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카페 앞에 설치된 바나나맛 우유 모양의 대형 조형물.
어릴 적 일요일이면 반드시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었다. 목욕탕이었다. 거대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때로는 형에게 이끌려, 때로는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목욕탕을 찾았다. 목욕을 마치고 목욕탕을 나오기 직전, 문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냉장고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 아버지는 지갑을 열고 항아리 단지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를 사주셨다. 완벽한 일요일의 완성이었다. 목욕 후 달콤한 바나나 향이 가득한 바나나맛 우유의 맛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옐로우카페 안에 설치된 바나나맛 우유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천장 거울에 비친다.
1974년 출시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온 제품이다. 바나나맛 우유를 보면서 누군가는 목욕탕을 떠올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골목길 슈퍼를, 누군가는 빨대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바나나맛 우유는 많은 사람에게 추억의 제품이다.
그런데 이젠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바나나맛 우유가 기억될 것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나나맛 우유도 진화한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 관광단지에 있는 ‘옐로우 카페’에서는 놀랍게 변한 바나나맛 우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옐로우 카페는 바나나맛 우유를 테마로 한 빙그레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서울 동대문점에 이어 올 4월에 제주점이 문을 열었다. 제주점은 동대문점보다 10배나 큰 660㎡(약 200평) 규모로, ‘카페 존’ ‘MD 존’ ‘체험 존’ 총 3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나나맛 우유로 시작해 바나나맛 우유로 끝을 맺는 테마형 카페다. 카페 앞에는 바나나맛 우유의 상징인 항아리 단지 모양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실내에는 바나나맛 우유 모양의 좌석과 조명이 있고, 벽은 바나나맛 우유를 재해석한 그림들로 꾸몄다.
’대형 거울의 방’에 설치된 바나나맛 우유 모형 작품.
모든 메뉴는 바나나맛 우유를 재료로 쓰고 있는데, 바나나맛 우유의 원유 함유량이 86%이기 때문에 메뉴의 무한한 변화가 가능하다. 메뉴는 음료, 쿠키, 푸딩 등 다양한데, 바나나맛 우유로 만든 셰이크와 바나나 아이스크림 큐브 브레드, 바나나 티라미수가 인기를 끈다. 어느 메뉴를 먹어도 향긋한 바나나 향과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바나나 우유와 아이스크림의 환상적인 조합인 바나나맛 셰이크와 입속에서 빵과 함께 살살 녹는 바나나 아이스크림 맛이 일품인 큐브 브레드는 특히 맛이 좋다.
카페 반대편은 ‘옐로우 월드’다. 옐로우 월드는 ‘MD 존’ ‘체험 존’으로 구분된다. 엠디(MD) 존에서는 바나나맛 우유 용기와 디자인을 활용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디자인 제품들을 팔고 있다. 바나나맛 우유 모양의 인형, 귀걸이, 팔찌, 열쇠고리 등이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 인기가 좋다. ‘체험 존’은 옐로우 카페의 숨겨둔 보물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체험 존에는 ‘대형 거울의 방’에 설치된 대형 바나나맛 우유 모형 작품이 있다. 모두 거울로 이루어진 공간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바나나 우유가 색을 바꿔가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반복적으로 거울에 반사된 빛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작품은 국내 유명 아티스트 ‘한호’ 씨가 계획한 작품으로, 바나나맛 우유와 제주도를 소재로 한 대형 조형물이다. 이 밖에도 바나나맛 우유가 있는 세계의 명소를 미니어처로 만들어 눈길을 끈다. 에펠탑이 있는 파리 풍경과 피라미드가 있는 이집트 사막의 풍경에 바나나맛 우유가 자리를 잡고 있어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오랜 시간 사람들과 같이해온 바나나맛 우유는 누군가에게는 추억으로 기억되고,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맛과 향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제 바나나맛 우유는 추억 속의 우유가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