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올해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는 누구일까. 송강호, 황정민 아니면 하정우? 셋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배우는 주지훈이다. 폭염 때문에 예년보다 많은 사람이 피서지로 찾는 올해 여름 극장가에서 한 주 간격으로 격돌하는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8월1일 개봉)과 <공작>(8월8일 개봉) 모두에 나란히 얼굴을 내민 그다. 그뿐이랴. <암수살인>(감독 김태균)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감독 김성훈) 두 편도 촬영해놓고 공개를 기다리고 있으니 올해는 주지훈에게 일복 터진 해라 할만하다.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린 <신과 함께-죄와 벌>과 개봉 첫주에만 무려 500만 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그가 연기한 해원맥은 천 년 동안 강림(하정우), 덕춘(김향기)과 함께 인간을 저승길로 안내하는 차사다. 덕춘과 함께 망자 허춘삼(남일우)을 데리러 이승에 갔다가 그의 집을 지키는 성주신(마동석)으로부터 자신이 천 년 전 고려시대 북방 경계 지역을 호령한 장수 ‘하얀 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인 까닭에 해원맥은 전편보다 캐릭터의 변화도, 감정의 진폭도 매우 크다.
<신과 함께-인과 연>이 저승이라는 판타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공작>은 ‘흑금성 사건’이라는 실화를 재구성한 첩보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지훈이 맡은 정무택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과장은 대북 사업가로 위장한 남한 스파이 흑금성(황정민)과 북한 대외경제위 리명운(이성민) 처장을 동시에 감시·견제하는 인물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까닭에 주지훈은 때때로 “서 있는 자세, 눈동자를 깜빡이거나 손가락을 까딱이는 움직임 하나 때문에” 오케이 사인을 받지 못했고, “매번 촬영을 마치고 나면 진이 빠졌다”고 고백했다. 그를 포함한 모든 배우가 신마다 온몸을 내던진 덕분에 <공작>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주지훈은 “칸에 올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매번 촬영 끝나면 사우나 하고 나온 것처럼 진이 빠졌다. 그래도 여기를 오니 그 고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고 칸 레드카펫을 밟은 소감을 전했다.
김성수(<아수라>), 김용화(<신과 함께> 시리즈), 윤종빈(<공작>)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그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40∼50대 ‘아재’들이 활약하고 있는 충무로에서 기죽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젊은 배우여서다. 윤종빈 감독이 주지훈을 캐스팅하면서 “황사마(친한 배우들이 배우 황정민을 부르는 애칭)를 계속 쪼아야 하는 캐릭터인데 나이가 어린데도 기죽지 않을 남자 배우가 너 말고 누가 있겠니?”라고 얘기한 것도 주지훈이 젊은 배우 중에서 믿을 만한 카드라는 뜻이다.
그가 믿을 만한 배우가 된 건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주지훈은 아이돌 출신도 아니고,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드라마 <궁>으로 데뷔했다. 이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좋은 친구들>(2014), <아수라>(2016) 등을 찍으며 이름을 알렸다. 2013년에는 성격이 다른 자매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중국 영화 <애정혐의범>에 출연해 중화권 배우 쉬제얼, 류이단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데뷔 초부터 ‘댄디’한 역할을 주로 한 까닭에 키가 크고 잘생긴 배우라고만 생각했다가 배우로서 눈에 들어온 작품이 <좋은 친구들>이었다. 세 친구가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인철은 예의와 거리가 멀고 내지르고 보는 인물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황정민, 정우성, 곽도원 등 연기 선수들과 함께 출연했던 <아수라>에서 주지훈은 “껍데기 같은 건 벗어던지고 앞뒤 안 가리고 뛰어놀았”다. ‘수컷 냄새 물씬 나는 악인들의 지옥도’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주지훈, 정우성, 황정민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흥미롭게 구축된 덕분이다.
이처럼 그는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조진웅 등 좋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경험을 점점 쌓고 있다. “나는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장에서 선배님들의 연기를 본 이후 마치 자물쇠가 탁 풀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워낙 겁이 없어서 선배들의 좋은 점은 다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직접 부딪쳐서 얻은 것들이 뭉쳐져 언젠가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게 그의 얘기다. 다음, 그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도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완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사진 영화사 월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