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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봄에는 고사리 뜯고 여름엔 솜반천에 ’풍덩’, 제주로 오실래요?

등록 2017-08-08 10:00수정 2017-08-08 10:14

[제주&] 제주 ‘이민자’ 송호균의 제주살이

뒷산 운동길에 만난 고라니
가족들과 함께 서귀포 이주 1년
‘바다’ ‘구름’을 먼저 배운 아들
송호균씨의 아내와 큰아들이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산책로를 걷고 있다.
송호균씨의 아내와 큰아들이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산책로를 걷고 있다.
“꺅! 이게 뭐야!” 아내가 자지러졌다. 운동 삼아 집 근처 서귀포 고근산을 오르던 참이었다. 숲속에서 뭔가 육중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멧돼지일까? ‘산속에서 멧돼지를 만나면’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안내 그림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자세히 보려는데 갑자기 검은 물체가 뛰쳐나와 도망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다행히 고라니였다. 그래도 몸집은 꽤 컸다. 아마 사람보다 고라니가 더 놀라지 않았나 싶다. 아내와 “우리가 정말 제주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서울을 찾았을 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사방이 잿빛이었다. 하늘이 보여야 할 곳에 높다란 빌딩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코끝에 매캐한 매연이 감돌았다. 목이 따끔거렸다. “아, 어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가족들과 함께 제주, 그중에서도 서귀포로 이주해 산 지 1년이 지났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서나 만나는 제주의 경이로운 풍경은 그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일단 아이들 방에서 한라산이 보인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백록담 주변의 기상을 점검하며 하루의 날씨를 가늠해보는 것이 부부의 첫 일과가 되었다. 날씨에 따라 하루의 계획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송호균씨의 아이 방 창문을 통해 본 한라산 전경.
송호균씨의 아이 방 창문을 통해 본 한라산 전경.
서귀포 시내에 살고 있지만, 도시라는 느낌은 없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인공 구조물보다 녹색과 푸른색 풍광이 먼저 보인다. 중산간 산록도로 어디쯤 차를 세우고 고사리를 뜯다 고개를 들면 엄마 품처럼 포근한 한라산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 완만한 녹지에선 소 떼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군산 오름에 오르면 산방산과 형제섬, 가파도,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탓에 ‘물찬 제비’라는 말은 그저 관용어구로서만 의미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 안의 작은 호수에서 실제 수면을 차고 다니는 제비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과연 잽싸고 날랬다. 공원에는 야생 토끼도 산다. 이제 4살이 된 큰아이는 공원에 가자는 말 대신 “토끼 보러 갈까요?”라고 묻는다. 인근 걸매생태공원에 흐르는 계곡 물에는 한 무리의 원앙들이 늘 머물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조우하는 일이, 이곳 제주에선 일상이 된다. 차를 몰고 10분만 나가면 바다를 만난다. 지구리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잔디밭에서 뛰어놀다 보면 점심때가 가까워진다. 선지가 둥둥 떠다니는 제주식 몸국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비운 아이의 팔다리가 보기 좋게 그을려 있다. 봄에는 푸르다 못해 눈부신 중산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사리를 뜯고, 뜨거운 여름에는 얼음장 같은 솜반천에 뛰어들었다가 가까운 방파제에서 잡아올린 한치를 볶아 상에 올렸다.

제주는 아이들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제주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입을 떼기 시작한 큰아들은 ‘바다’ ‘한라산’ ‘하늘’ ‘구름’ 따위의 말을 먼저 배웠다. 얼마 전 성산포 근처를 지나는 길에는 “저건 성산 같아”라는 말을 던져 부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느새 제주에서 살아온 날이 더 길어진 둘째도 집 안에만 머무는 날에는 유난히 짜증이 심하다. 왜 밖에 나가지 않느냐는 거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아직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매 순간 온몸으로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을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이건 지속가능한 행복인가? 응당 물어야 할 질문이다. 제주 정착을 고민하고, 준비하고, 감행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서로를 향해 몇번이고 되풀이해 던졌던 물음이기도 하다.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를 것이다. 지난 1년의 경험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행복의 기회비용은 얼마인가? 유통기한이 명확한 눈앞의 행복을 끝없이 유예한 끝에 남는 것은 도대체 뭘까?

반복된 자문자답 끝에 부부는 이건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결론지어버렸다. 아마 직장에 나가거나, 직업을 갖는 일은 최대한 미루게 될 것 같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며 커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도저히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곳이 제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했다.

송호균/ 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

편집자 주: 10여년의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해 6월 가족과 함께 제주에 내려가 ‘오로지 육아만’ 하고 있다는 송호균씨의 제주 이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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