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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광활한 목초지에 귤 껍질의 향연이 펼쳐진다

등록 2017-12-21 11:16

[제주&] 귤과 함께 물드는 겨울 제주
남원 돌담길 돌면 오렌지빛 세상
감귤 과수원의 변신 ‘낭만농장'
귤빛으로 변한 초원 ‘신풍목장’

신풍목장에서 감귤 껍질을 넓은 초지에 말리고 있다.
신풍목장에서 감귤 껍질을 넓은 초지에 말리고 있다.
제주에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무심코 찾아왔지만, 가을과 이별의 아쉬움은 없다.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감귤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감귤이 있는 제주 풍경은 유명했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경관이 아름다운 12곳 경승지를 ‘영주십이경’(瀛洲十二景)이라 했다. 성산일출, 사봉낙조, 영구춘화에 이어 귤이 익어가는 제주성에 올라 주렁주렁 매달린 귤을 바라보는 ‘귤림추색’(橘林秋色)을 12경 중 4경으로 꼽았다. 검은 돌담과 지붕이 낮은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함께 소담스럽게 매달린 귤 풍경은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겨울에 보는 주황색 때문인지,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포토존에서 연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포토존에서 연인이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의 제1 귤 생산지는 당연히 ‘제주’다. 국내 귤 생산량 99%를 차지한다. 제주 전역에서 감귤이 생산되지만, 특히 많이 생산되는 곳은 서귀포다. 제주에서는 서귀포 지역을 한라산 남쪽에 있다 하여 산남 지역으로 부른다. 산남 지역이 감귤로 유명한 것은 한라산 때문이다. 제주도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한라산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비구름을 막아 1년 내내 산남 지역에 넉넉한 강우량을 만들어주고, 겨울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베리아 바람을 막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산남 지역에는 해를 가리는 오름이 적어 일조량이 좋다. 산남 지역의 감귤이 신맛이 덜하고 당도가 높아 맛있기로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서귀포 어디를 가나 귤나무가 있는 풍경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감귤 풍경뿐만 아니라 감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풍경도 볼 수 있는데, 서귀포시에서 귤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남원읍 감귤 과수원을 체험 농장과 포토존으로 활용한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감귤 껍질을 넓은 목장에서 말리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신풍목장’, 오래된 마을 감귤 창고를 개조해 분위기 좋은 카페로 이용하고 있는 ‘감귤창고’가 대표적이다.

남원읍의 초가집
남원읍의 초가집
제주도 동남쪽, 서귀포시와 표선읍 사이에 남원읍이 있다. 제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없지만, 감귤이 익어가는 소박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남원읍은 제주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아 귤이 맛 좋기로 유명하다. 제주도 감귤 총생산량 중 무려 24%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마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감귤 과수원을 쉽게 볼 수 있다. 남원읍의 감귤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리적 요인도 있다. 남원읍은 제주의 관문인 제주공항과 반대 방향에 있고, 그 사이에 거대한 한라산이 자리하고 있어 아직도 제주의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다. 남원읍 신례리 중산간을 가면 제주의 옛 가옥과 감귤 나무가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신례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양금석 가옥(제주민속자료 3-45) 주변이 으뜸이다. 제주도 전통 초가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양금석 가옥은 60여 년 전에 지어진 양씨 종가댁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와 바깥채를 통틀어 방이 넷이고 툇마루가 셋이며, 마루방 셋이 배치된 전통적인 제주 가옥을 보여주는 소중한 건축물이다. 특히 감귤 나무로 둘러싸여 더욱 제주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곡차곡 쌓인 돌담길과 노랗게 익은 귤들 사이로 보이는 제주 초가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남원읍이 감귤이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라면, 서귀포시 안덕읍 상창리의 낭만농장 귤밭 76번지는 감귤 과수원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오랜 시간 마케팅 일을 했던 제주 출신 박원석씨는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과수원을 손수 꾸미기 시작했다. 기존 감귤 과수원 풍경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이색적인 농장으로 만들었다. 귤을 딸 수 있는 체험 농장과 함께 과수원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배치해 포토존을 만들었다. 노랗게 익은 감귤과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금세 입소문이 났다. 감귤 나무 사이에 놓인 귀여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요즘 말로 ‘인생 샷’이다. 이 때문인지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원읍이나 낭만농장과 달리 서귀포시 신풍목장은 감귤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신풍목장은 목장이지만 중산간이 아닌 해변에 펼쳐져 있어 이국적이다. 초원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 덕분에 눈이 시원하다. 신풍목장은 새싹이 돋는 봄과 풀이 무성한 여름도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광활한 목초지는 놀랍게도 오렌지빛 향연이 펼쳐진다. 목초지에는 말리고 있는 귤껍질이 가득한데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거대한 대지의 예술 같다. 16만여㎡에 달하는 목장의 대부분이 감귤 껍질로 덮여 있다. 주황빛 들판에 취해 걷다 보면 시원한 바다 냄새와 함께 상큼한 귤 냄새가 코를 자극해 더욱 매력적이다. 옥빛 바다 앞에 펼쳐진 주황 물결을 보기 위해 일부러 겨울에 찾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신천목장과 신풍목장은 표선과 성산 사이 일주도로에서 찾아 들어가면 된다. 신천목장은 탐방객을 위해 목장 출입로를 개방했는데, 온평리 해안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바다 목장에 이른다. 길 오른편엔 신천목장 돌담이, 왼편엔 신풍목장 돌담이 마주하고 있다. 왼쪽 돌담을 지나 들어가니 오렌지빛 세상이다.

