작전’ 착착

예산부서 ‘르완다 현지촬영비’ 삭감에
코미디언 출신 사업가 “항공권 협찬”
탤런트실 ‘노 개런티 출연’ 결의하기도

‘비리 사건’ 수배 피디들 돌연 승진
“더 이상 문화방송이 아니다” 선언

수면하의 시한폭탄은 재깍거리며 돌고 있다. 6·25 특집극 예산이 이미 기획안 결재 때 책정되어 있는데, 예산 부서에서 재조정하자고 연락이 왔다. 긴 시간 논의 끝에 국외 촬영 예산 삭감을 들고나왔다. 맥을 끊는다. 항의하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막무가내다. 이미 드라마국 데스크와 사전협의가 끝난 상태로 보였다. 차츰 시한폭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산 부서와 논의하는 중 ‘올해의 드라마 라인업’을 보게 되었다. 6·25 특집극이 끝난 이후 모든 프로그램이 연성화되고 있었다. 한구석 맑은 물이 고일 자리조차 없어지고 있다. 진골· 성골들만 편성되는 방송권력 재편 신호가 켜졌다. 권력의 집중화에서 권력의 조직화로 변형되고 있었다. 압력 형태도 ‘진화’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명 혹은 직계 라인에서 악역을 맡아 압박하고 처리하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구조적 박해를 가해 오고 있다. 비드라마 출신이 드라마를 통제하며 작품 이해도가 현격히 떨어지고, 상명하달의 단계적 간부회의가 조직화되고, 통제체제로 전환되었다. 군사작전하듯, 도사리고 있던 전술들이 속출했다. 무섭다. 그러나 현실이다. 이대로 간다면 방송사 내부의 권력도 외부 권력으로 옮겨갈 것이 뻔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치안본부의 물밑 봉쇄작전이 이뤄진 걸까? 캐스팅과 스태프 조직이 멈춰 섰다. 편성 다음의 일정이 올스톱 되었다. ‘알아서 긴 것인가?’

문화방송 코미디언 7기 출신으로 사업가로 변신한 이규혁은 1995년 <현악6중주>의 예산 삭감으로 고심하던 고석만 연출에게 르완다 현지촬영을 위한 항공권 협찬을 제안했다. 사진은 코미디언 시절 광고에 출현한 이규혁. <한겨레> 자료사진
문화방송 코미디언 7기 출신으로 사업가로 변신한 이규혁은 1995년 <현악6중주>의 예산 삭감으로 고심하던 고석만 연출에게 르완다 현지촬영을 위한 항공권 협찬을 제안했다. 사진은 코미디언 시절 광고에 출현한 이규혁. <한겨레> 자료사진
문제가 된 국외 경비는 기본예산 내에서 해결하기로 작심하고, 항공사 협찬에 나섰다. 대한항공 홍보부 실무자와 협의했다. 캐스팅이 확정되는 대로 인기 탤런트의 직간접 홍보로, 서울~파리 왕복 항공권은 해결이 되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르완다 왕복편은 어렵다. 대한항공 직항노선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쪽에서는 ‘특단의 고공 플레이면 가능하다’는 귀띔을 해주었다. 마지막 카드로 예비하고 협상을 멈췄다.

그즈음 협찬사가 찾아 들어왔다. 아프리카 항공권을 전량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문화방송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이규혁과 진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현악 6중주> 1부에 2번, 2부에 2번, 간접광고 노출을 제시했다. 극본을 샅샅이 검토한 뒤 노출 포인트를 정확하게 제시하는데, 숨막히게 무더운 아프리카에서 주인공 뒤로 노출되는 간접광고가 그것이다. ‘카나다 생수’ 간판. 그다음은 생수를 마시는 장면의 삽입을 요구했다.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보았다. 방송위원회에 문의했다. 그런데 문의도 하기 전에 이미 내부회의에서 불가 판정을 내린 뒤였다.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정지 마크’가 서 있었다. 심지어 홍보 라인도 서 버렸다. 시한폭탄은 물밑 어디를 헤매나? 신문이나 노조나 사건만 터트려 놓고 후속취재가 없다. 절박함과 절박함이 충돌할 때 ‘을’은 비장하고 냉철해질 수밖에 없다.

