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죄와 벌>을 찍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속편인 <신과 함께-인과 연>을 찍을 때 고3이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에 좋은 선물과 추억을 만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
지난 11월23일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18살 김향기가 <신과 함께-죄와 벌>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영화상 역대 수상자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다. 어린 나이인데도 연기 경력 15년 동안 보여준 가능성과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다.
마침 김향기가 출연한 영화가 현재 극장에 걸려 있다. 신인 차성덕 감독이 연출한 <영주>에서 김향기가 연기한 영주는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하나뿐인 동생 영인과 집을 이끌어가야 하는 10대 가장이다. 홀로 남겨진 그에게 세상은 현실적인 문제를 끝없이 넘어야 하는 산이다. 친척들은 부모의 장례 절차에 돈을 냈으니 집을 팔아서 달라고 하지 않나, 동생은 도둑질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며, 설상가상으로 영주는 대출 사기까지 당한다. 10대로서 감당하기 힘든 난관들에 부딪힐 때마다 영주의 얼굴은 꿋꿋하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김향기는 영주가 마냥 “착한 누나로만 비치지 않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영주는 자신을 고생시키면서까지 동생에게 헌신한다. 그것은 영주가 착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고 싶어 한 사랑을 영인에게 표현하려 했던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영주는 스스로 부모 없이도 이만큼 가장으로 잘 해내고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김향기의 얘기다. 묵묵히 서사를 끌고 가는 영주를 따라가면 이 영화가 김향기의 얼굴에서 시작해 끝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주가 처한 상황이 자극적일 수도 있는 강렬한 이야기인데 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점이 좋았다. 내가 연기할 영주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로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이렇게 감정선이 중요한 영화를 한 달 동안 집중해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말이다.”
김향기는 세 살 때 유아 잡지 표지모델로 활동하면서 CF 경력을 시작했다. 아역 배우로 활동한 친오빠의 촬영장을 따라다니다 영화 <마음이…>(2006)에 캐스팅되면서 연기에 발을 들이게 됐다. <마음이…>에 출연할 때 아역 배우 경쟁률은 무려 200대 1이었다. 이후 <소금인형>(2007) <못된 사랑>(2007) <불량커플>(2007) 등 TV 드라마와 <방울토마토>(2007) <잘못된 만남>(2008) <웨딩드레스>(2010) 등 영화를 오가면서 활발하게 연기했다.
“오빠는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늑대소년>(2012)에 출연했는데 현장에 자꾸 가고 싶었고, 그때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선한 기운과 긍정의 에너지를 담은 커다란 눈망울 때문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막내딸(<우아한 거짓말>(2014))이거나 사형수의 딸(<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6)),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올곧은 소녀(<눈길>(2017)), 홀로 전쟁고아들을 챙기는 여진족 소녀(<신과 함께> 시리즈) 등 김향기는 늘 어둡거나 아픈 사연을 지닌 소녀를 표현해왔다.
늘 앳된 얼굴이던 김향기는 내년부터 성인이다. 얼마 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수시로 합격했다. “합격 기사를 보고 나서야 대학생이 되는구나 실감했다. 대학 생활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 내심 긴장도 된다.” 차기작 <증인>(감독 이한)의 촬영도 이미 마쳤다. 살인사건 변호를 맡은 변호사(정우성)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김향기는 사건의 목격자인 소녀를 연기한다. “<영주>와 <증인>이 나의 10대 시절이 담긴 마지막 작품인데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다. 연기와 대학 생활을 잘 병행하겠다”는 게 김향기의 각오다.
그는 평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하는데,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뜻대로 그의 연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사진 제공 나무엑터스