감귤창고
감귤창고
감귤뿐만 아니라, 감귤 창고도 새롭게 변했다. 서귀포시 안덕읍 서광동리에 있는 카페 ‘감귤창고’가 눈에 띈다. 카페 건물은 1970년대 만들어진 마을 공동 감귤 창고다. 오랜 시간 방치된 창고를 주민들이 힘을 모아 멋스러운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 외관은 과거 감귤 창고 그대로지만 커다란 문과 창문을 내고 멋스러운 인테리어로 새롭게 변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높은 천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목재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인테리어 소품들이 따스한 느낌을 줘 매력적이다. 그래도 이 카페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메뉴다. 이곳에서 파는 모든 메뉴는 서광동리 마을에서 나는 ‘귤’로 만들었다. 한라봉 차, 댕유자차, 감귤 크런키 귤꿀 팬케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카페에 앉아 귤향이 진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따스해진다.

만물이 움츠러드는 겨울이지만 제주인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다. 초록의 감귤이 주황빛으로 변해갈수록 감귤을 따는 농부들의 일손은 분주해지고 감귤을 실어 나르는 차들은 도로를 신바람 나게 달린다. 겨울이지만 춥지 않은 풍경을 품은 제주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보자.

남원읍

남원읍은 제주도 감귤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큰엉경승지가 대표적이다. ‘큰엉’은 제주도 말로 ‘큰 언덕’이라는 뜻으로 커다란 기암절벽이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15~20m 높이의 절벽 아래로 아름다운 쪽빛 제주 바다가 펼쳐져 있다. 거대한 절벽과 푸른 바다가 만나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의 풍경이 장관이다. 제주의 대표 봄 축제인 ‘고사리 축제’가 매년 4월 남원 중산간 지대에서 열리고 천연기념물 156호로 지정된 왕벚나무 자생지가 신례리에 있다.

주소: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낭만농장 귤밭 76번지

귤 체험 농장이다. 단순한 체험 농장이 아니라 과수원 곳곳에 예쁜 인테리어 소품과 조형물을 설치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독특한 농장이다. 입장료는 2000원, 귤을 딸 수 있는 체험비는 1만5000원이다. 직접 수확한 감귤을 은색 양동이에 담아 가져갈 수 있다. 귤을 수확하는 겨울에만 문을 연다. 영업 시간은 오전 10:00~15:00로 짧다. 주위에 카멜리아힐, 본태박물관 등 제주 대표 관광지가 있다.

주소: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병악로 76 전화: 070-4001-5303

신풍목장

16만여㎡(5만 평) 초지에 10만 톤의 감귤 껍집을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목장에 들어가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다. 해풍을 맞으며 자연 건조된 귤껍질은 약재와 화장품 재료로도 쓰인다. 남해상사의 사유지이지만 여행객들을 위해 무료 개방했다. 목장 넘어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어 일몰 때 더욱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영화 <내 생에 봄날>, <각설탕> 등의 무대가 되었다. 올레길 3코스로 이어져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개방 시간에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니 목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삼가야 한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감귤창고

한때 마을에서 수확한 귤이 가득했던 마을 공동 감귤 창고였지만, 수입 과일과 유통산업의 변화 등으로 한동안 방치됐던 감귤창고를 서광동리 주민들과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힘을 모아 멋스러운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뿐만 아니라 공연장과 게스트하우스도 있는데, 공연장에서는 주민들이 참여한 뮤지컬이 열리기도 한다. 영업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주소: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동로25번길 13 전화: 064-792-9004

제주/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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