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마다 영화로 위로를 받았고, 연기를 하다가 기회가 돼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
지난 7월, 남궁민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자신의 첫 연출작인 단편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를 만든 소감을 밝혔다. “중국영화 <월색유인>(2015) 촬영이 한두달 밀려 짬이 난 사이에 서둘러 찍은 스릴러”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조작>을 정신없이 촬영하고 있었던 까닭에 “없는 시간을 겨우 쪼개 부천까지 달려온” 걸 보니 이 영화에 애정을 꽤 쏟은 모양이다. 배우의 연출 도전이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귀공자 같은 외모로 브라운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그가 연출가라는 꿈을 남몰래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이 영화의 연출 소식을 털어놓았을 때 적잖이 놀랐던 것도 그래서다.
선한 외모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미소 때문에 데뷔 당시 남궁민의 별명은 ‘리틀 배용준’이었다. 선한 남자(<나쁜 남자> 2002, 감독 김기덕)로 얼굴을 알린 뒤, 영화 <비열한 거리>(2006, 감독 유하)에서 비열한 영화감독을 연기해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영화 <뷰티풀 선데이>(2007, 감독 진광교)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을 연기해 선과 악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또, 여러 트렌디 드라마에 출연해 ‘실장님’ 전문배우로도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킨 작품은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2011)다. 그가 맡은 장준하는 죄책감과 열등감이 뒤섞인 남자였다.
이 작품부터 지금까지 남궁민은 매년 드라마 한편씩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다.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군 제대 후 복귀작인 드라마 <부자의 탄생>(2009)에서 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몸이 안 풀려 있었던 거다. 그때 든 생각이 ‘작품을 멀리하면 안 되겠다’였다. 어느 정도 내공을 쌓기 전까지는 계속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연기에 이르기 위해 개인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며 현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했고, 벤치프레스(근력운동의 한 종류) 300개를 ‘바를 정’ 자를 써가면서 수행하듯 해내며 만성 허리 통증을 이겨냈다.
이를 악물고 쏟은 정성은 결과로 드러났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2015)에서 치밀한 두 얼굴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연기했다. 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2015)에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재벌 후계자를 연기해 한번도 보여주지 못한 악역을 선보이며 ‘리틀 배용준’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냈다. 한때 선한 얼굴이었던 그가 악역도 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데뷔 초반 드라마 <장미 울타리> 같은 작품을 할 때 ‘남궁민이 나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소리도 들었다. (웃음) 그때그때 시대가 요구하는 남자 캐릭터 상들이 있는 것 같다.” (2016년 <씨네21> 인터뷰 “영화감독은 가슴 한쪽에 품어둔 꿈같은 일”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 <리멤버 : 아들의 전쟁> <미녀 공심이>(2016) 등 출연작이 중국, 일본, 타이 등 아시아에서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영화 <월색유인>에 출연하기도 했다. 중국 배우 위난과 함께 부부로 출연해 남편과 아내가 강도 사건을 겪은 뒤 점점 멀어지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이때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도 출연해 가수 홍진영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로 데뷔 19년차인 남궁민은 드라마 <김과장>(2017)과 <조작>으로 데뷔 이래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과장>에서 그가 연기한 ‘김 과장’ 김성룡은 시종일관 과장된 연기를 보여주며 대기업의 분식회계, 노동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건드리는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갔다. 재미있는 건 남궁민이 맡은 캐릭터가 선부터 악까지 다양한데, 어떤 캐릭터든지 그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궁민이 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인상적이다. 그것이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남궁민이 계속 궁금한 이유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 사진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