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에서 듣다.”
2년 전 칠성사이다 광고에서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인 임시완은 제주 정방폭포(대한민국 명승 43호)에서 폭포 소리를 들었다. 음료수의 맛을 맑고 깨끗한 폭포 소리에 빗댄 광고다. 정방폭포 한복판에 선 임시완의 반듯한 모습은 한 폭의 제주도 달력 같았다.
5월17일 개봉하는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에서 임시완이 연기한 현수는 그 광고 속 모범생 이미지와 정반대다. 노란 염색 머리를 한 채 양미간을 찌푸리며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자신의 덩치보다 곱절 넘는 사내들을 한 방에 날려보낼 만큼 주먹이 세고, 맷집도 좋다. 어떤 사정(스포일러 때문에 밝힐 수 없다)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그곳에서 거물 건달 재호(설경구)의 눈에 띈다. 재호는 현수를 “혁신적인 또라이”로 부르며 자신의 수하에 두고 싶어한다.
고문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1980년대 대학생 진우(영화 <변호인> 2013, 감독 양우석), 무역회사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드라마 <미생> 2014, 연출 김원석), 6·25 전쟁 때 포탄이 터지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보육원 합창단을 지휘하는 한상렬 소위(영화 <오빠 생각> 2016, 감독 이한) 등 시대별 청춘의 표상을 연기해온 그에게 ‘혁신적인 또라이’는 알을 깨야 하는 도전이었다.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감이 무척 컸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난 뒤 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던 까닭에 그는 “욕설 연기, 액션 연기, 격정적인 키스 신” 등 삼대 난관에 도전하기로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내성적인 성격이 맞나 싶을 만큼 영화 속 그의 모습은 과감하다.
배우로서 그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이기도 했던 그는 노래도, 연기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연예계 생활을 하게 된 사연도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 부산대 기계공학과를 다닐 때 출전한 가요제에서 예선 탈락했는데도 우연히 소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고, 연기까지 하게 됐다.
“이 직업에 매력을 느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매력을 느꼈다. 정말 운이 좋았는데, 그 때문에 막상 데뷔하고 나니 걱정이 생기더라. 아이돌로 활동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고, 잘하는 동료들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능력도 없는데 얻어걸린 거라면, 잘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욕심만 내는 거라면, 이곳에선 민폐인 거다.”
그래서일까? 임시완은 연기 경력 초반에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실제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연출 김도훈, 이성준)에서는 열일곱에 장원급제한 수재 꽃도령 ‘허염’을 연기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허염앓이’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적도의 남자>(2012, 연출 김용수, 한상우)에서는 단짝 친구를 배신하는 지방 출신 서울대생을 맡아 반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로서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다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인정받게 된 작품은 영화 <변호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돈만 알던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돌리게 되는 도화선 역할을 맡았다. 당대 최고의 배우 송강호와의 작업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송강호 선배님이 연기가 어렵지만, 접근은 어렵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이 때리면 아프다. 맞았는데 아픈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거짓 연기’라고 하셨다. 선배님께 혼나면서 많이 배웠다.” <변호인>은 중국에서 정식 개봉을 하지 않았으나 많은 중국 관객들이 여러 경로로 이 영화를 봤고, 감동했다.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은 5월1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받았다. 출연작의 칸 진출은 아직 보여줄 게 더 많은 그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그는 “내가 출연한 작품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이 앞으로 내 작품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김성훈 <씨네21> 기자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