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이 로마시대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 방송 화면 갈무리
라디오나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일이 야금야금 늘어나다 보니, 가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받는 일이 생긴다. 분명 나는 티브이 비평으로 데뷔해 계속 그쪽으로 글을 써왔는데, 내게 티브이 말고 다른 영역까지 커버해줄 수 있는지 묻는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 것이다. “평론가님, 혹시 연극이나 뮤지컬도 자주 보시나요? 그런 것들도 함께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평론가님, 전시회나 콘서트 같은 건 좀 다니세요?”, “화제가 되는 유튜브 콘텐츠나 웹툰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실외 액티비티 같은 건 많이 안 즐기시나요? 서핑이라거나….” 다른 분야에는 엄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존재할 텐데, 자꾸 내가 수락할 수 없는 제안들이 쌓인다.
이유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입장에선 어느 정도의 전달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썰’을 그럴싸하게 풀어줄 만한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줄 만한 전문가를 발굴하고 섭외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생각했을 때 나름대로 인접한 분야다 싶으면, 일단 자신들이 확보한 인재 풀 안에서 커버가 되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티브이를 다루고 영화도 다루는 사람이면, 자신들이 생각하기로는 인접한 분야니까 연극도 다루고 뮤지컬도 다룰 수 있는지 쓱 물어보는 거겠지.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이슈에 대해 전문가인 척 이야기를 하는 방송인들이 늘어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조금씩 넓게 아우르며 ‘썰’을 풀 수 있는 사람들이 팟캐스트를 지나 유튜브를 거쳐 티브이 ‘지식 예능’이나 ‘교양 예능’에 진출해 자신도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들려주며 명성을 얻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 사람이 해당 분야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깊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기 다른 분야의 지식들을 꿰어서 얼마나 흡인력 있게 ‘썰’을 풀어내느냐가 관건이 됐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각 방송사들이 발굴해낸 ‘르네상스적 인간’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서양미술사와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적 계보와 한국문학사를 모두 논할 수 있는’ 지식소매상들이 넘쳐난다.
최근 <티브이엔>(tvN)이 새롭게 선보인 역사 예능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는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크고 작은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나치 독일과 아돌프 히틀러를 다룬 첫 화에서는 이미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거푸 부정된 바 있는 ‘인간 비누’(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시신에서 긁어낸 지방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설) 이야기부터 시작해, 가스실 처형조차 충분히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나치가 ‘이동식 가스실’인 가스바겐을 만들었다며 전후 관계를 거꾸로 설명하는 오류를 범했다. 나치 독일을 움직인 광기와 그들이 지은 역사적 죄악을 진지하게 설명할 생각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듣는 이들의 관심을 잡아 둘 생각이 앞서지 않았더라면 나올 수 없는 실수였다.
첫 화의 오류가 2화에는 바로잡혔을까? 불행히도 방향은 수정되지 않았고 오류는 더 심각해졌다. 예고편부터 ‘막장’이란 단어를 강조했던 ‘이집트 편’은 온갖 부정확한 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가십들로 가득했다. 설민석은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의 대립 과정을 ‘오랜 시간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생긴 대립관계 정도로 납작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카이사르가 파르나케스를 젤라 전투에서 이긴 뒤 남긴 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돌아와 한 말이라고 잘못 설명하고, 당대의 이집트 지도를 잘못 그리는 등의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방영시간 내내 반복했다.
역사 왜곡이라는 논란이 커지자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쪽은 “4~5시간 녹화한 결과물을 방송 시간 85분에 맞춰 몰입도 있는 이야기를 선사하기 위해 압축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었지만 개연성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송출”한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설민석 또한 “어차피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저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양쪽이 서로 ‘오로지 내 탓이고 상대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광경은 일견 아름다우나, 불행히도 양쪽 다 틀렸다. 잘못은 양쪽 모두에 있다.
설민석이 오류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설민석은 자신의 주된 전공 분야인 한국사 영역에서도 종종 사실관계가 잘못된 강의를 선보여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다. 듣는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적인 내러티브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디테일들을 무시하는 일이 잦았고,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 당시 태화관에 모여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표현들을 사용해 사실관계를 납작하게 눌러 이야기를 한 끝에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전공 분야인 한국사 영역에서도 이처럼 크고 작은 논란을 빚었던 이가, 방송에서 자신의 영역이 아닌 세계사를 강의하겠다고 나선 순간부터 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던 셈이다.
설령 한국사 영역에서 아무 논란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세계사 영역까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런데 티브이엔은 ‘역사’를 극적인 내러티브로 재구성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능과 스타 파워를 기대하며 설민석을 주전공 분야도 아닌 세계사에 ‘히스토리 투어 안내자’ 역으로 섭외했다. 새로운 사람을 발굴해내는 건 품이 많이 들고, 이미 확보한 사람의 ‘썰 푸는 재능’을 한껏 활용은 하고 싶으니, 상대가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는지 아닌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일단 강의를 맡긴 셈이다. 내게 뜬금없이 “티브이 드라마도 리뷰하시니까, 연극 쪽에도 조예가 깊으신가요?”라고 묻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검증 없이 사람을 섭외한 제작진이나, 섭외가 왔다고 덥석 받은 사람이나.
설민석과 프로그램 제작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사실관계에 다소간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그 공로를 지울 수는 없다”는 말을 한다. 물론 역사 속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면에 배치하는 접근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들이 종종 사실관계와는 다른 해석을 선보여도 사람들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역사에 관심을 키우면서 직접 공부를 하다 보면, 픽션이 담고 있던 각종 역사적 오류들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픽션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를 초빙해 그가 제공하는 ‘지식’을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로 활용하는 지식 예능의 경우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지식 예능은 어렵고 방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는 기대치가 그 핵심이며, 그렇기에 강사가 하는 말에 사실관계가 잘못된 픽션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걸러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식 예능을 보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다. 얼핏 강사의 지식이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담보해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프로그램의 문법이 강사의 권위를 인증해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증받은 권위의 힘을 빌려 유통된 낭설이나 가짜 지식은 좀처럼 쉽게 정정되지 않는다.
그런 지식 예능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실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을 세웠다는 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최우선 순위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흥미’라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 속 비화를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게 우선이라면, 문화방송 <신비한 티브이 서프라이즈>를 보는 쪽이 더 빠르지 않겠나? ‘썰’을 잘 푸는 사람에게 자꾸 필요 이상의 지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송가의 게으름을,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됐다.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