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제주엔

‘홍반장’ 김주혁 추억 서린 서귀포 그 마을, 이제 동백의 시간

등록 2017-11-24 10:01수정 2017-11-24 16:07

[제주&] 제주에서 촬영된 로맨스 영화·드라마 속 장소

<연풍연가> 교래리 삼나무 숲길
<건축학개론> 서귀포 ‘서연’의 집
<홍반장> 김주혁의 무대 법환마을
<쉬리>의 마지막 무대 신라호텔 벤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무대였던 씨에스호텔 정원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무대였던 씨에스호텔 정원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사랑과 여행은 참 많이 닮았다. 사랑과 여행만큼 삶에 ‘설렘’이란 선물을 주는 것도 없다. 무료한 무채색 세상도 사랑에 빠진 연인에겐 더없이 아름다운 핑크빛으로 보일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그러니까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다면 당신의 여행은 더 설레고 아름다울 것이다. 게다가 그곳이 제주도라면, 사랑 이야기를 품은 멋진 여행지라면 말해서 무엇하랴!

제주에서는 1990년대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촬영됐다. 육지와 구별되는 제주의 특이한 풍광과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사계는 이곳을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주목받게 했다. 로맨스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찾아 잠시 ‘스크린 속 주인공’이 돼 보면 어떨까.

비행기는 반도를 날고 남해를 건너 푸른 섬 제주도에 닻을 내렸다. 불과 한 시간 날아왔을 뿐인데,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야자수와 돌하르방, 높고 투명한 하늘. 남국 같은 풍경도 이색적이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넘친다. 공기의 느낌이 남다르다. 행복에 표정이 있다면 분명 제주공항에 막 도착한 사람들의 표정일 것이다.

장동건·고소영이 주연한 <연풍연가>의 비자림로.
장동건·고소영이 주연한 <연풍연가>의 비자림로.
공항을 빠져나와 제주 동쪽 중산간에 있는 조천읍 교래리로 향한다. 제주 시내를 나와 이른바 5·16도로(제1횡단도로 1131번 도로)로 들어섰다. 제주대학교와 말 방목지를 지나 삼거리 갈림길에서 5·16도로를 보내주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자림로(1112번 도로)로 들어서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도로 양옆으로 키 큰 삼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다. 자연이 마술이라도 부린 듯 마침 옅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태양은 축복을 내리듯 삼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을 보낸다.

이 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힌다. 광고나 드라마, 영화에도 곧잘 등장한다. 이곳은, 이제는 실제 부부가 된 장동건과 고소영이 주연한 영화 <연풍연가>(1999, 감독 박대영)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일상을 벗어나 제주로 온 태희(장동건)와 관광 가이드 영서(고소영)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모습을 잘 그려낸 풋풋한 영화다. 교래리 삼나무 숲길에서 태희가 영서에게 나무가 제주도 말로 뭐냐고 묻는다. “낭이라고 해요.” 장동건이 삼나무 숲을 보면서 말한다. “낭? 그럼 여기는 ‘낭’만 있는 곳이네.” 정말 ‘낭’만 있는 곳이지만, ‘낭만’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제주도에서 삼나무 숲길을 배경으로 결혼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란다. 실제로 웨딩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커플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아름다운 숲길을 뒤로하고 제주 동부 중산간으로 차를 돌렸다. 숲은 사라지고 넓은 들판과 들판 사이사이로 듬성듬성 오름이 앉아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들판에서 뛰노는 말 몇 마리도 보인다. 몇 분이나 달렸을까? 머리 위에 구름을 쓴 물영아리오름을 만난다. 이곳은 송중기와 박보영이 출연한 판타지 멜로 영화 <늑대소년>(2012, 감독 조성희)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차를 세우고 물영아리 쪽으로 걸어가자 들판이 보였다. 가을인데도 제주의 들판은 여름처럼 푸르다. 이 초원이 영화에서 늑대 소년과 소녀가 동네 꼬마들과 축구를 했던 곳이다. 세상에 마음을 닫은 채 살아가던 소녀가 늑대 소년을 만나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소이다. 푸른 초원을 보고 있으니 영화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내 마음도 시원해졌다.

사실, 물영아리오름의 아름다움의 정수는 정상에 있다. 20여 분 오름을 오르자 나무로 둘러싸인 원형 습지가 나타났다. 산 정상에 습지라니! 두 눈을 의심했다. 보통 습지는 하천이나 지하수 등 외부에서 물이 들어와 생긴다. 그러나 이곳은 비와 안개가 공급해준 물로 이뤄진 습지다. 멸종위기종 2급인 물장군, 맹꽁이 등을 비롯해 양서류 8종, 습지식물 210종, 곤충 47종, 파충류 15종 등 다양한 생명군이 살고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산정 습지 풍경이 판타지 멜로 영화인 <늑대소년>만큼이나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건축학개론> ’서연’의 집
<건축학개론> ’서연’의 집
다시 남쪽으로 달려 남원읍 위미리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로 슬며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곳곳에 노랗게 익어가는 귤나무와 일찍 얼굴을 내민 붉은 동백꽃이 보인다. 위미마을은 사랑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하다. 위미마을과 위미포구를 등지고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얼마를 더 가자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가 나타났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 감독 이용주)의 두 주인공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이 15년 만에 재회한 곳이었다. 명필름의 시나리오 작업실로 사용할 목적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갤러리 카페로 재개장했다. 건물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서연이 맨발로 걸었던 잔디 깔린 옥상정원은 그대로였다. 옥상정원에서 바라보는 위미 앞바다 풍경이 압권이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신다. 해가 저 멀리 수평선과 가까워지고 있다. 문득, 옛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영화 때문인지, 옛 기억 때문인지 가슴 한쪽이 쓸쓸하다.

