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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주엔

추사의 숨결 따라 걷는 사색·인연·집념의 길

등록 2018-11-14 11:32수정 2018-11-14 15:58

[제주&] 추사 유배길 기행 ①
동계 정온 유배지 송죽사
정난주 마리아 묘 옆의 억새
아기자기한 대정 골목길
추사 유배길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추사 유배길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청명한 제주의 가을이다. 대정고을 어디에서나 산방산과 단산, 모슬봉과 한라산이 보인다. 수확의 계절을 맞은 밭에서는 주민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대정고을 추사관을 시작으로 추사의 숨결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여럿 있다. 지난 2011년 5월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스토리텔링학과가 중심이 돼 만든 ‘추사 유배길’은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길은 1코스 ‘집념의 길’, 2코스 ‘인연의 길’, 3코스 ‘사색의 길’로 나뉘어 있다. 가장 많은 탐방객이 따라 걷는 길은 ‘집념의 길’이다.

대정고을에 있는 추사 관련 유적들을 둘러보며 그의 유배 생활을 음미해보는 길이다. 제주 추사관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본격적인 추사 유배길을 시작하자 곧바로 송죽사 터의 푯말이 보인다. 주변은 감귤밭으로 변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곳은 동계 정온이 유배를 와서 살던 곳이다. 정온은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인 자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1614년 대정에 유배돼 10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대정현감이 그를 위해 서재를 지어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다. 정온이 유배 왔던 사실을 아는 추사의 건의로 1842년 제주목사 이원조가 이곳에 ‘동계 정온 적려유허비’를 세웠고, 이듬해 이곳에 정온의 절개를 소나무와 대나무에 비유해 송죽사를 건립하고 정온을 봉향했지만,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유허비는 몇 차례의 이동 끝에 현재는 보성초등학교 안에 있다. 이곳에서 100여m 더 가면 송계순의 집터가 나오지만 역시 흔적은 없다.

추사유배길
추사유배길
좁은 길은 전형적인 제주의 올레길 모양이다. 대정고을의 식수원이었던 우물터 ‘드레물’과 보성초등학교의 동계 정온 적려유허비를 지난다. 드레물 맞은편은 1901년 신축 민란을 일으켰던 장두 이재수의 집터다. 드레물 앞에 있던 민란을 일으킨 세 장두를 기리는 ‘제주대정 삼의사비’는 1961년 세워졌으나, 추사유배지 정거장 앞에 1997년 새로운 비석을 세우면서 그 앞에 묻혔다. 보성초등학교를 나와 오른쪽으로 걷는 길에는 복원된 대정성지가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성벽이 남아 있다. 복원되지 않은 성벽도 높이와 너비가 상당한 규모였음을 보여준다. 그 옆에는 추사의 두 번째 적거지 주인인 강도순의 증손자 강문석이 1925년 설립했던 한남의숙 터였다는 표시가 있다. 올레길을 닮은 대정고을의 골목길은 아기자기하다. 돌담 너머로 노랗게 익은 감귤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계 정온 적려유허비. 병자호란 때 우국충정을 보여준 동계 정온을 기려 세운 것이다.
동계 정온 적려유허비. 병자호란 때 우국충정을 보여준 동계 정온을 기려 세운 것이다.
그 길 사이로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딸이자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로, 제주에 유배돼 37년간의 긴 유배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 여인 정난주 마리아를 만나러 간다. 추사가 유배되기 2년 전인 1838년 눈을 감았다. ‘신앙의 증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는 정갈하게 다듬어졌다. 추사는 다산을 존경했고, 아들들과도 가까운 사이여서 인연이 깊다. 마침 천주교 순례객들이 성지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정난주 마리아 묘는 제주올레 11코스이자, 천주교 순례길에도 포함돼 있다. 듬성듬성 피어난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길가 밭에는 양배추가 짙은 녹색을 내뿜고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일주도로변 남문지에 이른다. 이 못에는 추사의 제자 소치 허련이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을 새긴 입석이 있다. 그러나 입석의 그림은 많이 퇴색해 아쉬움을 남긴다.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방사탑, 뒤쪽에 단산이 보인다.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방사탑, 뒤쪽에 단산이 보인다.
이곳에서부터는 대정향교로 가는 농경지 사이를 걷게 된다. 짙은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단산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마늘과 양배추, 무의 녹색 잎이 평야를 덮었고, 감귤이 탐스럽게 노랗게 익었다. 추사는 감귤을 통해 ‘지조와 향기로운 덕’을 칭송한 바 있다. 여기저기서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는다. 밭 한가운데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방사탑이 보인다. 단산은 부드러운 능선을 보여주는 오름들과는 달리 날카로운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라고 하여 바굼지오름이라고도 불렀다. 정비된 길을 따라 오름 정상까지는 왕복 1시간 남짓 걸린다. 단산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조선인들을 동원해 만든 갱도 진지도 있다. 단산을 지나면 바다가 보이고, 밭 너머로 산방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정향교를 향해 걷다 보면 그 옆에 작은 돌담을 두른 샘 ‘세미물’이 나온다. 추사가 마시던 물이다. 단산 아래 자리한 대정향교는 주변의 큰 소나무, 팽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관광버스가 한 대 멈춰 서더니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내려 향교를 둘러본다. 모두 11개의 건물로 이뤄진 대정향교는 1420년(세종 2)에 대정성 북쪽에 처음 지어진 뒤 여러 차례 옮겨지다가 1653년(효종 4)에 현 위치에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추사가 써준 ‘의문당’이라는 현판이 학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에 걸려 있었다. 추사가 제주의 청년들과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추사는 이곳을 거닐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1코스는 8.6㎞, 도보로 3시간 남짓 걸린다.

