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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소·돼지가 친구 하자 할 고소하고 보들보들한 맛…제주 말고기!

등록 2017-07-19 15:21수정 2017-07-19 15:44

[제주&]미식 기행 말고기 요리

도축 목적으로 사육되는 비육용
불포화지방에 부드러운 육질
사과처럼 아삭거리는 식감의 간
요리사 김신이 만든 말고기 요리 ‘탈리아타 디 만초’. 말고기는 다양한 요리의 재료가 된다.
요리사 김신이 만든 말고기 요리 ‘탈리아타 디 만초’. 말고기는 다양한 요리의 재료가 된다.
제주는 고려 시대부터 목마장으로 유명했다. 유독 다른 지방보다 제주에 말 농장이 많은 이유다. 말고기 전문점도 7~8년 전부터 꾸준히 늘어 60여곳이 넘는다.

말고기는 예부터 고급 음식이었다. <단종실록>이나 <태조실록> 등에는 제향에 올리거나 건마육포(말린 말고기포) 등을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뇌물로 쓰였을 만큼 귀한 먹을거리였다. 군마 확보를 위해 말 도축을 금했던 세종 때 일이다. 제주목사가 왕의 최측근으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던 황희나 김종서 등에게 건마육포를 뇌물로 바쳤다가 걸려 사헌부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현대로 넘어와서도 말고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주로 단백질 공급을 돼지고기로 했던 제주도민들은 1년에 한번 운이 좋으면 말고기 맛을 봤다. 중산간에서 말을 사육하던 이들은 1년에 한번 말 추렴을 했다. 이때 이들과 연이 닿은 사람들만 그 맛을 봤다. 주로 간장에 살짝 재워 숯불에 구워 먹었다. 다른 육고기보다 매우 부드러워 연육제(고기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넣는 배, 설탕 등의 양념)를 쓸 필요가 없었다.

여행객들은 때로 말고기에 대해 오해를 한다. 승마대회 등에 출전했다가 늙어 더는 뛸 수 없는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애초 출발이 다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아예 식용으로 사육되는 ‘고기’다. 도축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비육용이다. 말 종자인 서러브래드와 제주 토종말인 ‘제주마’, 이 두 종을 교접한 제주산마(한라마) 중에 경주마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말이나 체고(말갈기 정점으로부터 수직으로 잰 말의 키 높이)가 137㎝가 넘는 제주산마가 주로 식육으로 사육된다. 6개월간 비육 과정을 거친다. 식용으로 제주산마가 가장 맛이 뛰어나고 그다음은 제주마다.

청정제주마장의 말 부산물과 ‘사시미’.
청정제주마장의 말 부산물과 ‘사시미’.
여행객이 찾는 대표적인 말고기 전문점은 제주시의 ‘마진가’다. 주인인 이종언씨는 말 전문가다. 말 영양학을 전공한 그는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말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주인의 전문성 때문인지 유독 이 식당을 손에 꼽는 제주도민이 많다. 마진가에 들어서면 다채로운 말고기 메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고기구이, 말고기스테이크, 말고기만두, 말수육, 삶은 말 막창, 말고기초밥, 말갈비찜, 말곰탕 등. 말뼈진액차도 있다. 빨간 말고기를 불판에 올리면 엄마의 자장가 같은 친근한 소리가 들린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소리가 커질수록 침이 고이고 콧방울이 커진다. 언뜻 보면 마블링(근육 내 지방)이 적어 행여나 질길까 걱정이 앞서는데, 한입 씹어 먹으면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야말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청정제주마장의 말갈비찜.
청정제주마장의 말갈비찜.
소고기, 돼지고기, 말고기의 지방 등을 비교한 적 있는 이씨는 말고기의 지방은 다른 육고기와 달리 불포화지방이며 건강에도 좋고 맛도 훨씬 부드럽다고 말하곤 한다. 콜레스테롤 감소에 도움이 되는 ‘오메가3 지방산’ 등도 많다고 자랑한다.

여행객들이 말고기구이를 주로 찾는다면 제주도민들은 간과 막창 같은 부산물을 별미로 먹는다. 조금 과장한다면 간은 마치 사과처럼 아삭거릴 정도로 식감이 뛰어나다. 특유의 구린 냄새가 나는 막창도 별미다. 하지만 내장은 직영 농장을 운영하는 전문식당에서 맛을 보는 게 좋다. 신선도가 생명인 탓에 도축하자마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말뼈가 말값의 반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뼈가 차지하는 양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뼈로 만든 진액도 몸보신용으로 판다. 꾸준히 먹으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한다. 최근 들어 ‘마유’(말기름)를 활용한 화장품이나 샴푸 등도 유통되고 있다. 그만큼 말기름은 질척질척하지 않으면서 피부에 좋다는 소리다. 제주 말고기 정도는 먹어봐야 식도락가라고 할 만하다. 대표적인 말고기 소비국인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말고기와는 사뭇 맛이 다르다.

마진가의 ‘말초밥’.
마진가의 ‘말초밥’.

팁) 마진가: 말 전문가가 주인인 말고기 전문점. 말고기회, 말고기스테이크, 구이, 막창 등 다양하게 말고기를 즐길 수 있다. (제주시 용담1동 266-2)

청정제주마장: 20대부터 승마장을 운영했던 강경수씨가 운영한다.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945-1)

목장원 바스메영농조합법인: 역사가 오래된 말고기 전문점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2631-1)

이 밖에 고우니(제주시 노형동 2466-1), 사돈집(제주시 노형동 928-13), 고수목마(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553-2), 제주마원(서귀포시 색달동 3092) 등이 있다.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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