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아줘/잘 눌러줘/밥알이 김에 달라붙는 것처럼/너에게 붙어 있을래.’ 가수 자두의 노래 ‘김밥’의 한 소절이다. 김밥만큼 한국인에게 추억 많은 먹을거리가 또 있을까 싶다. 봄 소풍, 가을 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도시락 메뉴가 김밥이다. 소풍 전날 밤, 맛깔스러운 김밥을 먹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 잠을 못 이룬 이들이 많았다. 다음날 아침 부엌 문지방을 넘어 퍼졌던 고소한 향을 어른이 돼서도 기억한다. 몰래 집어먹고 도망치면 어머니는 웃음 섞인 타박을 했다.
만들기도 간편하고 파는 식당도 많은 김밥은 한국인이 가장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일상식이기도 하다. 가을 제주 여행이야말로 김밥이 꼭 필요하다. 여름의 찌든 더위가 날아간 제주 올레길은 더없이 걷기 좋다. 길 친구는 당연히 간편한 김밥 한줄이다. 가방에 쏙 들어가니 맛과 편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건강한 제주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김밥 ‘다가미’
제주 사람 한비파(57)씨가 연 김밥집으로, 공항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제주 올레길 여행자들이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이 식당에 들러 김밥을 싸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밥에 흔히 들어가는 햄과 단무지 대신 제주 흑돼지삼겹살, 장조림, 버섯쌈, 멸치쌈 등이 들어간다. 메뉴는 ‘다가미’ ‘참치로얄’ ‘매운멸치쌈’ ‘소고기롤’ ‘화우쌈’ ‘삼겹김치쌈’ 등이다.
제주 제철 재료를 쓴다고 한다. 김밥의 크기가 다른 김밥집의 2배다. 반줄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가장 인기 좋은 메뉴는 ‘삼겹김치쌈’이다. 삼겹살과 김치를 상추로 싼 김밥이다. ‘다가미’(多加味)는 ‘알찬 느낌의 김밥을 만들자’라는 주인의 철학에 따라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독특한 이 집의 김밥이 육지에도 소문이 자자하게 나서 저녁 나절이면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제주시 도남동 68-2/064-758-5810/2500~5000원)
꽁치김밥의 원조 ‘우정회센타’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들어서면 긴 줄을 선 한 횟집을 발견한다. 신선한 회를 먹으려는 관광객들이 아니라 이 식당의 별미인 꽁치김밥을 사려는 이들이다. 한줄 김밥의 양쪽에 꽁치의 머리와 꼬리가 튀어나와 있어 보기만 해도 신기하다. 꽁치 김밥의 탄생은 의외로 소박하다. 종업원들이 일하는 중간마다 새참으로 만들어 먹다가 메뉴가 됐다.
주인 강지원(44)씨는 일본 등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한 적이 있는 실력자다. 몸통이 부서지지 않고 뼈와 내장만 제거하는 게 기술이다. 참기름만 넣고 비빈 하얀 밥과 궁합이 잘 맞는다. 회도 푸짐해 술 한잔 걸치는 여행객도 많다.
(서귀포시 중앙동 276-6/064-733-8522/3000원)
제주의 마약 김밥 ‘오는정김밥’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인근에 있는 ‘오는정김밥’은 전국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1~2시간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다. 예약을 받고 테이크아웃으로 김밥을 판다. 30여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김밥집의 메뉴는 ‘오는정김밥’ ‘치즈김밥’ ‘참치김밥’ ‘깻잎김밥’ ‘멸치김밥’ 등이다. 이미 연예인, 축구 스타 등 꽤 많은 유명 인사가 다녀갔다. 한번 맛보면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해서 ‘마약 김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서귀포시 서귀동 254-6/064-762-8927/2500~4500원)
한국의 김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넘어왔다는 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음식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의 여러 저서에 김에 대한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 정조 때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에는 삼국시대부터 김의 재료인 해초를 채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과 같은 네모난 모양의 김에 대한 기록은 실학자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에 있다.
역사의 흔적이 촘촘히 박힌 김밥 몇줄을 들고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 발걸음도 가볍다. 노래 ‘김밥’을 흥얼거리면 금상첨화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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