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600번 공항버스가 있다. 공항을 출발해 중문관광단지를 거쳐 서귀포 원도심을 오가는 버스다. 600번 버스는 지난해 버스 노선 개편 전에는 서귀포와 제주공항을 이어주는 유일한 버스로 서귀포 시민들에게 소중한 노선이었다. 버스는 중문단지에 있는 모든 특급 호텔에 정차했다. 어린 시절 공항을 오가며 본 중문관광단지는 다른 세상 같았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자란 야자수와 독특하고 커다란 호텔의 모습. 호텔 정원에 보이는 유럽식 풍차와 큰 수영장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가끔 특별한 일이 있으면 중문관광단지 호텔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고 산책했다. 그날은 마치 해외로 여행 온 기분이었다.
중문관광단지는 제주 관광의 거점으로 제주 여행자라면 꼭 한 번은 지나가는 곳이다. 1978년부터 서귀포시 중문동 일대에 조성된 중문관광단지는 면적이 356만2천㎡로, 개발이 현재 진행형인 국내 최대 종합관광단지다. 하얏트호텔, 신라호텔, 롯데호텔, 씨에스호텔, 켄싱턴호텔, 부영호텔 등 최고급 숙박시설과 골프장,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여미지식물원, 퍼시픽랜드, 박물관은 살아 있다, 플레이 케이팝 등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관광시설과 편의시설이 모여 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공항버스로 40분이면 중문관광단지에 도착한다. 5m가 넘는 야자수와 독특한 건축물, 그리고 푸른 태평양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이런 모습 때문에 중문관광단지에 머물다 보면 제주가 아닌 동남아 휴양지에 온 착각이 든다. 하지만 중문관광단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주다운 곳들이 많다. 특히 중문관광단지가 있는 중문은 제주를 대표하는 명소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중문동 면적은 56.44㎢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와 비슷하고 인구 만 명이 조금 넘는다.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 해안절벽과 폭포, 그리고 해변이 아름다워 제주도에서 가장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다. 중문에는 주상절리 암벽에서 에메랄드 빛 연못으로 떨어지는 천제연폭포, 육모꼴 돌기둥이 병풍처럼 서 있는 기암절벽 대포 주상절리, 50~60m의 절벽 아래 펼쳐진 고운 모래의 중문색달해수욕장 등이 있다.
중문관광단지 안에 ‘별내린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천제연폭포와 선임교가 있는 중문천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현지인들에게는 ‘별내린’보다 ‘베릿내’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별이 내리는 내천’이란 뜻이다. 중문천의 옛 이름은 성천(星川)으로 베릿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한라산 800고지에서 시작된 색달천이 중문천을 만나 천제연폭포를 이루고, 이 물은 중문천을 따라 흐르고 흘러 중문 앞바다에 안긴다. 전망대 아래에는 나무 데크로 산책로가 있고, 곳곳에 나무 정자가 있어 천천히 산책하기 좋다. 제주의 내천이 대부분 건천이라 비가 오는 날에만 물을 볼 수 있지만, 중문천에는 사시사철 용천수가 흐른다. 밤하늘이 맑은 날에는 물 위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만날 수 있다.
남서쪽에는 중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 중문색달해수욕장이 있다. 제주에서 젊음이 느껴지는 여름 해변을 꼽으라면 단연 중문색달해수욕장이다. 모습부터가 제주의 다른 해변과 다르다. 제주 해변들이 작은 마을과 이웃해 있는 반면 중문색달해수욕장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높은 해안 절벽에 안겨 있다. 절벽에는 천연 해식동굴이 있어 그 모습이 오묘하고 더욱 이국적이다. 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해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길이 약 560m, 폭 50m의 해변은 활처럼 굽어 있다. 해변 모래가 유독 고와 발을 넣으면 눈처럼 빠져든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을 ‘진모살해변’으로 부르는데, ‘진’이란 ‘길다’는 뜻이고 ‘모살’은 ‘모래’라는 제주어다. 흑, 백, 적, 회색의 네 가지 색 모래가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사람들은 모래가 곱고 해변이 넓어 일광욕, 축구, 비치발리볼 등 다양하게 해변을 즐긴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파도다. 다른 해변에 비해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들어 서핑족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찾아온다. 한국에서 서핑을 즐기기 가장 좋은 파도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 바로 중문색달해수욕장이다.
