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돈내코계곡에서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드디어 한여름이 제주에 도착했다.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제주에서 여름은 특별한 계절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화산섬 제주의 여름 풍경은 한반도의 여름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내린 마그마는 계곡을 만들었고, 해변에 도착한 용암은 푸른 바다와 만나며 검은 기암절벽으로 독특한 해변 풍경을 만들었다.
이뿐이랴! 빗물은 돌로 이루어진 대지 때문에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지대가 낮은 해변에서 용천수로 솟구쳐 올랐다. 민물과 바닷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랜 시간 바다와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제주의 검은 돌은 검은 모래 해변으로 변했다.
이런 풍경은 제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가 만든 천연 수영장인 황우지해안, 한라산 최고의 피서지 돈내코 계곡, 용천수와 바다가 만나 더욱 아름다운 곽지해수욕장, 육각형 해안 절벽이 있는 천연 수영장 논짓물, 화산암의 오랜 파도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삼양해수욕장이 대표적인 곳이다.
황우지해안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 제주도청 제공
몇해 전까지만 해도 황우지해안은 현지인만 아는 비밀 물놀이 장소였다. 이곳에 누군가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돌로 이어 제법 큰 수영장을 만들었다. 어른들은 이곳에서 야유회와 낚시를 즐겼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했다. 몇해 전부터는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수심은 깊지만 방파제 구실을 하는 바위들 덕분에 파도가 잔잔한데다 아름다운 자태의 물고기들도 놀고 있어,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새섬(조도)과, 문섬, 범섬이 손에 잡힐 듯 바다에 떠 있다.
그러다 2014년 tvN에서 방영된 ‘시간탐험대’에 황우지해안이 등장하면서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방송에서 개그맨 유상무가 새끼 상어와 결투를 벌였던 곳이 바로 황우지해안이다. 이곳은 실제로 상어가 출몰하는 곳은 아니다. 방송을 위해 제작진이 미리 풀어놓은 새끼 상어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황우지해안은 일제강점기를 겪어낸 고통의 해안이기도 하다. 해안 동쪽에는 일제가 자폭용 어뢰정을 숨기려고 제주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동굴 12개가 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이곳에서 북한 간첩선과 국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황우지해안은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슬픔이 서려 있는 제주의 현대사도 안고 있는 곳이다.
돈내코 계곡은 공기가 맑고 물이 많아 여름철 물놀이와 피서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산책과 걷기 여행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계곡 양편이 모두 난대 상록수림이 들어차 있어 햇볕이 들지 않는다. 때문에 아무리 더운 날도 차가운 물과 그늘 때문에 이곳은 온종일 시원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돈내코의 백미는 계곡 한가운데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원앙폭포다. 돈내코 깊숙이 숨겨져 있는 원앙폭포는 바다보다 더 짙은 에메랄드빛을 자랑한다. 그래서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몇해 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옛날 제주 연인들은 백중 날인 음력 7월15일 원앙폭포에서 물맞이를 했다. 백중 날 닭고기를 먹고 폭포의 물을 맞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선 한라산이 가장 웅장하게 보인다.
예로부터 제주는 곳곳에서 용천수가 흘러나와 이 생명수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흐르다가 지대가 낮은 해안가에서 용천수로 샘솟는다. 수없이 많은 바위와 흙을 거치는 여정이 있기 때문에 물은 매우 맑고 깨끗하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어우러진 곽지해수욕장. 제주도청 제공
애월해안을 따라 바다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밭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는 해변이 나오는데, 이곳이 곽지해수욕장이다. 곽지해수욕장은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도 차가운 용천수가 샘솟는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한라산과 제주 땅 밑을 흘러온 용천수와 푸른 바다가 만난다. 곽지해수욕장에서 샘솟는 용천수를 제주어로 ‘과물’ 또는 ‘돈물’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의 생명수로 쓰였지만 지금은 식수원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여름마다 노천탕을 만들어 해수욕장 이용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주변에는 카라반 캠핑장과 카약을 탈 수 있는 곳도 있어 레저에 관심 많은 사람에겐 더없이 완벽한 피서지이다.