<홍반장> 촬영지 법환마을 전경.
<홍반장> 촬영지 법환마을 전경.

다음날, 일찍 일어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호수처럼 투명한 하늘 아래에서 제주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시작하고 있다. 서귀포 동남쪽에 자리잡은 법환 마을에 도착했다. 법환마을은 제주 올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7코스 중간 지점에 있다. 특히 법환포구에서 월드컵로까지 이어진 1.3㎞ 해안 길은 서귀포의 아름다운 섬, 범섬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멋진 길이다. 법환마을에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고 김주혁이 떠오른다. 이곳이 김주혁과 엄정화가 주연으로 나온 코미디 멜로 영화 <홍반장>(2004, 감독 강석범)의 주요 무대였던 까닭이다. 수려한 용모에 모르는 일도, 못하는 일도 없는 30살 남자. 홍반장이라 불리던 홍두식(김주혁)과 사고뭉치 치과 의사 윤혜진(엄정화)은 법환마을에서 좌우충돌 멜로드라마를 완성했다. 홍반장을 떠올리며 법환 앞바다를 바라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화로운 바다를 보자 너무 일찍 떠난 김주혁이 그리워져 가슴이 먹먹하다.

SBS 누리집 갈무리
SBS 누리집 갈무리

아름다운 풍경에 위로를 받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 행선지는 중문관광단지다. 중문색달해수욕장과 천제연폭포, 그리고 호텔과 고급 리조트가 몰려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정말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다. 대표 작품으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영화 <쉬리>(1999, 감독 강제규)가 있다. <시크릿 가든> 촬영지인 씨에스 호텔은 <꽃보다 남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같은 드라마에도 나온다. 제주 전통 초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단독형 별장 호텔이다. 전통 초가와 넓은 잔디 마당, 그리고 아름다운 중문 앞바다를 품은 매혹적인 곳이다.

왜 이곳에서 그토록 많은 드라마를 촬영했는지 이해가 된다. 주원(현빈)과 라임(하지원)의 벤치 키스로 유명한, 넓은 잔디 광장이 있는 의자에 앉자 망망대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원과 라임은 이곳에서 키스하며 처음 사랑을 느꼈다. 그들처럼 해보고 싶지만, 나는 아직 라임의 자리에 앉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영화 <쉬리>의 마지막 무대인 ’쉬리 언덕’의 벤치에서 내려다본 중문 해변 전경.
영화 <쉬리>의 마지막 무대인 ’쉬리 언덕’의 벤치에서 내려다본 중문 해변 전경.

다음을 기약하며 영화 <쉬리>의 마지막 무대였던 제주 신라호텔로 향한다. <쉬리>는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유중원(한석규)과 이명현(김윤진)이 언덕 위 벤치에 앉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그 배경이 제주 신라호텔에 있는 언덕이다. ‘쉬리 언덕’이라 불리며 많은 여행객이 찾는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쉬리의 언덕에 이르자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활처럼 휘어진 하얀 백사장과 제주의 푸른 바다가 시야 가득 펼쳐진다. 한눈에 담기에는 벅찬 풍경이다. 많은 커플들이 쉬리 언덕을 배경 삼아 카메라에 추억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랑이다.

제주/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제주&] 그밖의 촬영 명소들

<봄날>의 비양도, <계춘할망>의 평대리와 하도리…

영화 <계춘할망> 촬영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변.
영화 <계춘할망> 촬영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변.
제주를 배경으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협재해수욕장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다. 협재 앞바다에는 동화에 나올 법한 작은 섬 비양도가 떠 있다. 2005년 고현정의 컴백 드라마 <봄날>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배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아직도 옛 제주 정취가 많이 남아 있는 때묻지 않은 섬이다. 섬 주위로 언제나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핫한 곳을 뽑으라면 단연 애월읍이다. 애월읍에는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유유자적 수영을 즐겼던 곽지해수욕장이 있다. 드라마 <맨도롱또>으로 유명해진 애월한담산책로도 이곳에 있는데, 곽지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부터 한담마을까지 1.2㎞ 이어진 해변 산책로다. 바다와 현무암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이 많은 여행객을 불러들인다.

드라마 <맨도롱또똣>으로 유명해진 애월한담산책로.
드라마 <맨도롱또똣>으로 유명해진 애월한담산책로.
제주 동쪽에서는 영화 <계춘할망>(2016, 감독 창감독)의 배경이 되었던 평대리와 하도리가 유명하다. 12년 동안의 과거를 숨긴 채 집으로 돌아온 손녀 혜지(김고은)와 오매불망 손녀를 기다려온 해녀 계춘할망(윤여정 분) 사이의 사랑을 진솔하게 그려낸 감동 드라마다.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는 제주의 순수한 자연을 만나면서 완성된다. 이들의 사랑은 어촌 풍경과 어우러져 더 정겹고, 더 아름답다.

평대리와 하도리는 제주도에서도 물빛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 김녕해수욕장과 월정리·평대리·세화리·하도리로 이어지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영화만큼 아름답다.

제주/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1.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2.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3.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4.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2024년 음원 강자는 아이유·임영웅·에스파 5.

2024년 음원 강자는 아이유·임영웅·에스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