현지인에게는 중문색달해수욕장보다 ‘조른모살해변’이 더욱 유명하다. 중문 하얏트호텔 예래동 방향 뒤쪽 아래 바닷가로 내려가면 조른모살해변이 있다. ‘조른모살’은 ‘작은 모래’를 일컫는 제주어로 중문색달해수욕장보다 작아서 그렇게 부른다. 위압적으로 깎아내릴 듯한 높은 절벽에 안겨 있는 작은 해변이 이국적이면서도 고즈넉하다. 절벽 때문에 세상의 소리는 차단돼 들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 해변을 메운다. 낙석 위험 등 때문에 출입이 통제됐지만 먼발치서 해변을 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여기서 조금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중문에 숨겨진 비경 갯깍주상절리가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바다와 만나 급격히 식으면서 부피가 수축해 틈(절리)이 생긴 삼각 또는 육각 형태의 기둥(주상)을 말한다. 40m 높이의 주상절리를 코앞에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일부러 만들어놓은 모던한 설치미술 작품처럼 보인다. 갯깍주상절리 앞 해변 길은 몽돌이 많아 운동화가 필수다.
중문동을 얘기할 때 약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에는 예로부터 1만2천의 신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제주에는 성당이나 사찰, 교회보다 다양한 신을 모시는 신당이 더 많다. 이런 제주에 동양에서 가장 큰 법당이 있는 절이 있다. 중문관광단지와 이웃한 대포동의 약천사다. ‘약수가 흐르는 절’이란 뜻을 지닌 사찰로 과거에는 실제로 물맛이 좋은 약수터로 ‘도약 샘’이라 불렀다.
처음 약천사가 만들어진 때는 1981년이다. 당시에는 법정사 작은 암자였는데, 예인 스님이 주변 부지를 크게 확보해 대도량을 짓고 ‘약천사’라 이름 붙였다. 약천사에 두 번 놀라게 되는데, 처음에는 마치 중국에서나 볼 법한 규모에 놀라고, 5m 되는 비로자나불이 4m 높이의 좌대에 안치된 모습에 한 번 더 놀란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은 높이가 30m에 이른다. 일반 건축물로 치면 10층 높이다. 이 거대한 스케일은 잠시 이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아담한 한국 사찰에 익숙한 여행객들은 엄청난 규모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이밖에 요사채, 굴법당, 사리탑 등도 갖추고 있다.
3층으로 된 법당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비로자나불 앞에서 정성스레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내 마음이 경건해진다. 2∼3층에도 많은 중생이 모여 마음을 모아 불공을 드린다. 제주의 자연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새벽 예불 후 오름에 올라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계를 체험하고, 오후에는 울력과 다도 참선 등 수행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밤이 찾아와도 중문의 매력은 식을 줄 모른다. 중문에는 여름밤을 뜨겁게 달구는 라운지바가 있다. 중문색달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더 클리프’와 대포동의 ‘바다다’가 대표적이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있는 이 두 곳은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다양한 칵테일과 위스키 등 각종 음료를 마실 수 있다. DJ들은 음악을 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세상에 뿌린다. 그곳에 누워 중문의 8월 밤바다를 바라보면 더위는 잠시 모습을 감춘다.
여름은 이열치열이라 하지 않던가. 8월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에너지가 넘치는 중문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게 어떨까? 뜨거운 용암과 차가운 바다가 만나 만들어진 독특한 모양의 주상절리처럼 당신의 8월도 특별해질 것이다.
별내린전망대 서귀포시 색달동 2938-1
중문색달해수욕장 서귀포시 색달동 3039
조른모살해변 서귀포시 중문관광로72번길 114
갯깍주상절리 제주 서귀포시 예래해안로 357
약천사 제주 서귀포시 이어도로 293-28
바다다 서귀포 대포로 148-15, 10:00∼01:00
더 클리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154-17, 10:00∼24:00
글·사진 문신기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