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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감귤창고가 갤러리로, 고구마공장이 카페로

등록 2017-02-17 09:13수정 2017-02-17 09:27

[제주&] 전통가옥 리모델링한 명소들

앤트러사이트
방치된 고구마 전분공장 재활용
현무암 벽·바닥 옛 모습 그대로 보존
자연과 공존해온 제주의 지혜 담아
1950년대 엔진·공구 보며 ‘시간여행’

중선농원
문정인 교수 부친의 2300평 귤 농장
갤러리 중심의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돌벽 살리고 자연광으로 작품 조명
카페·인문도서관 등 공간의 미학 가득
‘감저(고구마)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 사이트’ 내부
‘감저(고구마)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 사이트’ 내부
오래전부터 자연은 제주 사람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화산섬인 제주의 토양은 돌이 많아 농사짓기 어려웠고 빗물은 땅속으로 흘러내려 식수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태풍의 길목에 있는 제주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친 바람이 몰아쳐 사람들을 괴롭혔다. 제주 사람들에게 자연은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었고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때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이겨내며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현무암으로 만든 돌집과 돌담이다. 토양이 화산회토였기 때문에 흙벽을 만들 수 없었던 제주 사람들은 바람을 막기 위해 현무암을 다듬고 쌓아 올려 집을 짓고 돌담을 만들었다. 얼핏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어 엉성하게 쌓아 올린 것 같지만, 이 돌담에는 제주인의 지혜가 담겨 있다. 돌과 돌 사이의 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어떤 강한 바람에도 돌담은 넘어지지 않는다.

돌담은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돌담으로 밭과 밭의 경계를 만들고 집과 집을 이어주는 올레길을 만들었다. 돌담으로 이어진, 천장이 낮은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주 마을의 모습은 마치 남극의 한파를 피하기 위해 둥글게 모여 있는 펭귄 무리 같다. 가옥들은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돌담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거친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굳건한 공동체를 이루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현대화되고 주거 형태도 변하면서 제주의 전통 건축물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주민들이 돌창고와 가옥들을 리모델링하여 들어오면서 제주의 전통 가옥들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주거 용도로 변모를 시도하더니, 요즘에는 카페, 서점, 갤러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중선농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중선농원’
제주시 도심에서 멀지 않은 ‘중선농원’이라는 감귤농장이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외교 안보 분야의 권위자로 유명한 제주 출신 문정인 연세대 교수 부친이 한평생 귤 농사를 지었던 농장이다. 문 교수와 그의 가족들은 세월이 쌓인 2300여 평의 드넓은 농장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농장의 감귤 창고와 농가는 갤러리 중심의 새로운 문화 복합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감귤 창고에는 비영리 전시장 ‘갤러리2’가 들어서고, 작은 창고는 카페로, 농기구가 가득했던 부속 건물들은 인문예술도서관인 ‘청신재’(晴新齋), 농가로 쓰였던 건물은 게스트하우스 ‘태려장’(太麗莊)으로 탈바꿈했다.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비영리전시장 ‘갤러리2’ 내부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비영리전시장 ‘갤러리2’ 내부
네 건물 가운데 백미는 단연 감귤 창고였던 ‘갤러리2’이다. 돌벽으로 이루어진 외벽은 그대로 살렸다. 천장과 외벽 사이에는 반투명 플라스틱 패널을 설치하여 자연광이 전시 작품들을 환하게 밝혀주도록 꾸몄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공간이 되면서, 중선농원은 제주의 자연을 느끼면서 미술에 대한 사랑과 성찰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제 감귤나무 사이에 있는 이 갤러리는 문화를 통해 육지와 제주를 하나로 이어주는 공간이 되어, 제주 사람들과 외지인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카페와 도서관은 도시에 팽배해 있는 치열한 생존의 삶에서 벗어나 사유와 성찰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곳의 기획자 정재호씨는 “중선농원의 곳곳은 미술이 중심이 되도록 꾸몄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공간마다 품고 있는 미학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기획 전시는 3~4개월 마다 교체되고 제주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중견 작가의 전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제주시 한림읍에는 ‘감저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가 있다. ’감저’는 고구마를 뜻하는 제주어이고, 감저 공장은 전분 공장을 의미한다. 지금은 잊힌 기억이지만 60~80년대까지는 제주를 대표하는 농산물이 감귤이 아니라 고구마였다. 그래서 제주 전역에는 고구마 전분 공장과 주정 공장이 많았다.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는 90년대까지 전분 공장으로 쓰이다 방치된 건물을 재활용하여 들어섰다.

앤트러사이트 외경
앤트러사이트 외경
‘앤트러 사이트’는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던 폐업한 신발 공장을 카페와 문화 공간(합정점)으로 탈바꿈한 곳으로 유명하다. ‘앤트러 사이트 제주’는 서울 마포구 합정점과 마찬가지로 원래 건물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 최소한의 변화만으로 꾸며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냈다. 벽은 옛날부터 제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현무암으로 쌓아 올리고 그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메운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들도 옛것 그대로다. 옛 모습 그대로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천장 아래에는 커다란 1950년대 영국식 엔진 터빈들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녹슬어 있지만 스위치만 올리면 금방이라도 굉음을 내며 돌아갈 것 같다. 이곳에 서 있으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옛날 이곳에서 바쁘게 일하던 제주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앤트러사이트 내부
앤트러사이트 내부
바뀐 것이라고는 천정에 창문을 내어 해가 잘 들어오게 했다는 것이다. 햇살은 테이블 위에 커피 한 잔을 놓고 시간 여행을 즐기는 손님들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바닥은 그 어떤 마감 처리도 없이, 커다란 현무암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정말 멋진 인테리어다. 옛날 이곳 공장에서 쓰였던 공구나 장화들은 멋스럽게 인테리어 소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고구마를 씻던 수조는 야외 갤러리가 되었다. 이곳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앤트러 사이트’의 대표 김평래 씨는 서울 마포구의 폐업한 신발 공장을 재활용해 멋스러운 카페 ‘앤트러 사이트’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낙후되어 버려졌더라도 오랜 시간 사람들에 의해 쓰였던 공간만큼 멋스러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버려진 공간을 문화적으로 회복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앤트러 사이트, 제주’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의 옛 건축물들은 도시의 건축물처럼 권력을 상징하거나 저명한 예술가들의 미학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다. 오늘의 변화를 받아들인 제주의 건축물은 옛 모습을 지키며 새로이 태어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오늘에 달려 있듯이, 새로움 또한 늘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 중선농원 주소: 제주시 영평길 269 전화: 064)755-2112 운영시간: 10:00~18:00 휴무: 토요일

■ 앤트러사이트 주소: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564 전화: 064)796-7991 운영시간: 10:00~19:00 휴무: 없음

제주/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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