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이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에서 감귤 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감귤박물관 제공
찬바람이 불면 감귤이 노랗게 익어간다. 우리 가족이 사는 서귀포 지역에는 특히 감귤 농가가 많아서 지천으로 널린 게 귤밭이다. 이주 첫해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그냥 지나갔는데, 올 겨울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귤 따기 체험을 해보려고 벼르던 차다. 서귀포시 신효동에 있는 ‘감귤박물관’(서귀포시 효돈순환로 441)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와, 귤이다!”
막 세 돌이 된 큰아이가 귤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 가위를 하나씩 받아든 채 감귤을 따 먹기 시작했다. 한 나무에서 나는 감귤 맛이 비슷해 하나씩 먹어보고 맛있는 나무의 귤을 집중적으로 따는 게 요령이란다. 현장에서 따 먹는 귤은 제한이 없고, 가져가는 건 1인당 1㎏으로 정해져 있다. 많이 먹는 게 남는 거다. 정신없이 귤을 따 먹었다.
자기도 해보겠다는 아이에게 가위를 쥐여주고 함께 감귤을 땄다. 직접 딴 감귤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기고는 한 조각 입에 넣은 아이는 맛있다 못해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탱글탱글하고 달콤해!” 날이 갈수록 맛 표현이 늘어가는 첫아이를 보며 부엌일을 책임지고 있는 육아 아빠로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가위로 감귤을 한두 개 따더니, 나중에는 우악스럽게 잡아당겨 감귤 껍질이 상했다. 다 먹고 가는 수밖에 없다. 아직 21개월밖에 안 된 둘째도 그전까지는 특유의 신맛 때문에 감귤류를 잘 입에 대지 않았는데, 나무에서 막 따낸 싱싱한 감귤 조각은 오물오물 잘도 씹었다. 하늘은 높고 감귤은 달았다. 큰아이는 그다음부터 차를 타고 가다 귤나무를 볼 때면 “귤 따러 갈까요”라고 묻는다.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큰아이 생일에는 아내가 감귤 케이크를 만들었다. 제주에 와서 생긴 아내의 새로운 취미가 제과제빵이다. 시트로 쓸 스펀지케이크를 굽고, 생크림을 쳐서 얹었다. 감귤의 속껍질을 정성스럽게 벗겨 장식했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수상한 재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감귤 케이크를 앞에 둔 아이는 스스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했다. 서귀포에 사는 섬 소년의 생일상답다.
감귤박물관에서는 감귤의 역사도 배울 수 있다. 언제부터 제주에서 감귤이 재배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사>에도 탐라에서 감귤을 조정에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단다. 조선에서 감귤은 귀한 진상품이었는데, 외국에서 사신이 올 때 감귤을 내어 대접했고 종묘 제사에도 쓰였다고 한다. 탐라에서 감귤이 조정에 당도한 것을 기념하며 ‘황감시’(黃柑試)라는 과거도 열었는데 임금이 유생들에게 귤을 나눠 주고 즉석에서 시제를 냈다. 정조 때는 황감시에서 점잖은 유생들이 서로 감귤을 더 받으려고 분탕질해 당사자들을 문책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제주인들의 애환도 담겨 있는 게 감귤의 역사다. 워낙 귀한 진상품이다 보니 관청에서 가가호호 감귤 나무의 수와 열매가 몇 개 열렸는지까지 상세히 기록해 손실이 생기면 농민들이 변상해야 했단다. 감귤 나무를 재배하면 면포를 상으로 줬고, 노비에게는 면천의 혜택을 줬다. 하지만 작황이 좋지 않으면 면포를 회수하거나 다시 노비로 되돌렸다. 새가 쪼아 먹어도 관리하는 사람이 책임졌다. 워낙 까다로운 일이라 뿌리에 뜨거운 물을 몰래 부어 감귤 나무를 죽이는 일도 흔했다.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수령 100년 이상 된 재래 감귤 나무는 제주 전역에 180여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제주 감귤의 아픈 역사도 들려주리라.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황금향 등 각종 개량 감귤류가 많은데 이것저것 먹어봐도 제철 감귤이 가장 맛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본격적으로 제철 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다. 날마다 집 안에는 귤껍질이 쌓여갈 것이다. 귤껍질을 쟁반에 펴놓고 말리면 천연 방향제가 된다. 제주의 달콤한 겨울이, 귤 향기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글·사진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