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이영훈(38)씨는 10대 때부터 ‘무작정’ 서울이 싫었다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더웠다. 주위를 둘러봤다. 분주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똑같이 힘들어 보였다.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어요.”
그 뒤로 이씨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20대 중반에 제주도 여행을 왔다가 그중 한 가지 고민을 해결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만한 곳이 바로 제주도임을 직감했다. 막연하게 레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윈드서핑 지도자 자격증과 배를 몰 수 있는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를 땄다. 대학 때 전공은 문예창작이었지만, 미식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다. 조용히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 경쟁에 뛰어들 타입은 아니었던 셈이다.
서울에 살 때 단골로 다녔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셰프의 요리가 ‘무작정’ 재미있어 보였다. ‘탁탁탁’ 리드미컬한 양파 써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골 식당에 직원으로 들어가 어깨너머로 요리와 요식업을 배웠다. 그리고 30대 초반인 2011년 드디어 제주 이주를 감행했다.
이씨는 서귀포 시내에서 ‘피시앤칩스’를 테마로 한 요리주점 ‘솔피시’를 열었다. 지금은 제주 전역에 생선 튀김과 감자 튀김을 함께 내놓는 피시앤칩스 가게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다. 일종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셈이다.
제주산 장대(양태)로 만든 생선 튀김과 터키식 고등어 샌드위치를 주메뉴로 내세웠다. “제주산 생선은 모두 맛있어요. 그런데 흔한 회나 조림, 구이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생선에 접근하고 싶었어요.” 솔피시는 서귀포의 이색 맛집으로 꽤 많이 알려진 명소가 됐다.
2017년 이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미트볼’이다. 제주산 돼지고기를 사용하지만, 피시앤칩스와 마찬가지로 미트볼은 새로운 시도였다. 친구들과 가게 이름을 두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나누다 농담처럼 ‘칠십리 고기완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좌중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칠십리’는 서귀포의 옛 지명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처럼 던진 ‘칠십리 고기완자’는 이씨의 두 번째 가게 이름이 됐다. 지금은 솔피시 운영을 잠시 중단하고 미트볼에 집중한 상태다. 맛도 맛이지만,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느낌 있는 플레이팅으로 ‘칠십리 고기완자’는 여행객과 도민 모두에게 인기가 좋다.
그의 요리 인생은 많은 부분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아내 고아라(40)씨에게 빚지고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제주로 내려온 두 사람이 이제는 제주에서 5살과 3살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제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뜨거운 여름날이면 바닷가에서 아예 살다시피 한다. 이주한 지 7년이 됐지만 매일 아침 제주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새롭게 감동한다는 이씨는 “서울에 있을 때는 만성 두통이나 비염에 시달렸는데 제주에 온 뒤로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큰 변화였다. 아내 고씨는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이 둘을 낳고 육아하느라 계속 집에만 있었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든 남편과 상의하고 의논할 여유가 있어서 좋다”고 했다.
가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씨는 슬슬 ‘취미생활’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가게 운영에 집중하느라 서핑도 별로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서프보드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싶어요. 참, 낚시도 배우고 싶고요.”
그에게는 또 다른 꿈도 있다. “언젠가 소설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주제는 아마도 제주도에서의 삶이 아닐까요?” 일찌감치 탈출을 꿈꾸던 서울 사람 이씨는 그렇게 사람 좋은 미소로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제주 사람’이 됐다. 서귀포시 태평로에 있는 ‘칠십리 고기완자’는 매일 밤 10시까지 영업하며, 브레이크 타임은 오후 3~5시다.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