제주/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 시대 악명높은 유배지였던 제주

섬은 운명적으로 유배지의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의 코르시카 섬, 이탈리아의 엘바 섬, 그리스의 마크로니소스 섬과 기우라 섬 등은 모두 악명높은 유배지였다. 제주도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원이 고려의 삼별초를 정벌한 뒤 도적과 죄인들을 제주도로 보내면서 제주도의 유배지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가 본격적으로 유배지로 이용된 것은 조선 시대였다. 제주도는 중앙과 가장 멀리 떨어진 데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유배지가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 대정현은 그야말로 원악지(遠惡地·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살기가 어려운 곳·유배지)였다. 제주에는 주로 정치범이 유배됐지만, 유배인들의 면면을 보면 왕족과 외척, 승려, 환관 등 다양했다. 조선 시대 제주에 왔던 유배인은 200여명 정도로 조선 후기 접어들며 많이 늘었다. 조선 시대 정치인들은 학자이자 예술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제주에 유배된 자들은 정치적인 역할은 없어졌다 해도 학자나 예술가가 지녀야 할 자세는 더욱 굳건해졌다. 이들은 제주의 유림과 친교를 맺었고, 청년들을 놓고 교육해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를 계기로 유명한 정치인들이 유배되면서 독특한 제주 유배문화가 형성됐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유배 온 김만희, 조선 중종 때 왕도정치를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김정, 광해군이 어머니 인목대비를 폐위한 데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던 이익, 광해군, 소현세자의 세 아들, 종교박해를 받았던 정난주, 대원군의 하야를 끌어낸 최익현, 김윤식과 박영효 등이 있었다.

조선 시대 유배제도는 제주도의 사회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유배인들은 제주 여인과 혼인해 제주에 다양한 성씨가 생겨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유배생활을 하며 남긴 기록은 제주도의 풍속과 기후, 생활 등이 기록돼 제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홍준은 <추사 김정희>에서 “조선 시대 행형제도에서 유배형이 갖는 미덕은 결과적으로 학자들에게 책을 읽고,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강제 기회’를 제공했다. 다산 정약용의 학문은 18년의 유배생활이 낳은 결과물이었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도 19년 감옥생활에서 나왔듯이, 추사 역시 제주도에 유배된 9년간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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