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움직인 지극정성이었다. 얼마 전 에스비에스(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에서 추자현이 남편인 중국 배우 위샤오광(우효광)의 촬영 현장에 가서, 스태프들을 먹일 치킨 100인분을 준비한 일화가 화제였다(추자현, 위샤오광 부부는 9월18일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 제주도를 여행하다가 민속촌을 방문해 전통 혼례식 체험을 했다. 이미 법적 부부이지만 서로 바쁜 스케줄 때문에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던 까닭에 둘의 전통 혼례식이 관심을 모았다-편집자).
생닭을 직접 손질해 튀긴 뒤 남편과 함께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니, 몇년 전 그녀의 중국 생활을 그린 영상을 본 기억이 났다. 그 영상 속 추자현은 매니저와 함께 김밥 몇십인분을 직접 말아 동료 배우, 스태프들에게 나눠주며 먼저 다가갔다. 당시 40여권이 넘는 중국어 대본을 달달 외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인 같은 성실한 자세와 각오가 중국인들에게 믿음을 주었을 것이다. 그게 추자현이 중국 최고의 배우 장쯔이와 비슷한, 회당 출연료 1억원의 대우를 받는 비결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류 스타라고 말하지만 추자현은 스스로 “한류 스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대표작이 있고, 그 때문에 인기를 얻어 해외 팬들이 생기는 게 한류 스타이지, 나는 중국에서 다시 데뷔한 사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10년 전, 추자현은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가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중국에 건너갔다. 당시 티브이(TV) 드라마와 영화계가 그에게 드라마 <카이스트>(1999) 속 모습과 늘 같은 메뉴만 요구했기 때문이다. 터프하거나 코믹하거나.
<카이스트>는 추자현이라는 이름을 알린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이미지의 굴레였다. 이 드라마 속 그의 터프하고 ‘보이시’한 매력은 신선했지만, 너도나도 추자현에게서 비슷한 모습만 끄집어내려고 했다. 당시 그는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비슷한 배역만 들어오는 것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난 매콤한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시원한 북엇국도 먹고 싶은데 매일 된장찌개만 먹는 느낌이었다. 굶으면 굶었지 같은 건 그만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 된장찌개보다 더 비싼 걸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맛을 원했던 거다.”
다른 맛을 먹기 위해, 배우로서 2막을 열기 위해 방송을 중단하고 찾아낸 작품이 영화 <사생결단>(2006, 감독 최호)이었다. 소속사로부터 시나리오를 건네받아 정식으로, 신인처럼 오디션을 봤다. “연극영화과 들어갈 때 교수님들 앞에서 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게 했다. 지영 역할이 탐나서가 아니라, 내가 이런 자세를 갖고 있으니 다음에라도 맞는 역할이 있으면 달라는 뜻에서….” 배역이 끌려서가 아니라 그저 다른 역할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경력 있는 배우가 신인처럼 오디션을 봤다는 얘기다.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배우가 할 만한 시나리오가 없다”는 충무로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지영은 마약의 파노라마를 체현하는 인물로, 약에 취해 벌이는 섹스와 약을 끊기 위한 몸부림을 냉정하게 표현했다. 덕분에 그녀는 ‘추자현의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해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추자현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미인도>(2008, 감독 전윤수), <실종>(2009, 감독 김성홍) 등 몇 편의 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기영웅전>(2007), <초류향전기>(2007) 등을 찍었고, 지금까지 중국판 <아내의 유혹>(2011), <목부풍운>(2012), <수수적남인>(2014), <명성도아가>(2014), <최후일전>(2015), 최근의 <화려한 오피스족>(2017) 등 많은 중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추자현은 하늘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한류 스타가 아니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운명의 굴레를 극복하기 위한 숱한 몸부림 끝에 스스로 쟁취한 성취라 할 만하다.
김성훈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