서귀포시 예래동의 명물 ‘논짓물’도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다. 곽지해수욕장과 달리 논짓물은 모래 해변이 없다. 대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해안가에 검은 돌담을 쌓아 사각으로 만든 수영장이 있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민물이 고인다. 한여름에는 계곡물처럼 차갑다. 운이 좋으면 바닷물과 함께 밀려드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다.
논짓물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문신기 작가
논짓물에는 물놀이뿐만 아니라 볼거리 갯깍 주상절리도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주상절리는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 오각형 등 다각형인 긴 기둥들이 모여 만든 기암절벽이다. 화산이 폭발하며 흘러나온 마그마가 바다와 만나 급격히 식으며 부피가 수축돼 만들어진 암석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겪어 독특한 모양으로 형성된 것이다. 제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대포 주상절리대인데, 여행객이 너무 많이 몰려 관람하는 게 여의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갯깍 주상절리는 한가하게 관람할 수 있어 좋다. 논짓물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대포 주상절리와 달리 40m 높이의 주상절리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져볼 수도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절벽을 보며 조금만 걸어가면 ‘다람쥐굴’이라고 하는 해식동굴이 나온다.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주상절리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동굴 안에서는 토기 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다. 동굴에서 나와 몽돌해변에 서면 수직으로 깎인 사각기둥들이 파도치듯 일렁인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삼양해수욕장에 장엄한 노을이 지고 있다. 제주도청 제공
삼양해수욕장은 하얀 모래가 아닌 검은 모래 해변이라 제주 해수욕장 중에서도 독특한 곳으로 대우받는다. 제주시 삼양2동 해안에 있는 이곳은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피서와 함께 건강까지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검은 모래로 찜질하면 관절염이나 신경통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제주 사람들은 모래찜질을 ‘모살뜸’이라 하는데, 뜨거운 여름 태양에 달궈진 모래를 이불처럼 덮고 20~30분 정도 찜질을 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삼양에는 제주 사람들이 우산 아래서 모래찜질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자주 눈에 띈다. 이 밖에 제주시 이호테우해수욕장, 서귀포시 공천포해수욕장도 유명하다.
여름은 제주도에 자연이 선사한 소중한 계절이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제주의 자연은 제주만의 풍경과 제주만의 여름 피서법을 만들었다. 올여름은 제주에서 특별하고 쿨한 나만의 여행을 즐겨보자.
황우지해안
외돌개는 혼자 외롭게 서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서귀포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황우지해안은 외돌개와 이웃해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올레 7코스 시작점 표식과 황우지해안 전적비가 있는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야 해변에 닿을 수 있다.
주소: 서귀포시 서홍동 791(외돌개)
돈내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차고 맑은 물이 일년 내내 흐르고, 계곡을 난대 상록수림이 안고 있어 풍경이 한폭의 그림 같다. 야영장과 주차장, 취사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캠핑을 즐기기도 좋다.
주소: 서귀포시 돈내코로 114
논짓물
돌담을 쌓아 만든 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넓어 아이들이 놀기 좋고, 물이 차가워 피서지로도 인기가 좋다. 간만조의 흐름에 따라 식수로 쓰이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는 독특한 곳이다. 여름에는 논짓물 축제도 열린다.
주소: 서귀포시 하예동
곽지해수욕장
곽지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피서객에게 인기가 좋다. 물이 빠지면 해수욕장에서 차가운 용천수가 솟아나 예전에는 몸을 씻거나 식수로 이용했다. 몇해 전 용천수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해수욕을 즐긴 뒤 용천수로 몸을 씻을 수 있다.
주소: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삼양해수욕장
제주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다. 검은 모래이기 때문에 다른 해수욕장보다 바닷물이 파랗게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물이 맑고 깨끗하다. 모래찜질로 유명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주소: 제주시 삼양2동
* 제주도는 최근 ‘해변’이라 일렀던 해수욕장의 이름을 다시 ‘해수욕장’으로 되돌렸다.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