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박민영이 연기한 주인공 김미소는 비서계의 슈퍼히어로라 할 만하다. 까다로운 부회장(박서준) 곁을 무려 9년이나 지키며 일을 처리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기약 없는 퇴근을 하고,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부회장의 예고 없는 호출을 대기하면서 말이다. 김비서가 자신의 삶을 업계 최고 대우와 뒤바꾼 이유는 빚더미에 오른 가족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자 부회장이 그를 붙잡는다. 그 과정에서 감정을 주고받던 회장과 비서, 아니 두 남녀는 연애를 시작한다.
줄거리만 딱 봐도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기 힘든 ‘캔디’ 스토리다. 그런데도 많은 시청자가 이 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김미소 때문이다. 센스면 센스, 능력이면 능력, 경험이면 경험 무엇 하나 빠지는 데가 없다. 9년 동안 비서라는 한 우물만 판 그가 경험을 무기 삼아 자기 잘난 줄 아는 부회장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운이 매우 좋다고 할까, 아니면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고 할까. 박민영은 이 드라마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배우가 아니다. 데뷔작인 ‘국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 공부는 못하지만 달리기를 잘하고 당돌하며 사연 많은 여고생 유미를 연기해 극에 큰 반전을 선사했다. 이후 사극 <성균관 스캔들>(2010)에서 남장 여자 ‘윤희’를 맡아 배우로서, 배역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기에 갈증이 컸을까. 드라마를 찍자마자 첫 영화이자 공포영화인 <고양이: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2011, 이하 <고양이>)를 연이어 작업했다. <고양이>를 찍은 뒤 곧바로 드라마 <시티헌터>(2011)에 합류해 밝고 활달한 청와대 경호원 ‘나나’로 변신했다.
당시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즉흥적이고 상대의 리액션을 보면서 연기하는 스타일이다. 드라마는 순발력이 필요하니 내게 맞다 싶었고, 그래서 드라마로 많이 파고들었다. 영화를 해보니 앞으로 더 해야겠다 싶더라”며 “로맨틱 코미디와 아주 진한 멜로도 하고 싶고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도 남기고 싶다. 만날 드라마만 찍으니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지금까지 영화보다 드라마를 주로 작업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길게는 1년씩 걸리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그는 쉴 틈 없이 도전을 즐겼다. “계속 알을 깨고 나오고 싶다. ‘진짜 박민영의 모습은 뭐야’ 할 정도로. 한정된 이미지를 만드는 게 상업적으로는 좋겠지만 재미없다. 배우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거였다. 편견을 계속 깨는 데서 에너지와 즐거움을 느낀다. 장르를 오가며 찬물과 더운물을 한 번씩 맛보는 게 결국 내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박민영의 당돌한 생각이다. 그의 신념대로 박민영은 이후 <닥터 진>(2012), <리멤버-아들의 전쟁>(2015), <7일의 왕비>(2017) 등 매년 드라마 한두 편씩 꾸준하게 출연해왔다.
그렇게 쌓은 경험은 2015년 중국 진출에 밑거름되었다. 첫 중국 드라마 <금의야행>을 찍고, 그다음 해인 2016년에는 로맨틱 코미디 <시광시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쉬전’은 톱스타의 매니저로, 똑 부러지는 생활력과 프로 직업 정신을 갖춘 여자다. 마치 김비서처럼.
“프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 생각한다. 배우라면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의무다. 그만큼 결과를 보여주려면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을 건 아니다”라는 그의 말대로 그가 지금 보여주는 연기는 매년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한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 사진 나무액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