그때 실로 감동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탤런트실 간사 정태섭을 중심으로 후배들이 <현악 6중주> 노 개런티 출연을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다만, 자신들은 힘없는 조연 단역급이니, 주연급이 확정되고 흔쾌히 자신들의 뜻에 동참하면 일부 자비를 들여서라도 아프리카 촬영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맙다. 마지막 보루다.

1995년 1~2월 이른바 ‘피디 비리 사건’으로 방송연예계는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돼 잠적했던 문화방송 간부급 피디 가운데 일부는 3월 복귀해 돌연 승진했다. 95년 1월25일치 <한겨레> 보도 기사.
1995년 1~2월 이른바 ‘피디 비리 사건’으로 방송연예계는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돼 잠적했던 문화방송 간부급 피디 가운데 일부는 3월 복귀해 돌연 승진했다. 95년 1월25일치 <한겨레> 보도 기사.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재구성해보면, 그제서야 좀 떨어져 볼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충전되는 것이다. 앞서 그해 1월부터 ‘방송연예계 비리 사건’이 터졌다. 방송가에 태풍처럼 몰려왔다. 근래 보기 드문 광풍이었다. 예능 부서는 이미 초토화되었고, 드라마 쪽도 2명의 프로듀서가 잠적했다. 이른바 ‘피디 비리 사건’은 기획작품, 표적수사란 풍문이 돌았지만 담당 검사의 책상 위엔 투서가 쌓여 있다고 했다. 방송사 로비에 낯선 사람들이 오갔다. 형사들이다. 도망자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런 상황이 보름 가까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 그 사람들이 바람처럼 없어지고 이틀 뒤 도망갔던 프로듀서 2명이 겸연쩍은 얼굴로 출근했다. 많은 동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때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다음날 2명을 필두로 몇명의 정기 승진 인사가 이루어졌다. 드라마 국장에게 항의했다. “범법자로 지목되어 수배된 사람에게 승진 인사가 무엇인가? 원칙을 제시하라!” 국장은 계속 자리를 피했다. 조직이 비겁해졌다. 더 이상 ‘문화방송’이 아니다.

그 다음날 아침 국장실 회의 때 사표를 제출했다. 1995년 3월29일. 잠수하고 있던 시한폭탄은 수면 위로 급부상하더니 이내 폭발해 버렸다. <현악 6중주>도 공중분해되어 버렸다. 간부들은 ‘문제 연출자가 스스로 자폭하길 기다렸다’는 분위기다. 다만 입사한 지 오래지 않은 후배 피디 한명은 얼굴을 처박고 울고 있었다. 책상을 정리하니 라면 상자 2개가 좀 넘었다. 22년을 220년처럼 보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일했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 라면 상자 맨 위에 <현악 6중주> 대본이 놓여 있다. 조용히 그 대본을 빈 책상 위에 놓고 나왔다. “순수했으므로 절망해야 했던, 한때의 젊은이들과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바친다.”

1995년 3월29일 문화방송에 사표를 낸 고석만 연출의 프리랜서 선언은 이튿날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1995년 3월29일 문화방송에 사표를 낸 고석만 연출의 프리랜서 선언은 이튿날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졌다.
방송사 현관에서 만난 김도형 기자와 양성희 기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반겼다. 순간 ‘지금의 결심’을 기정사실화하기로 했다. “드디어 광야의 한 마리 늑대가 되셨군요.” 크게 놀란 김 기자는 며칠 뒤 <한겨레>에 기사화했다. 조간을 보고 첫 전화를 해온 사람은 김상열 작가다. “우리 극단에 오시어 쉬세요. 자리 하나 마련해 놓을 게요. 우리 멈추지 말아요.” 그날 받은 어느 전화보다 고마웠다.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 타고르의 말이 떠올랐다. 변산의 산소를 찾았다. 어머니께 큰절하고 내려오는 길의 저 장엄한 서해 노을을 잊을 수 없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문득 ‘광주 망월동으로 가주세요’ 했다. 왜 망월동을 찾아 나섰는지 모르겠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첨병’, 목숨을 걸지 않는 첨병은 없다. ‘길을 찾아서―첨병’은 내 여정의 기록이자 내부고발이며 한 전문가로서 전하는 제안이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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