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파리의 카페는 단지 차나 음료를 팔던 곳은 아니었다. 그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를 논쟁하는 공간이었으며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명동의 카페 ‘가무’에는 지금도 46년 전 팔았던 비엔나 커피가 있다. 낡은 나무 벽과 창틀, 1970년대 고관대작 거실에서나 있었을 법한 전등 등이 예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 인공지능이 친구가 되는 시대지만, 가무가 파는 건 누군가의 추억이 복원되는 계기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무를 찾았던 20대 자신이 보인다.
이렇게 카페는 누군가의 삶에 쑥 들어가는 재주가 있다. 지금 제주엔 이런 카페들이 넘쳐난다. 파는 먹거리도 식당만큼 다양하다. 어디를 골라야 할지 난감할 때, 올해 3회를 맞은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 2018’ 주최 측이 뽑은 ‘제주 카페 30선’을 참조하면 좋다. 계절의 꽃 5월, 작은 지도 한 장 들고 제주 카페 투어에 나서보자.
# 제주 식재료 활용한 카페들의 영토, 섬의 남쪽
―빌라드아토, 고사리김밥 들어나 봤나!
서귀포시에서 가장 이름난 관광지는 ‘이중섭 거리’. 그곳엔 분홍색 벽으로 여행객을 잡아끄는 카페 빌라드아토가 있다. 테이블이 5개뿐인 작은 카페지만 ‘카롱카롱해 스무디’, 인절미라테, 고사리와 달걀 등이 들어간 고사리김밥, 흑돼지샌드위치가 인기인 곳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문 닫는 날을 알려주니 여행 전에 확인해야 한다. (서귀포시 태평로 413/ 064-763-7374)
―귤나라, 와랑와랑
돌담 밖 감귤밭과 인근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큰 구경거리인 카페다. 나무와 돌로 장식한 실내는 마치 강아지 두 마리가 주인인 양 떡하니 앉아 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감귤로 만든 영귤차, 영귤에이드, 감귤 스무디, 질 좋은 당근 생산지인 구좌읍의 당근을 짜 만든 당근주스도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 300번길 2/ 070-4656-1761)
―와토커피는 사랑방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와토커피는 ‘와토 알프스’란 특이한 메뉴가 있다. 보기엔 커피에 달콤한 크림이 올라간 평범한 모양새지만 한 모금 맛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주민과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하모로 238/ 일요일 휴무)
―창고의 변신, 키아스마
감귤 창고를 리모델링한 브런치 카페다. 새우를 마늘, 올리브유 등과 볶아 만든 ‘알 아히요’, 토마토소스에 새우 등을 조리한 ‘감바스 까수엘라’ 등이 인기다. 커다란 창고에 무심하게 배치한 듯한 식탁과 의자, 가구는 소박하면서 세련미가 넘친다. 좁아서 5명 이상은 들어가기 힘들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 255/ 070-4222-0102/ 수요일 쉼)
―칵테일은 바다다
세련된 조명과 라운지 음악을 내세우는 바다다는 여느 제주 카페와는 다른 풍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파도 소리와 하우스 음악 선율이 합쳐져 독특한 정취를 선물한다. 옥상에 있는 아늑한 의자에 앉아 ‘한라스프링 칵테일’을 한잔하면 세상 부러운 게 없다. 와인, 맥주, 위스키 등 다양하다. (서귀포시 대포로 148-15/ 064-738-2882)
# 섬의 서쪽은 세련된 커피와 우유 천지
―우유가 유명해 우유부단
명성이 높은 이시돌 목장의 우유로 만든 디저트 메뉴가 인기다. 홍차, 밀크티, 아이스크림 등. 주변에 푸른 목초지, 예쁜 벤치 등이 있어 예비 부부들이 사진 촬영차 많이 온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동길 38/ 064-796-2033)
#개성 강한 카페들, 섬의 동쪽
- 방송 탔어요, 카페 델문도
한국방송(KBS)의 <1박 2일> 촬영지로 유명하다. 고급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추출한 커피를 판다. 카페가 소유한 이 기계는 전 세계에서 60대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백꽃 칵테일’도 인기다.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19-10/ 064-702-0007)
―팥과 티라미수의 절묘한 합체, 미남미녀
최근 카페촌으로 뜨고 있는 종달리에 있는 카페다. 서양식 디저트를 우리 입맛에 맞게 바꾼 ‘팥 티라미수’ ‘카스텔라 인절미’ 등이 인기다. ##매우 조용한 카페로 5명 이상 단체 손님은 들어가기 어렵다. 심지어 ‘노 키즈 존’이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1길 102/ 010-9014-5937/ 목요일 쉼)
#도심의 원형을 살리는 섬의 북쪽
―쌀가게의 탈바꿈, 쌀 다방
과거엔 쌀집이었던 곳이다. 그때 썼던 간판과 가구들이 그대로 있어 고풍스럽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쌀다방라떼’. 인근에 있는 동문시장에서 빻아 온 곡물에 우유, 에스프레소를 넣어 만든 음료다. 카페 안엔 소박한 소품도 전시돼 있어 볼만하다. (제주시 관덕로4길 7/ 070-7785-9160)
글 박미향 기자, 사진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 2018’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