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9코스 등대 부근을 올레꾼들이 걷고 있다. 제주올레 제공
‘제주올레 길 가운데 어떤 코스가 가장 좋은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제주올레 길 26개 코스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기에 어떤 코스가 제일 멋지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제주올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을 위해 제주올레 특성이 잘 녹아 있는 코스 세 곳을 추천한다.
제주 고유 풍광을 압축해서 만나고 싶은 이라면 시흥초등학교 입구에서 출발하는 제주올레 1코스를 걸어보라. 제주 시골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으로 시작해 중산간과 바다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말미오름과 알오름 그리고 성산일출봉을 보며 걷는 해안길이 일품이다. 시작점에서 이어지는 농로 양옆에서는 철마다 당근과 무, 감자 등이 자라는데, 당근 수확 철에는 인사만 잘해도 맘 좋은 지역민들이 맛보라며 당근을 선뜻 내주곤 한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에서는 제주의 야생화를 계절별로 만날 수 있고, 방목중인 소와 말 그리고 운 좋은 날에는 노루도 만날 수 있다. 썰물 때면 넓은 평야처럼 펼쳐지는 암반지대를 품은 광치기 해변을 따라 걷는 코스 후반부도 제주올레 1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제주올레 1코스를 여행할 때 빼놓지 않고 맛봐야 할 음식이 있다. 이 지역 바다에서 캐낸 조개로 마을 해녀들이 끓여 파는 조개죽과 이 지역 주요 재배 작물인 당근으로 만든 당근주스는 입으로 경험하는 제주의 맛이다.
사람들이 제주올레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문명과 원시 자연을, 문화와 자연을, 현재와 역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는 등산 코스나 땅이 넓어 가도 가도 끝없이 비슷한 자연풍광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대륙의 트레일과 달리, 제주올레 길은 수시로 풍광이 바뀐다. 특히 자연 중심의 트레일과 달리 지역민이 사는 마을로 드나드는 제주올레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에 따라 매번 다른 풍광을 연출해 낸다. 서귀포 도심을 통과하는 제주올레 6코스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연출하는 변화무쌍함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코스 초반 해안과 한적한 숲길에서는 원시 제주 자연을 만나는가 싶다가,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왁자지껄한 사람 냄새가 길을 덮는다. 제주를 사랑했던 화가, 서예가, 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문화의 거리와 이 시대 제주인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까지. 6코스는 제지기 오름 구간을 제외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만만한 코스여서 제주올레 초보자들이 가장 먼저 걷는 코스이기도 하다. 6코스 여행 때는 계절에 따라 자리돔, 고등어, 갈치, 한치 등 제주 바다 음식이나 제주 돼지고기 요리를 먹어보면 좋다.
제주도는 섬 한가운데 높이 솟은 한라산 덕에 동서남북의 자연환경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제주 남쪽 서귀포 일대의 풍광이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여성미를 풍긴다면, 제주 북쪽 제주시 일대 풍광은 남성미가 압도한다. 북쪽에 위치한 제주올레 19코스 역시 1코스처럼 바다와 오름, 곶자왈, 마을, 밭 등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담았지만, 서귀포와 달리 장대한 풍광에 압도된다. 19코스 초반에 만나는 관곶은 파도가 거세 지나가던 배가 뒤집어질 정도였다고 하니, 서귀포의 여성스런 바다와는 느낌이 다르다.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을 자랑하는 함덕 해안과 그를 둘러싼 서우봉이 연출하는 시원한 풍광과 제주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원시림 곶자왈로 이어지는 후반부 길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제주올레 19코스는 풍광도 훌륭하지만, 코스 곳곳에 제주인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제주 역사가 녹아 있어 더 의미가 있다. 출발지인 조천 만세동산은 제주의 3대 항일운동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강력한 저항정신을 보여주었던 조천 지식인들의 만세운동을, 코스 중반부에서 만나는 마을 북촌리는 4·3이라는 제주의 아픈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4·3 당시 북촌리 주민의 3분의 2가 학살을 당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이곳 마을 어귀에는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19코스를 여행할 때는 이 지역 콩을 이용한 두부요리나 바다에서 잡은 소라, 문어를 이용한 요리 등을 맛보면 좋다.
제주올레는 코스마다 다른 매력이 있지만, 똑같은 코스라 해도 어느 계절에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준다.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만만한 길이기도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히 공부를 하고 걸으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제주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에서 미리 정보를 얻고, 제주에 도착한 뒤에는 제주공항 1층의 제주올레 공항안내소, 제주시 도심의 간세라운지, 서귀포 도심의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등에서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제주올레 콜센터 (064)762-2190. 안은주 제주올레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