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이민자의 제주살이 우리 아이 최고 놀이, 고사리 꺾기
천지 사방에 널린 게 고사리
4월 중순부터 5월까지가 절정
재미와 함께 좋은 용돈 벌이도
천지 사방에 널린 게 고사리
4월 중순부터 5월까지가 절정
재미와 함께 좋은 용돈 벌이도
1년을 기다렸다. 고사리 철이 시작됐다. 작년 봄, 문득 ‘고사리를 꺾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찬도 만들고, 말려서 포장해놓으면 지인들에게 좋은 선물도 되지 싶었다. 아내와 자주 산책하곤 했던 동네 뒷산에 일단 올라가봤다. 어라? 널린 게 고사리다. 세상에 이럴 수가! 노다지가 지천이었구나. 아내와 나는 정신없이 고사리를 챙겨 담기 시작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묻는다. “뭐 하고 계세요?” 에헴! 현지인의 ‘포스’를 뽐낼 순간이다. “고사리 합니다. 이 주변에 많이 나네요.” 할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거 고사리 아닌데요? 내 눈엔 고사리가 안 보이네요.” 이럴 수가! 평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티를 냈다. 알고 보니 그건 먹을 수도 없는 ‘뱀고사리’였다. 통통한 식용 고사리보다 훨씬 작고 가늘어서 맨눈으로도 금방 구분이 된다. 잡풀을 고사리랍시고 꺾고 앉았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뒤돌아선 아내는 조용히 비닐봉지 속 풀을 쏟아버렸다.
어쨌든 그때부터 부지런히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다. 조금 해보니 금방 요령이 생겼다. 고사리를 꺾는 일은 아이에게도 즐거운 놀이다. 작년에 4살이었던 첫째 아이도 곧잘 고사리를 구분해 꺾을 줄 알게 됐다. 시무룩해 있다가도 고사리 하러 가자면 금방 신이 나서 뛰어나가는 수준이다. 생나물 반찬을 해주면 어린아이가 고사리 줄기를 국수처럼 잘도 먹는다.
부부가 두어 시간 산에서 고사리를 꺾으면 커다란 솥에 두세 번은 가득 삶을 분량이 됐다. 일부는 생나물로 볶아 반찬을 하고, 나머지는 지붕에서 말렸다. 좋은 볕에 말린 한라산 고사리를 지퍼백에 담아놓고는 제주에 여행 온 지인들을 만날 때면 은근히 뿌듯해하며 한 봉지씩 건넸다. “아들이 꺾은 고사리랍니다.”
제주에서 ‘고사리 장마’라고 이르는 봄비가 내리고 나면, 중산간 이상의 산길 곳곳에서 ‘거동 수상자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모자와 장갑, 장화로 무장하고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둘렀거나 커다란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고사리꾼들이다.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가 절정이다. 이 시기 고사리는 좋은 용돈 벌이도 된다. 지역 농협에서 수매도 해준단다. 마음먹고 새벽별을 보면서 부지런히 움직이면 수백만원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생각날 때마다 잠깐씩만 돌아다녀도 반찬하고 선물할 만한 양은 넉넉히 된다.
고사리를 꺾는 행위는 손맛이 절반 이상이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천지 사방이 고사리다. 한라산 고사리는 꺾어도 아홉 번까지 다시 자란다고 했던가. 오전에 딴 자리를 오후에 다시 가보면 또 고사리가 한가득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라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예리한 눈으로 목표물을 포착한 뒤 얇은 장갑을 낀 손으로 줄기를 감싸 쥐고 살짝만 눌러본다. 너무 길게 끊으면 질길 수 있으니, 야들야들한 부분을 탐지하고 한 손가락으로 톡! 밤새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부끄러운 고개를 내민 한라산 햇고사리가 농염한 자태를 뽐내며 내 손에 들려 있다. 아내는 가끔 고사리를 따러 다니는 꿈도 꾼다고 한다. 조금 움직이다 보면 제법 운동도 된다.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봄나들이다. 물론 진드기는 조심해야 한다.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 가는 곳에서는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호루라기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백고사리와 흑고사리(자왈고사리)가 있는데, 푸릇푸릇한 백고사리는 주로 중간부터 세 줄기로 갈라져 자라고, 훨씬 더 통통하고 거무튀튀한 흑고사리는 곧게 한 줄기로 뻗어간다. 모두 식용인데, 흑고사리를 더 상품으로 친단다. 잎이 활짝 핀 고사리는 억세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미안하지만 발품을 팔며 알아낸 고사리 터는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팁은 있다. 일단 중산간 이상 고도의 도로를 다니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고사리꾼 차림을 한 사람들이 목격되거나 특별히 관광지도 아닌데 차들이 늘어선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고사리 터다. 남원읍 수망리 일대가 고사리 산지로 유명하다. 바로 지금이다. 오동통한 한라산 고사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장 짐을 꾸릴 일이다.
글·사진 송호균 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
송호균씨의 아내와 아이들이 고사리를 꺾고 있다.
고사리를 들고 즐거워하는 송호균씨의 아들.
흑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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