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개그우먼 3인의 인생역정
개그우먼 3인의 인생역정
오늘 빛나는 이들에게도 깊은 좌절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개그맨 공채시험에서 8번 낙방의 쓴맛을 맛본 이영자(왼쪽부터), 오랜 무명 생활을 보내며 온라인 게임에 빠져 폐인처럼 살았던 김숙, 어려움 속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굿까지 벌였던 박나래는 자신들의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방송 제공
“나는 너무 많이 좌절했어” 오랜 무명생활의 설움 삭이며
김숙은 온라인게임 폐인 생활 라면수프조차 고마웠던 생활고
박나래 “굿이라도 해야만 했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거절과 좌절을 경험하면 누구라도 무릎이 조금은 꺾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시간이 길어지면 그늘도 따라서 깊어진다. 이영자와 함께 <밥블레스유>와 제이티비시(JTBC) <랜선라이프>를 진행 중인 김숙이 그랬다. 활동 24년 중 20년을 무명으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다소 과장이지만, 1995년 데뷔 이후 8년간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폐인처럼 살았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국방송 <대화의 희열> 첫 회 게스트로 나왔던 김숙은, 그 시절을 회고하던 대목에선 치밀어 오르는 감정 탓에 평소와는 다르게 뚝뚝 끊긴 어순으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다 나를 괄시했어. 자르고, 무시하고…. 저는 잘렸어요, 다, 방송을. 그 프로그램에서, 저만. 다른 멤버들은 그대로 있고.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조금 떨어져서 힘들다. 그러니까 네가 나가라.’ 내가 시청률에 뭘 그렇게 큰…. 엠시가 바뀌어야지, 엠시가 재미없어서 그런 건데!” 집에 컴퓨터를 4대 설치하고 온라인 게임을 카드 돌려 막듯 몇 개씩 돌려가며 하는 것으로 울분을 삭이던 시절, 그의 삶은 내일이 없어서 흐르지도 않았다. “그때는 삶이 하루하루가 아니고 36시간 정도가 하루예요. 7시간 자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12시간 자고 일어나고, 밤에 일어나서 아침까지 쭉 (게임)하고 돌다가 오후 5시에 잠들 때도 있고. (중략)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 반이 지나가 있어요.” 그 시절의 그가,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상에 빛나는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오늘의 좌절이 깊으면 빛나는 내일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눈앞의 좌절 넘어 내일을 상상하는 힘 굿이라도 할까요. 좌절이 너무 깊으면 가끔 사람들은 허튼 희망에 매달린다. 아무리 쥐어짜도 수중에 돈이 없어 20만~30만원으로 한달을 버티던 시절의 박나래가 그랬다. 식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라면은 분말수프만 넣어 끓여 먹고 건조 야채를 모아 물에 불려 야채볶음밥을 해먹던 시절, 그는 친하게 지내던 ‘무속인 언니’의 추천으로 없는 돈을 모아 굿을 벌였다. 제일 싼 굿이 54만원인데, 그마저도 다 낼 형편이 안 돼 ‘연예인 할인’으로 반값을 내고 굿을 할 때 그는 무슨 심경이었을까? 반값이어도 27만원이면 그 시절 그의 한달 생활비에 육박했을 텐데. 2015년 에스비에스(SBS) <힐링캠프 500인>에 출연해 굿을 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박나래는 “굿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 말했다. 굿을 한다고 뭔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당장 한달 생활비를 다 투자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마음이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와중에 언니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꿈에 할머니가 나왔는데 ‘나래가 잘 안될 것 같으니 돈 돌려줘라’고 했다”고 말했을 때, 박나래는 지금의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조사한 예능방송인 브랜드 평판지수에서 2개월 연속으로 유재석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오늘의 자신을? 모두가 다 잘될 것이니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살자는 순진해 빠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가슴에 화살을 잔뜩 꽂고 걷다 보면, 자신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눈앞의 좌절뿐이라는 착각 때문에 내일을 상상할 힘을 잃어버리기 쉽다. 여덟번 낙방했던 이영자가, 시청률을 핑계로 프로그램에서 잘리고 노골적인 따돌림을 당하던 김숙이, 한달 생활비를 다 털어서 굿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었던 시절의 박나래가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수능이 끝난 뒤 가슴에 빼곡하게 화살을 꽂은 채 교문을 나서던 수험생들을 보며 쓰기 시작했다. 깊은 새벽 말을 걸어왔던 ㅌ에게, 위로 같은 위로를 해주지 못한 ㅁ과 ㅅ, ㅇ, ㅈ에게,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이 변변찮은 글로 대신 위로를 전한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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